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문창과 글쓰기'의 시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일간지 신춘문예와 각종 문예지 신인상을 휩쓴 작가 대부분이 문예창작과 출신이었습니다. 한국 문단의 튼튼한 줄기를 이뤘고 높은 평가도 받았습니다. 특히 대학 과정에서의 집중적인 글쓰기 훈련으로 갖춰진 문체 미학의 위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적 성과가 크지만 내면 심리에 몰두하는 폐쇄적인 글쓰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주목받는 작가 중 이른바 '아웃사이더'의 존재감이 큽니다. 문단 글쓰기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젊은 아웃사이더 작가들입니다. 문학적 고민의 대상으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밑바닥 인생을 쓰기도 하고 기성 문단이 둘러쳤던 시공간의 경계를 가뿐히 넘어서기도 합니다. 기성 문단의 눈으로 보면 '아웃사이더'인 이들이 한국 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연작소설 '타워'와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의 작가 배명훈은 '문단 바깥에서 태어난 소설가'로 유명합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이 작가는 가상도시를 배경으로 삼은 '타워' 등 방외로 취급받는 이른바 장르소설을 썼지만 순문학 출판사인 문학동네가 주최한 제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평론가 신형철 씨는 "좋은 작가를 발굴 소개하여 앞선 안목을 과시해야 할 평론가와 좋은 작가가 있다면 문단 바깥이 아니라 대기권 바깥이라도 찾아 나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출판사들이 게을렀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면서 "상상력은 기발한데 문장은 단정하고 박학다식이 어지간한데 스토리는 명쾌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올해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인 '제리'는 2년제 야간대학의 학생과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남자의 희망 없는 날들을 이야기한 장편소설입니다. 작가가 되기 전 요가 강사로 밥벌이를 하던 저자 김혜나가 공고를 졸업하고 되는 대로 살았던 때를 소설로 쓴 것입니다. 평론가 강유정 씨는 "기성 문학에서 괄호에 묶어놓았던, 등장인물로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것"이라면서 "그야말로 '신하류층'으로 부를 만한 이들을 쓰면서도 스스로를 피해자로 보는 게 아니라 감정을 절제하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구별되는 지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여타의 작가들이 숱하게 보여준 "연민, 공감, 멜랑콜리와 애도로 특징지어지는 20대의 주류문화와 다르게 쓰였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은 출간 3주 만에 2만 부가 팔리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또한 올여름 장편 '유니콘'을 출간하는 작가 조현 역시,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 '행정학과 졸업, 현직 교직원'이라는 이력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의 소설이었습니다. 인류가 멸망한 2133년, T S 엘리엇의 시를 주제로 사이보그 학술대회가 열린다는 과학소설로 순문학의 보루로 여겨졌던 신춘문예의 벽을 넘은 것입니다. 문예지의 청탁, 장편 계약이 이어질 만큼 기성 문단이 이 작가를 주목했던 것입니다.


이 밖에 장편 '고래', '고령화 가족' 등 야전군 스타일의 이야기 방식으로 문단의 중심부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작가 천명관, 소설 '천하무적 불량야구단'을 쓴 목사 출신 주원규와 단편 '같이 밥 먹을래요?' 등으로 주목받는 발레리나 출신 하재영도 관심을 받는 작가들입니다.


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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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색채의 전기소설부터 미스테리, 시대소설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독특한 역사 감각과 요염하고 탐미적인 작품을 선보여 온 미나가와 히로코의 '죽음의 샘'은 제32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수상작입니다. 동양인 작가로서는 드물게 제2차 세계대전하의 독일을 배경으로 한 나치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데 진중하고 탐미적인 분위기, 치밀한 고증이 돋보이는 작품이며 신화, 인종, 가족, 예술에 대한 작가의 놀라운 식견과 폭 넓은 세계관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죽음의 샘'의 또 다른 매력은 '책 속의 책'이라는 독특한 설정입니다. 이 작품은 미나가와 히로코의 순수 창작품이지만 가상의 독일인 귄터 폰 퓌어스텐베르크라는 인물이 지어낸 것처럼 첫 장면을 시작해 '독일 문학의 일본 번역서'의 형태를 띠고 있는 점도 출간 당시 화제가 되었습니다. 작품 속의 작품이라는 묘한 형식은 단순한 구성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장치적 요소로 작용하며 독자에게 놀라울 만한 반전을 가져다줍니다. 일본인이 그려낸 나치 독일의 이야기지만 독일 문학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분히 착각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작가의 능력일 것입니다.


