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
조지 오웰 지음, 김병익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인간이 언론의 자유를 요구할 때 그는 절대적인 자유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 사회들이 존재하는 한 어느 정도의 검열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며, 어떻게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자유란,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것처럼 ‘이웃 사람을 위한 자유’다. 이와 똑같은 원리는 볼테르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에도 들어 있다. ‘나는 네가 말하는 바를 증오한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네가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겠다.’]   p. 13


고전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예전에 쓰인 작품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인터넷 국어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지만, ‘종이책 읽기를 권함’의 저자는 ‘중학교 때 읽기 시작해서 아직도 다 못 읽은 책’, ‘아직 읽지 않았으면서도 남에게는 읽었다고 하는 책’,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숙제와 같은 책’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고전의 정의는 ‘일단 한 번 읽어보면 알게 되는 책’입니다. 왜 고전인가. 왜 사람들은 고전을 읽으라고 하며,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또 읽히는가. 그건 일단 읽어보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천한 저의 경험상 그러합니다.


1945년에 출간된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은 그의 또 다른 소설 ‘1984년’과 함께 현대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을 풍자한 걸작으로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두 소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과연 읽어 봤는가에 이른다면 아마도 이 소설을 알고 있다는 사람의 반도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 지난 이제야 ‘동물농장’을 읽었지만, 과연 이래서 고전이로구나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100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우화는 수천페이지에 달하는 그 어떤 철학서, 인문학서보다 통렬하게 전체주의와 권력의 타락을 비판하며 풍자하고 있습니다.

 

‘동물농장’은 존즈 씨가 운영하는 매너 농장의 밤에서 시작됩니다. 농장 동물들에게 존경받는 수퇘지 메이저 영감은 전날 자신이 꾼 꿈을 이야기합니다. 그 꿈은 인간이 사라지고 난 뒤 있을 세상에 관한 꿈입니다. 메이저 영감은 생산은 않으면서 소비하는 생물인 인간의 폭정에 의해 비참한 노예와도 같은 생애를 사는 동물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인간을 몰아낼 것을 주장합니다. 사흘 뒤 메이저 영감은 숨을 거두게 되고, 메이저 영감이 주장한 봉기를 '동물주의‘라는 사상으로 추진하며 은밀히 준비했던 동물들은 어느 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성공적으로 수행됩니다.

 

 [우리는 ‘동물농장’의 등장인물과 주요 사건들을 그대로 마르크시즘 이후의 소련사에 대입시킬 수 있다. 가령 동물농장의 예언자인 메이저 영감은 마르크스이며, 음험한 현실주의 독재자 나폴레온은 어김없는 스탈린이고, 스탈린에게 축출당한 트로츠키는 이 소설에서 이상주의자 스노볼로 등장한다. 그들의 봉기는 당연히 1917년의 대혁명이고, 이 혁명에서 영원히 멸망한 차르 정권은 매너 농장의 게으른 주인 ‘존즈’씨에 해당된다.]  p. 140

 

 ‘동물농장’은 누가 봐도 과거 사회주의 체제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리에게는 멀리 볼 것도 없이 북한의 실상과 비교해 봐도 아주 정확히 일치합니다. 봉기는 성공적이었으며, 잠시나마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실현시키지만 동물들이 자신들이 거둔 성공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두뇌 노동자인 돼지들 사이에 권력 투쟁이 일어나고 한 쪽은 축출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완벽한 독재체제가 형성된 동물농장은 봉기 이전보다 더 많은 배급량을 받고 있다는 통계 발표에도 불구하고 노동량은 해마다 늘어나지만 배급량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불만을 품은 동물들은 숙청되고, 특권층이 된 돼지들은 물리적인 공포와 대중 동원, 항의의 봉쇄, 관심의 왜곡으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결국은 두 발로 선 채 채찍을 휘두르며 피지배층인 동물들을 지배합니다.

 

이러한 내용 덕에 ‘동물농장’은 군사적 동맹국을 공격하는 책을 발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출간 당시 4개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합니다. 하지만 ‘동물농장’은 소련에게만 한정된 것도, 사회주의 체제만을 풍자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서문이 보여주듯 ‘동물농장’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재에 대한 풍자이며,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때 지구상의 반을 차지했던 사회주의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무너진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급부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권력의 타락과 인간을 동물처럼 지배하는 권력의 만행은 비단 사회주의 체제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영국의 동물들아, 아일랜드 동물들아 / 온 누리 모든 땅 위의 동물들아 / 귀 기울여 들으라 / 황금빛 미래 향한 내 즐거운 소식을 / 언젠가 그날이 올지니 / 전제자 인간은 추방되리라 / 풍요한 영국의 들판에는 / 오직 동물들만 활보하리라 / 코에서는 굴레가 사라지리라 / 등에서는 멍에가 벗겨지리라 /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리라 / 잔인한 회초리는 더 이상 소리 없으리.]  p. 31-32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죽음까지 착취당하면서도 착취당하는 줄 모르는 대중들과 침묵하는 지식인. ‘동물농장’에서 묘사하는 사회와 인간군상은 어쩌면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와 빼닮았기에 암울하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동물들이 불렀던 노래는 희망을 말하고 있지만 그들이 만들었던 세상은 그렇지 못했듯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희망과 절망은 세대를 거슬러 공존합니다. 완벽한 유토피아란 존재할 수 없지만,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출발점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약속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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