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 한정판
이미연 감독, 김태우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이 영화가 나오기 전에 '그대 손으로'라는 노래와 뮤직비디오 때문에 대개 끌렸었다. 굉장히 몽환적인 분위기와 거기에 걸맞게 나오는 몽환적인 영상 때문에 '버스, 정류장'을 기다렸다. 하지만 영화관에 가서 직접 보진 못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시내에 나가기 싫어서 그랬던거 같다.

재섭은 자신의 얘기를 길거리의 창녀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다. 학원 시간강사로 일하는 재섭에게 대학 때 사랑했던 예령이 결혼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모임에 나간다. 하지만 자신 빼고는 전부다 사회냄새가 물씬 풍기는 어른이 된 동기들을 보고 스스로 화를 내고 만다. 학원에 새로 들어온 소희에게는 주위 학생들과 다른 분위가 흐른다. 그리고 소희도 재섭에게, 재섭도 소희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어느 중년 남자와 소희가 심각하게 얘기하는걸 재섭은 목격하게 된다.

소희와 재섭은 어딘가가 매우 닮아 있다. 첫번째는 순수함을 지향하고 싶지만, 그걸 지킬 힘이 없어서 그저 등을 돌리고 있고, 두번째는 아예 순수함이 없어서 방관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매우 힘들다는 걸 알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사랑을 꺼리는 이 두 사람은 만나서 자신들이 겪은 일에 대해 말을 하며 느낀다.

재섭은 나약한 존재이다. 그에게는 논리적 이론과 자신의 이념을 쓸 재능은 있지만 그걸 쓸려면 자신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재섭은 이를 두려워해 나가지 못하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만 살려고 한다. 재섭에게 있어서 세상은 하나의 악으로 보일수도 있다. 그는 순수를 지키고 싶지만, 지킬 힘이 없다. 소희는 다른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집이 그렇게 가난하지도 성적도 우수하고 어디 아픈데도 없지만 꽤나 냉소적이다. 소희는 순수함이 없다고 믿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세상은 하나의 방해물 밖에 되지 않는 듯 하다. 그래서 세상과 타협을 하며 살아간다.

이 영화는 아주 깔끔한 영화이다. 학원시간 강사와 역 일곱 소녀의 사랑 이야기 이다. 그렇게 순수하게 보이진 않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아무래도 세상에 대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상처를 받은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치유해가는 모습이 어쩐지 찡하였다.

 

둘은 버스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 과연 이들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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