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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란츠 카프카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요컨대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을 읽는 수고를 하느냐 말야'

카프카식 책읽기에 100% 공감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의 식대로라면 김형경의 책들은  매우 유익한 읽기다. 그것도 얌전히 머리통만 후려치는 것이 아니라 겹겹히 감싸두었던 마음에 곧장 부딪혀와 끈질기게 두들겨대고 헤집는다. 그래서 매번 김형경의 글을 읽고나면 늘 짧게든 길게든 휴유증을 앓곤 한다. 때론 분노했고, 때론 우울했으며, 때론 가여워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 앓고나면 조금씩 말랑해져가는 날 느꼈던 것도 같다.

<사람풍경> 이후 2년만에 출간된 <천 개의 공감>은 <사람풍경>의 연장선에 있다. 전작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심리학 입문서 같았다면, <천 개의 공감>은 내밀한 얘기들이 빼곡히 담긴 소중한 일기장 같은 책이다. 비록 질문을 해준 사람들의 닉네임은 제각각이지만 그 내용들은 우리가 살면서 흔히 겪는 일상속 혼돈과 갈등 그대로이며, 나직한 목소리로 위로와 조언을 건네는 작가의 토닥거림은 너무 정겨워 눈물이 난다.

책을 읽다보면 그 파동이 다르게 와 닿는 사례들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극복되지 못한 나의 트라우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유독한 부모와 역기능 가정에 관한 사례를 읽으면서 눈물이 났던 것은 내 안의 어린 아이가 아직 울고 있기 때문이며, 세상에 나를 맞추는 것이 성숙한 자세라는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나의 '나르시시즘'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다. 오늘 내 모습이 어제의 나와 판이하게 달라질리는 만무하지만 그 미세한 변화들을 충분히 감지할 만큼 이미 나의 마음이 섬세해지고 있다. 기다리던 책이 출간되고, 마침 연말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했다. 그러면서 내게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기뻤다. 한 권의 책이 그 어떤 값진 선물보다 마음과 마음을 관통하는 의미있는 선물이 되고 있음을 그들의 피드백이 말해주고 있다.  

공감, 타인에게 이르는 가장 선한 길. 어쩜 내겐 아직은 까마득한 길인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이르기 전에 먼저 그동안 꽁꽁 억압해 두었던 미숙하고 상처투성이인 어린 아이부터 보듬어 안는 게 순서일게다.  그러다보면 처음 걸음마를 배우던 그 순간처럼 한 발 두 발 그 길에 닿을 수 있겠지.  성급히 욕심내진 않겠다. 천천히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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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1-10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까말까 많이 망설였던 책이었는데 물거울님의 리뷰를 보고있으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리뷰 감사해요.

물거울 2007-01-1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리뷰가 향기로운 님의 선택에 보탬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모쪼록 '천 개의 공감'이 매개체가 되어 조금 아프고 크게 성장하는 소중한 기회의 시간들을 나눠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반갑습니다. ^^
 
외출
김형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가끔씩 맨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본다.

그래봐야 겨우 몇 십 분, 길어야 한 두 시간

이런 저런 생각의 편린을 좇거나 달콤한 낮잠을 즐기기에 적합한.


단단하고 차가운 바닥에서 올라온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뇌 속 깊숙히 닿을 즈음이면

난 명료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곤 발딱 일어나 청소를 하거나

하다못해 화분에 물이라도 주면서 몸을 움직인다.


<외출>을 읽던 날도 그랬었다.

맨바닥에 누웠다.

서늘했다.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연민으로 시작되는 사랑을 경계해 왔다.


힘든 시기에 연애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면 답답했고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무슨 연애냐 싶었다.

왜 그 사람과 결혼을 하느냔 물음에

'그 사람이 날 많이 좋아해‘라고 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한 선배를 보면서는 헛웃음만 났다.

그리곤 내가 보태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었을 그들에게 잘난 척하고 생채기를 냈다.

어린 것이 참 많이 모질고, 못됐었다.


