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 vs D에게 보낸 편지

 

 

 

 

 

 

 

 

 

 

 

 

 

 

 

 

 

당신은 연인에게 편지를 써 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은 ‘이메일과 핸드폰, 카카오톡이 있으니 편지에 대해 말 한다는 것이 매우 지루하다’는 것쯤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너무도 자주 언급되었으니 다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린 오히려 이 스마트한 세상에서 정성스럽게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았을 때 더욱 감동을 받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편지지를 고르고 볼펜을 들어 어떤 내용을 써야 할 지 고민을 거듭하기까지 몇 시간 혹은 며칠, 몇 달 제법 긴 시간이 걸립니다. 엄지로 문자를 찍고 발신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물론 한 마디의 문자를 보내는 순간에도 수없이 망설이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드디어 다섯 손가락에 힘을 주어 서툰 솜씨로 글씨를 써 내려가고, 편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기까지 우린 오직 한 사람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편지를 받을 상대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긴 편지를 받는다는 것은, 우체국이 없어서 편지를 전달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던 예나 버튼 하나로 문자를 주고받는 지금이나 참 설레고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만약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내게 전해 준 편지 한 통이 연인에게서 온 것이라면 기분이 어떨까요?

 

여기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한 권은 서로 사랑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연인이 주고받은 편지이고, 또 한 권의 책은 이제 인생의 황혼에서 평생 동안 자신의 곁에 있어 준 아내에게 쓴 편지입니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D에게 보낸 편지

 

 

앙드레 고르는 그녀에게 첫 눈에 반합니다. 그것은 운명과도 같았습니다. 그 어느 것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아니 소속될 수 없었던 불안한 정체성이 공통점이었기 때문일까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떠나버린 상태에서 대부 아래서 자라 고아 아닌 고아였던 도린과, 세계2차 세계대전 당시 성(姓)과 종교까지 바꿔야만 했던 유대인이었던 고르는 1947년 첫 만남 후 서로에게 이끌리고, 1949년 결혼을 하게 됩니다.

 

저는 앙드레 고르라는 이름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우리나라에는 ‘에콜로지스트 선언’으로 소개 된 책으로 유명한 일종의 생태사회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는 많은 저작을 발표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지만 사실 고르는 도린을 만났을 때만 해도 가난뱅이 학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춥고 배고팠던 기간은 결혼을 하고서도 꽤 오래 갑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철학을 세상에 발표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기까지 도린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묵묵히 고르의 곁을 지킵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 D에게 보낸 편지

 

 

1983년 아내 도린은 불치병 진단을 받습니다. 허리디스크로 전신 마취 수술을 받기 위해 몸에 주입된 물질의 일부가 두개골로 올라갔고 도린은 이후 24년 동안 고통을 받게 됩니다. 삶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고르는 자신의 첫 저작(배반자)에서 아내를 그릇되게 표현한 것과 평생 자신에게 헌신했던 아내에 대해 그동안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됩니다. 사랑과 감사의 고백을 담은, 오직 아내에게 헌사하는 편지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 D에게 보낸 편지

 

 

60년을 함께 했던 도린과 고르는 함께 생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앞에 둔 한 남자는 죽음의 두려움보다 아내가 없는 삶이 더 두려웠습니다. 물론 자살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동반자였고, 서로가 없는 삶 이상의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도린이 없었다면, 그녀의 사랑이 없었다면 자신의 사상과 저작은 물론, 자신조차 존재할 수 없었노라고 고백하는 편지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됩니다.

 

 

“네가 없는 집이 얼마나 적막한지 모르겠어. 네가 떠난 순간 너무 맥이 빠져버려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네가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까?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봤지만 그 답은 찾을 수 없어. 그냥 모든 것이 끔찍하게 느껴질 뿐이야. 생명력 없는 삶, 바로 그게 지금 나의 삶인 것 같아.” - 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

 

 

마르셀 세르당이 에디트 피아프에게 첫사랑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마르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디트를 만났을 때 마르셀은 이미 세 명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셀과 에디트의 사랑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고되는 것은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 때문일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와 미들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마르셀 세르당.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견디고 사랑에 상처받았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었고, 각자의 일로 떨어져 있는 날이 많았던 그들은 만나지 못하는 동안 편지를 쓰게 됩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정상에 있었던 두 사람의 편지는 예상 외로 사춘기 소년․소녀가 썼을 법한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그런 탓에 문학적인 가치는 적을지라도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열렬히 사랑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마르셀 세르당이 죽은 뒤에 마르셀의 편지는 에디트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둘의 편지는 나중에 에디트 피아프 기념관 관장에게 물려주게 되고 세상에 공개됩니다.

 

 

“내 심장은 너만을 향해서 고동치고 있고, 너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너를 꼭 안고 싶어. 내가 마음껏 너를 사랑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이제 열이틀만 지나면 너를 만날 수 있겠지?” - 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

 

 

하루라도 빨리 연인이 보고 싶었던 에디트는 마르셀에게 예정했던 배 대신 비행기를 타고 자신에게 와 주기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에디트를 만나러 가는 도중 비행기는 어느 산꼭대기에 추락하게 되고,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에디트는 마르셀이 없는 고통을 견딜 수 없었지만, 마르셀을 위해 1950년 ‘사랑의 찬가’라는 노래를 발표합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사랑의 찬가’는 마르셀을 위해 에디트가 쓴 또 한 통의 편지일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버려도, 땅이 꺼져버린다 해도 그대만 나를 사랑한다면 아무래도 괜찮아요. 당신이 원하신다면 조국을 버리겠어요. 친구도 버리겠어요. 사람들이 비웃는다 해도 당신이 원하신다면 무엇이든지 나는 해내겠어요.” - 사랑의 찬가

 

 

앙드레 고르에게 생의 마지막 편지는 아내에게 보내는 연서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이었고,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무리였습니다. 서로를 너무도 그리워했던 에디트와 마르셀의 편지는 고스란히 사랑의 증거로 남아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이야기하는 것은 추억과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치환되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아날로그는 유효합니다. 소중한 마음을 전하고 받는 편지는 싸구려 아날로그가 아닌 진솔한 마음 그 자체일 것입니다.

당신은 연인에게 편지를 써 본 적이 있습니까?

 

 

D에게 보낸 편지 ★★★★

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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