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한빛문고 6
박완서 글, 한병호 그림 / 다림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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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착한 아이가 있다. 시골에서 올라온 그 아이는 청계천 뒷골목 전기용품 도매상에서 점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어찌나 부지런하고 일을 잘 해내는지 주인 아저씨와 동네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던 아이는 어느 바람이 세게 불던 날 세찬 바람때문에 하필 자동차로 넘어진 자전거로 인해 평생 해 본 적 없는 고민에 빠진다. 자동차 수리비 오천원을 가져오면 자전거를 돌려주겠다는 자동차 아저씨가 없는 틈에 주위 사람들의 부추김마저 일자 아이는 자전거를 들고 냅다 도망을 친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착한 아이는 도둑질을 한 것 마냥 마음이 편치 않은데 전기용품 주인 아저씨는 그런 아이에게 돈도 안 물어주고 자전거도 가져왔다며 칭찬을 한다. 아이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그날 밤 시골로 내려 갈 짐을 싼다.

자전거 도둑 아닌 자전거 도둑이 그날 밤 짐을 싼 것은 단지 자신의 행동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만은 아니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어느 날엔가는 진짜 도둑이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이었다. 그리고 필시 자신의 아버지였다면 혼을 냈을 진정한 어른을 그리워했기 때문이고, 또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이런 몹쓸 일이 생기는 도시 대신 우아하게 바람을 타는 보리밭이 있을 고향이 보고팠기 때문이다.

이런 동화를 읽을 때면 두 가지의 생각이 교차하곤 한다. 하나는 순수하고 맑은 심성을 가진 아이와 우리의 자연을 말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흐믓한 미소를 짓게 되는 한편, 이런 이야기들이 과연 얼마나 의미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박완서님의 단편 동화집인 '자전거 도둑'은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시인의 꿈' 등 총 6편의 잘 써진 동화가 담겨있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어른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순박하고 착한 아이와 따뜻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하고 어른들은 대부분 물질 문명에 찌들어 있다. 도시와 문명의 편리함에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들의 소중함과 민들레 한송이마저도 소홀히 지나치지 않는 소박하고 뜨뜻한 시선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적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지만 그것들은 결코 우리들이 모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뻔하기도 하고, 짐짓 식상하기까지 한 이런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달달 외워서 시험만 볼 뿐 실생활에서 그다지 적용되지 않는 도덕교과서와 같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그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 뻔함마저 다시금 일깨울만큼 동화에서 묘시하고 있는 것들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며, 동화를 읽을 어린아이들에게는 이런 진정함이 가장 필요한 교육일 테니까 말이다. 보편적인 주제와 단선적인 이야기로 전해지는 진정함이야말로 동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일 것이다. 

'자전거 도둑'은 어른이 읽는 동화라기에는 '어린왕자'가 가진 순백의 아름다움이나 '연어'의 세련됨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아이들에게는 순수함과 교훈을 어른에게는 동심을 돌이켜보게 할 이야기이고, 박완서님의 손에서 뽑아져 나온 고운 우리말로 써진 예쁜 동화이다. 뻔함이고 진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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