미나가와 히로코는 '나오키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시바타 렌자부로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등 일본의 대표적인 상들을 모두 거머쥔 일본의 대표 작가입니다. 환상적인 색채의 전기소설부터 미스테리, 시대소설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독특한 역사 감각과 요염하고 탐미적인 작품으로 일본의 많은 독자들을 환상의 세계로 끌어들였는데 특히 '죽음의 샘'은 작가에게 '환상 미스테리의 대가'라는 수식어를 안겨준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70년대부터 구상, 완벽한 구성을 위해 10년이라는 세월을 투자했으며 작품의 리얼리티 확보를 위해 독일에 직접 가서 취재를 했을 만큼 큰 공을 들였습니다. 책은 기자, 평론가의 찬사는 물론, 출간 당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미 일본 유수의 문학상을 섭렵한 작가이지만 미나가와 히로코는 '죽음의 샘'으로 '주간문춘 미스테리 베스트 10' 1위,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수상,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 3위를 차지하며 다시 한 번 독자들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었습니다.


20세기에 부활한 카스트라토의 마력을 지닌 노래, 소름끼치는 인체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성숙한 10세 소녀, 오래된 성의 지하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명화 등이 빚어내는 미와 악, 그리고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또한 나치의 광기가 엄습해오는 세계에서 퇴폐적인 분위기가 장대한 복수의 이야기에 색을 입혀 책장을 펼치는 순간 꿈과 현실이 교차하며 역사적 고증과 함께 신화, 예술까지 아우르는 환상적 분위기를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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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의 여성 작가 헤르타 뮐러,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황석영과 이문열, 최근 탈식민주의 이론가로 주목 받는 미국 버클리대의 압둘 잔모하메드 교수 등 세계적인 문학 연구자들과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다음달 15일부터 1주일간 서울 흑석동 중앙대에서 열리는 '제19차 국제비교문학회 세계대회(ICLA)' 때문입니다.


3년마다 열리는 대회는 흔히 '문학올림픽'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영문학·불문학 등 개별 학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학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비교문학이다 보니 다양한 언어권의 문학 전공자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쉽게 말해 여러 종목 선수가 나오는 것입니다. 42개국에서 1000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라 규모도 꽤 큰편입니다. 외국인 발표자만 500여 명에 이릅니다. 문학 관련 국제대회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보면 됩니다. 대회가 아시아에서 열리기는 1991년 일본, 사스때문에 '반쪽 대회'로 끝난 2004년 홍콩 대회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대회의 주제는 '비교문학 영역의 확장'입니다. 6개 분과에 걸쳐 300개 가까운 세션이 진행됩니다. 1개 세션은 보통 90분이며 대개 세 명의 발표자가 각각 20분씩 발표하고 10분간 발표한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식입니다. 다양한 주제의 세션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다 보니 참가자들로서는 어떤 세션을 참관할지 고민일 듯 합니다. 비교문학은 19세기 초반 생겨난 학문입니다. 초창기에는 세계 문학 작품들의 공통점을 규명하거나 문학작품 간의 상호 영향 관계를 따지는 데 치중했으나 최근에는 비교 대상을 확장 중입니다. 인접 학문인 철학·사회학 등을 끌어들여 문학 이외의 예술, 사회문화적인 현상 등을 문학의 창을 통해 해석하고 있습니다.


조직위 측은 이번 대회를 한국문학은 물론 한일병합, 6·25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 등을 거치며 변화해 온 한국사회를 알릴 기회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물론 한국 문학작품 분석을 통해서입니다. '스페셜 한국학 포럼'이 그 역할을 맡게 됩니다. 포럼은 30개 세션으로 구성되며 100여 명의 소장 연구자가 주제를 발표하고 소설가 황석영, 본지 이어령 고문, 소설가 이문열씨도 각각 별도 분과에서 기조연설을 할 예정입니다. 또한 안도현·김영하·조경란·김연수·김중혁·김행숙·편혜영 등 젊은 작가들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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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회가 끝난 뒤'는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의 중기, 후기를 대표하는 단편들을 모은 작품입니다. 전쟁을 소재로 따뜻한 인간애를 다룬 '벌목'과 '폴리쿠시카', 톨스토이 최고 걸작의 반열에 선 '무도회가 끝난 뒤', 도덕주의적 톨스토이의 사상이 뛰어나게 드러난 '위조 쿠폰'까지 모두 4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창작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일관되게 나타난 전쟁과 폭력에 대한 저항의식이 집약된 이 작품집은 삶과 죽음, 사랑과 평화에 대해 고뇌한 톨스토이의 사상과 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벌목'은 1852년 톨스토이가 사관후보생으로 카프카스 산악 토벌 작전에 직접 참가한 후에 그 경험을 토대로
쓴 작품입니다. 카프카스를 무대로 러시아 병사들의 삶을 새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생생하게 보여 주면서 무의미하고 잔인한 전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당대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네크라소프는 "이 단편은 놀랍도록 시대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엄청난 사건의 기록과도 같아 흥미로움뿐만 아니라 시의성을 담고 있다."라고 평했습니다.