인수와 서영, 그들의 사랑도 그 시작은 연민이다.


동질, 동량의 상처를 가진 두 사람

처음엔 서로의 상실과 분노를 되비추는 거울이었을 그들이

연민을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사랑에 빠져든다.


서로에게서 자신을 보고

자신들의 사랑을 통해 배우자들의 사랑 또한 가늠해 본다.

'그들도 이렇게 애틋하게 아프게 사랑을 했겠구나'

 

배려는 세심한 관찰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반복적인 일상의 부딪힘과 관찰, 배려가 적절히 버무려지면

사랑이란 어쩌면 자연스런 귀결일런지도 모르겠다.

인수와 서영처럼.


그들의 사랑은 그들이 거닐었던 겨울바다 만큼이나 쓸쓸하고 쓸쓸하다.

산뜻하고 걸림이 없는 사랑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어쩌랴.


눈 내리는 4월

서영은 심야고속버스에 올랐을까?


그 이후에야 또 어찌되든

350년 된 회화나무가 있는 공원에서든

매일매일 거닐던 강둑에서든 둘의 해후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영상의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짧은 예고편에서 본 몇몇 씬들이 전부였건만

마치 영상소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수시로 들었다.


소설을 읽기 전엔 그냥 허진호의 영화가 보고 싶었는데

소설 <외출>을 통해 이젠 영화 속 인수와 서영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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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종종 자각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기습해 온다.
지난 주말,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살아있는 우리신화'를 읽다가
곁가지로 살짝, 그야말로 살짝 언급된 아르테미스의 분노 앞에서처럼.

아르테미스의 분노와 꿈 속 나의 분노.
처음 접하는 얘기도 아니었건만
심심찮게 반복되곤 하던 꿈이었지만
아무런 상관관계도 인식치 못했던 별개의 사건들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음을 그제야 알아본 것이다.

한때, 꿈과 무의식을 천대했었고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을 포함한 몇몇 책들을 통해 내 안의 나를 탐구하고픈 맘이 동했었고
'H'라는 영화를 본 이후에는 타인이 나의 무의식에 접근하게 허용한다는 것이 위험천만한 일로 여겨졌었다.
그리고 <사람풍경>은 까치발로 갸웃거리던 정신분석학이라는 세계를 고맙게도 내 눈높이에 맞춰준다.

사람풍경, 무의식에서 출발하여 자기실현의 장에 이르기까지, 매 챕터는 대단히 흥미롭다.

각각의 챕터에 차용된 에피소드들은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가 차지하는 비중 그 이상이다. 아주 냉정한 시각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찬찬히 뜯어보게끔 만드는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최고조의 감정이입으로 때론 헐떡이게, 때론  숨죽이게 만드는 배우들이 있다. 일테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완벽에 가깝게 바보 엄마 영자씨로 분했던 고두심처럼. 그녀가 앞가슴에 빨간 약을 잔뜩 처바른채 돌아본다. '내가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이걸 바르면...' 순식간에 온 몸에 전율이 흘렀었다.

사람풍경의 에피소드들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카타콤의 비유나 빼어난 예술작품들을 마주한 감동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간접체험의 한계가 너무나 여실히 드러나지만..

오클랜드의 아이들에게선 예전의 내가 보여 마음이 짠해지고
일찌김치 '착하게'를 거부하고, '독하게, 냉정하게'를 추구해 온 내가 일견 대견스럽고
내 남은 생에 더이상의 '불안과 공포'만은 깃들지 않기를 바란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욕심이었는지를 이제 알겠다.

그리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변덕이란 챕터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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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죽선녀를 만나다
박정애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아무래도 그녀는 장편을 써야할 것 같다. 그녀의 강점은 이미지나 은유 보단 입담과 서사인데, 단편이란 장르에선 그 강점이 제대로 드러나질 못하는 것 같다. 두 권의 단편집, 전작인 '춤에 부치는 노래'도 이번의 '죽죽선녀를 만다다'도  마치 에피타이저만으로 끝나버린 식사처럼 허기지고 감질맛 난다.  

