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경 작가의 '나비를 태우는 강'은 동성인 쿨만의 매혹에 흠뻑 빠진 첸의 사랑과 그런 첸을 향한 준하의 사랑, 그리고 카스트 제도의 두 희생양 크리슈나와 슈크라의 비극적 사랑이 그려진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담은 책입니다.이화경 작가는 이 작품에서 보다 근원적인 생의 아픔과 관계의 본질을 이야기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살의 통증을 선명하고도 강렬하게 보여주는 그녀의 문장은 읽는 이를 순식간에 매료시키며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합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생의 아픔을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그녀만의 탁월한 재주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쿨만은 질투심이 질투의 대상과 질투를 하는 자에 대한 그의 힘을 강화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는 허기로 언제나 사랑이 떠날까 봐 전전긍긍했던 어린 날의 경험은 그에게 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 덜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쪽이 관계에서 더 많은 힘과 권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탯줄로 연결되었던 어머니와 분리되면서부터 시작된, 멈추지 않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가족에게 위안을 기대해 보지만 가족은 또 다른 타인에 불과합니다. 아니, 때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는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준하와 첸, 쿨만은 국적과 성별, 나이가 모두 제각각이지만 가족으로부터 끔찍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과거의 상처는 이들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엮이게 만들며 동시에 또다시 상처를 반복하여 경험하거나 상처를 주는 운명 같은 힘으로 작용합니다. 게다가 상호 간에 동등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이들의 얽힌 관계는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보다는 해결하기 힘든 방향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후지와라의 말처럼 우리가 잃어가는 내부의 모든 것, 죽는 것, 살아가는 것 모두가 힌두교 안에 들어 있다면, 힌두교도들인 그들 역시 순응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크리슈나의 삶을 옮겨 적었던 준하의 노트도 불길에 태워 저 강물로 띄워 보내야 할 또 하나의 죽음이었다. 끝까지 타지 않고 가슴에 남을 나비가 있다면, 그것도 어찌할 수 없는 크리슈나의 흔적일 것이었다."


외로움에 지치고 엇갈린 사랑에 괴로워하던 준하와 첸이 여행의 마지막 발걸음으로 나아간 곳은 삶에 대한 사랑이며 홀로 설 수 있다는 생의 의지입니다.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우리를 따라다니는 고립감은 사실상 생에 대한 감각 그 자체일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신의 생의 '나비'를 스스로 태울 수 있는 자가 모든 것을 잊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준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가며 비로소 깨닫기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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