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읽기를 권함 - 우리시대 어느 간서치가 들려주는 책을 읽는 이유
김무곤 지음 / 더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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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보다 더 즐거운 일은 무엇인가? 그게 있다면 나에게 가르쳐주면 좋겠다.」 p. 155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습니다. 안타까운 연애소설도, 지금 당장 일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소리치는 자기계발서도 아닌,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담담하게 책 예찬론을 펼치고 있는 그런 책일 뿐인데 말입니다.


아주 어릴 적,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던 저자의 집에 어느 날 엄청난 양의 책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밥을 먹을 때 불쑥 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그것, 너희들 것이다.” 아버지는 동네 책방에 들려 “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은 다 배달해 달라”고 말씀하시고 집 안에 작은 서점하나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자의 치열한 책 읽기가 시작됩니다.


나는 언제부터 책을 읽었을까 떠올려봅니다. 8살 때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처음 한글을 배웠으니 7살까지는 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집에 딱 한 질 있던 전래동화 전집을 수십, 수백 번 읽었던 기억,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우리 집에 없는 책들이 탐나 친구와 놀기보다 책을 발견한 그 자리에 앉아 읽었던 기억, 어머니께서 어디선가 한 권, 두 권씩 빌려다 준 책을 다 읽고 돌려주고 또 다시 새로운 책을 빌려오시고는 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서점에서 문제집이 아닌 책을 용돈을 모아 샀던 기억, 친구들은 잘 쳐다보지도 않았던 학급 문고를 잘 골라 읽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느낀 감정은 공감과 부러움이었던가 봅니다. 인사동 고서점과 미국 뉴욕의 스트랜드 서점, 일본의 진보초. 수많은 책들과 작가들, 그리고 책에 미친 사람들. 목적을 두지도, 인내를 요하지도 않는, 그저 즐거움이자 생활일 뿐이라는 그의 끝없는 책 예찬에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나도 지금 당장 저들처럼 스트랜드 서점의 좁은 통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수많은 서가를 뒤지고 싶은 작은 두근거림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책 페이지를 넘기면서 동질감을 느낀 사람이라면 이미 당신은 책 바보일 확률이 높습니다.


고서점에 갔다가 책이 너무 탐이 난 나머지 통장에 있던 돈을 다 찾아들고 나간 사람, 돈이 없던 유학시절 옥스퍼드 영어사전 한 질을 너무 갖고 싶어 책 한 트럭을 내다판 사람, 인사동 고서점에서 혼자 책과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 한때는 책을 읽기 위해 기차를 탔던 사람, 책 읽는 일보다 더 즐거운 일을 아직 찾아내지 못한 사람. 그 스스로 간서치(看書癡)임을 고백하는 글들은 목적 없는 독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를 권하는 저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묘하게 설득적입니다. 여타의 주석과 뭔가 다른, 본문과 비슷한 양의 주석마저도 소중합니다.


「종이책 읽기를 권합니다. 오늘날같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종이책을 읽는 일만큼 느리게 해야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갑갑함으로 인해 책을 멀리 하려는 충동을 느끼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종이책에서 얻는 깨달음과 감동은 한번 얻으면 다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즐거움을 당신에게 드릴 것입니다.」 p. 5


공부로서가 아닌 책 읽기를 권합니다. 효용이 없는 책 읽기를 권합니다.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또는 아내에게 핀잔 받는 책 읽기를 권합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를 권합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야 말로 정말 쓸모가 있는 책 읽기라는 것을 당신은 이해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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