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버린 여인들 - 實錄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
손경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역사는 지나온 시간들을 뚝뚝 잘라 그 당시를 대표적인 단어 몇 개로 이 시대를 평가하고는 한다. 그래서 서양의 중세는 암흑의 시대라고 불린다. 암흑의 터널을 지나 문예가 크게 부흥했던 때를 르네상스라고 지칭하기도 하고, 또 근대의 어느 시기는 발명과 발견의 시대라고도 한다.

우리에게 조선이라는 나라는 유교를 숭상한 성리학의 시대였고, 왕이 다스렸지만 선비, 즉 사대부가 지배했던 시대였다고 일컬어지곤 한다. 하지만 이 책 ‘조선이 버린 여인들’을 보자면 조선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시대이다. 여성에게만 가혹했고, 하층민일수록 가혹함은 더 했다. 법은 있으되 소용이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긴 뭐.. 이것이 조선시대만의 일도 아니니, 21세기인 현재도 먼 훗날 어찌 기록될 지 그것은 역사만이 알 일이다. 

‘조선이 버린 여인들’은 자신들에게 가혹했던 조선을 몸으로 견뎌내다 사라진 여인들의 이야기이다. 여성이었고, 노비, 기생, 첩이었기에 그녀들의 삶은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귀결되었다. 더욱이 조선이 얼마나 이 여인들에게 가혹하고 잔인했나 하는 것은 그녀들의 삶을 비극으로 종결시킨 그 사건들이란 것이 오늘날에는 가십거리 정도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그칠 간통이나 연분의 죄였고, 더욱 의아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강간 등 오히려 여성이 피해자임에도 피해자가 제일 먼저 추국 당했고,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제목 그대로 조선은 그녀들을 버렸다. 그리고 그 버림은 당사자는 억울하고 원통했으나 시대는 아무렇지 않게 용인했고, 그것이 당연하다 인정했다.

왜 시대는 그것을 용인하고, 당연하다 하는가. 남녀 간에 연분이 나고 간통이니 강간이니 하는 것은 분명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으며 때로는 쌍방이 합의하에 일어난 일이거늘 어째서 한쪽만 유달리 억울했는가. 남성들은 조사조차 받지 않거나, 장 몇 대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얼마든지 관직에도 나가도 불편 없이 살았거늘. 왜 여성에게만 잔인했으며 하층민일수록 그 가혹함은 더했는가. 그것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단지 신분제 사회였으며 성리학에 입각한 유교사회였다는 것만으로는 완전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사실 이 책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원문으로 하나하나 살펴보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스러져간 하층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저자에 의해 탄생한 책은, 그 33가지의 이야기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두 조선 전기에 벌어진 일이며, 특히 성종과 세종 때의 일이 주를 이룬다. 특히 성종 때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왜일까?

실록이라는 것이 워낙에 방대하여 아직 연산군 이후는 작가의 손길이 못 미쳤을 수도 있고, 유독 성종과 세종 때에 특이할 만한 연분사건 발생률이 높았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조선시대 통 털어 가장 태평했다는 성종과 성군 중의 성군이라는 세종 때에 연분사건이 많이 발생했다는 것이 참 재밌는 일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간에 조선 중기를 넘어가지 못하고 조선 전기에 몰린 이야기는 유달리 하층 여성들에게 가혹했던 것에 그 원인을 더했을 지도 모른다.

작가가 지적하고 있듯 이런 남녀추문 사건은 단순히 그 사건에만 국한시켜 해석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조선 전기. 조선이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조선은 나라를 안정시켜야 했고, 백성들을 하나로 모아야 했다. 조정은 유교로 그 일을 수행하려 했고, 단순히 풍기를 단속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라를 지배하기 위한 권력에 의해 재편되고, 필요에 의해 가혹했다. 수직적 사회를 지향한 조선은 개국공신을 비롯한 각종 공신을 위해야 했으며, 고려의 귀족이 아닌 새로이 등장한 사대부 양반의 권위를 세울 필요가 있었다. 책에 수록된 이야기가 모두 조선 전기에 벌어진 일이며, 노비, 첩, 기생, 비구니였던 여성과 양반 남성이라는 대결 구도는 필연적으로 여성에게만 잔인했던 결과가 나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시대는 남성에게는 눈을 감았고, 여성에게만 눈을 부릅뜨고 무서운 잣대를 들이댔다. 상위계층에게는 그럭저럭 반듯하게 적용되던 법도 하층에게로 오면 그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졌다. 실상 조선시대가 이미 불평등한 사회였고, 법 자체가 그런 불평등함을 바탕으로 규정되어 있으니 법문을 올곧게 들이댄다 해도 이미 게임은 끝이었다. 그리고 그 잣대는 후대로 갈수록 더욱 강해져 수많은 열녀가 탄생했고, 그 그늘 밑에서 여성은 숨이 막히고 하염없이 눈물지었다.

책으로 돌아오자면 일단 이 책은 아주 잘 써진 역사책은 아니다. 진중한 논의보다는 과연 조선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가 싶을 만큼 흥미 있는 이야기를 뽑아 구성된 가볍게 읽을 만한 책에 더 가깝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구성도 그다지 촘촘하지 못하고, 편집자가 보기 좋게 다듬었을 것임에도 서툴고 엉성한 면도 있다. 물론 그것은 조선왕조실록이 이런 연분사건을 깊이 다뤘을 리도 만무하거니와 하층 여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못했을 터이니 그것이 이 책의 큰 흠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어찌됐든 이런 책이 출간된다는 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태정태세문단세로 대표되는 역사교육을 벗어나 한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선의 역사는 위의 역사이건 아래의 역사이건 왜 이리 피로 물들었는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다음에는 조선을 좀 더 밝게 볼 수 있는 책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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