총 7편의 단편 중 난 가장 박정애다운 작품으로 표제작인 '죽죽선녀를 만나다'를 꼽는다. '에덴의 서쪽'과 '물의 말'의 계보를 잇는, 그러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조금만 더 살을 붙이고 세밀하게 그렸더라면 아주 괜찮은 장편이 하나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휘릭릭 훑고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라면 참 좋았겠다 싶다.

난 박정애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절로 신이 난다. 님이 이모처럼 박곡 아지매처럼, 그녀의 작중인물들은 날 웃겨주고 보듬어주고 든든한 백그라운드 역할까지 도맡아 해준다. 그녀도 나도 갈수록 아르테미스화 되어 가는지... 한동안 문득문득 박곡아지매가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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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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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오래 전 낙서들을 발견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간만에 대청소를 해 보리라 작정하고 덤빈 날일 수도 있고,
이사를 앞두고 버릴 것들을 걸러내기 위해 묵은 짐들을 뒤적이다 넋 놓고 앉은 오후일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어쩜 이리도 여전할까 싶은 글귀들에서부터
과연 이걸 내가 쓴 게 맞나 싶게 낯선 글귀들에 이르기까지
그런 순간들이면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다 헝클어지고 난 한결 말랑말랑해진다.

그리고,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에는 쉽게 읽혀서는 안 되는 책이라는 코멘트를 달아 놓았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지막 책장을 넘긴 이후에도, 한동안 섬뜩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던 책이다.
또한 내가 참 이기적이고 나쁜 인간이란 것을 자각하게끔 했던 책이기도 하다.

흐르는 세월에도 조금도 무르익지 못함인가.
애석하게도 3년 전의 감상이나 지금이나 대략 거기서 거기다.
가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도 여전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함이 없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해리엇과 데이빗은 ‘이상적인 가족 만들기’란 원대한 꿈을 안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
주변 사람들의 우려와 만류가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고
네 번째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의 꿈은 실현가능할 것도 같았다.
교외의 널찍한 집과 사랑스런 아이들.. 경제적인 부담이 있긴 했지만 당당하게 주위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다섯 째 아이 벤이 잉태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 그 꿈은 빈번하게 시험대 위에 올라가게 되고 결국 해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벤, 그의 존재는 사랑으로 품어 안을 수 있으리라 믿는 가족들의 노력을 번번이 수포로 돌려가며 점차 집안을 잠식해 들어가는 괴물 같은 아이로 커 간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여섯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이 한 집에서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아주 잔인한 물음이다.
결국 데이빗과 형제들은 벤을 버렸지만, 엘리엇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방관하고 있다.
벤이 스스로 떠나갈 날을 내심 기다리면서.
난 줄곧 데이빗 편이었고 엘리엇이 그만 벤을 놓아버리기를 바랬었다.
만약 엘리엇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난 지금과는 달리 벤을 동정하고 비정한 가족들을 비난했을런지도 모른다.
앨리엇이 위태위태하게라도 버팅기고 있기에 난 가벼운 맘으로 데이빗과 그 형제들을 두둔할 수 있는지도..

그런데 왜 엘리엇일까? 왜 데이빗이 아니라 앨리엇이냐구?
엘리엇이 데이빗 보다 윤리적이어서?
예나 지금이나 참 모르겠다.


소위 자의식이란 것을 가지게 된 이후, 나의 가장 큰 바람은 빨리 어른이 되는 거였다.
관계를 통해 정의되고 불려지고 제약을 당하고 하는 것들이 어린 마음에도 상처가 되었다.
완벽하게 자립적인 존재이고 싶었고 누군가의 무엇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의 온전한 나이고 싶었다.

때로 가족이란 서로를 독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영원한 내 편이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큰 상처를 남기는 근원이기도 한 것이다.
내 유년시절의 기억들과 그 안의 상처들은 모두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발생하고 키워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품을 수가 없는데 버릴 수도 없다는 무력함은 평생을 지고 갈 짐이자 두고두고 남을 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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