'폴리쿠시카'는 강제징집 대상에서 면제된 주인공이 결국 죽음으로 이를 대신한다는 가엾은 농노의 슬픈 운명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프스코프 현의 깊은 시골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한 이 단편은 평범하고 순박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톨스토이의 따뜻한 시선이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져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무도회가 끝난 뒤'는 톨스토이가 둘째 형 세르게이의 연애 사건을 소재로 단 하루 만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초로의 점잖은 대령에게 숨겨진 이중성을 충격적으로 대비시킨 이 짧은 단편은 폭력에 반대하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릴 만큼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폭력의 야만성과 잔인함을 극명하게 보여 주며 톨스토이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위조된 수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러오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악이 어떻게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지 또 어떻게 차단되는지 그 필연의 고리를 파헤치는 '위조 쿠폰'은 악의 사회적 원인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말년에 천착했던 '깨달음', '참회', '갱생' 같은 '진리 안에서의 새로운 삶'이라는 사상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위조 쿠폰'은 돈과 권력을 최상의 가치로 좇는 이 땅의 현대인들에게 '진리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평범하지만 실현하기에는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를 곰곰 생각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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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경 작가의 '나비를 태우는 강'은 동성인 쿨만의 매혹에 흠뻑 빠진 첸의 사랑과 그런 첸을 향한 준하의 사랑, 그리고 카스트 제도의 두 희생양 크리슈나와 슈크라의 비극적 사랑이 그려진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담은 책입니다.이화경 작가는 이 작품에서 보다 근원적인 생의 아픔과 관계의 본질을 이야기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살의 통증을 선명하고도 강렬하게 보여주는 그녀의 문장은 읽는 이를 순식간에 매료시키며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합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생의 아픔을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그녀만의 탁월한 재주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쿨만은 질투심이 질투의 대상과 질투를 하는 자에 대한 그의 힘을 강화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는 허기로 언제나 사랑이 떠날까 봐 전전긍긍했던 어린 날의 경험은 그에게 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 덜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쪽이 관계에서 더 많은 힘과 권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탯줄로 연결되었던 어머니와 분리되면서부터 시작된, 멈추지 않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가족에게 위안을 기대해 보지만 가족은 또 다른 타인에 불과합니다. 아니, 때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는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준하와 첸, 쿨만은 국적과 성별, 나이가 모두 제각각이지만 가족으로부터 끔찍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과거의 상처는 이들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엮이게 만들며 동시에 또다시 상처를 반복하여 경험하거나 상처를 주는 운명 같은 힘으로 작용합니다. 게다가 상호 간에 동등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이들의 얽힌 관계는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보다는 해결하기 힘든 방향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후지와라의 말처럼 우리가 잃어가는 내부의 모든 것, 죽는 것, 살아가는 것 모두가 힌두교 안에 들어 있다면, 힌두교도들인 그들 역시 순응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크리슈나의 삶을 옮겨 적었던 준하의 노트도 불길에 태워 저 강물로 띄워 보내야 할 또 하나의 죽음이었다. 끝까지 타지 않고 가슴에 남을 나비가 있다면, 그것도 어찌할 수 없는 크리슈나의 흔적일 것이었다."


외로움에 지치고 엇갈린 사랑에 괴로워하던 준하와 첸이 여행의 마지막 발걸음으로 나아간 곳은 삶에 대한 사랑이며 홀로 설 수 있다는 생의 의지입니다.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우리를 따라다니는 고립감은 사실상 생에 대한 감각 그 자체일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신의 생의 '나비'를 스스로 태울 수 있는 자가 모든 것을 잊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준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가며 비로소 깨닫기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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