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라미스 해전 -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사실 전쟁이라는 것은 전쟁 자체로 왈가왈부되지는 않는다. 그 어느 전쟁도 누가 누구와 싸워 이겼다더라 하는 단순한 논리로 재단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비록 그 이면은 추악할지언정 인류는 전쟁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바꿔왔고, 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그래왔듯 세계 4대 해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전쟁과 그 승자들은 명성에 걸맞게 이후의 모든 역사를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결국 역사라는 건 이긴 자의 기준에서 재편되기 마련이니 이제 와서 투덜댈 건 없겠다. 실제의 역사가 어떠했든 간에 그것이 진리다.
그래서 살라미스 해전의 진리는 동양의 야만으로부터 서양의 가치를 지킨 전쟁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정신과 물질의 충돌이었고, 정신의 승리였다. 살라미스 해전은 동양으로 대표되는 페르시아와 서양으로 대표되는 아테네와의 전쟁이자, 당시 대제국으로서 여러 나라를 복종시키고 각기 다른 민족을 대동하는 물량공세를 펼쳤던 물질 대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정신과의 전쟁으로 기록된다. 정신은 이겼고, 아테네는 자유를 지켰다.
살라미스 해전 이후 헬레니즘은 역사의 무대에 좀 더 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헤브라이즘과 함께 서양을 지배한다. 문명은 그리스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스페인, 영국, 프랑스로.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되고, 세계의 역사는 서양, 즉 서유럽을 중심으로 엮어진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에 이르기까지 살라미스의 유산은 그 승리의 맹위를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까지 떨치고 있다.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던 아테네는 해전에서의 맹활약으로 그리스의 폴리스 중 단연 앞서 나가게 되고, 민주주의는 한 도시국가에 발생한 독특한 정치의 형태에서 인류의 이상으로 추앙받고 있으니 과연 살라미스는 현재를 이루고 있는 것들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살라미스 해전의 패배로 세계가 잃을 뻔한 것은 그리스의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의 교활함과 탐욕이었다. 살라미스 해전은 아테네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난생 처음 맛보게 해주었다. 살라미스 덕에 아테네는 자유를 얻었고 그리스는 노예가 되었다. 민주주의가 살아남은 대신 아테네 제국이 탄생한 것이다. ...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오점에 대한 치열한 논쟁. 그 전통이야말로 살라미스의 진정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페르시아가 승리했다 하더라도 고대 그리스의 문명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이 책 ‘살라미스 해전’ 저자의 주장이지만, 어찌됐든 승리했고, 문명은 지켜졌다.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 벌어졌음에도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 ‘300’에서 컴퓨터 그래픽 없는 근육을 자랑하던 스파르타군과 괴물과도 같은 모습을 한 페르시아군의 모습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살라미스 해전을 그 시작부터 전쟁 후까지 다루고 있는 ‘살라미스 해전’은 역사서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책처럼 당시를 재구성하여 역사의 한복판을 들여다보는 흥미에 읽는 맛까지 가미돼 있다.
어찌 알겠는가. 2400년 전의 진실을. 페르시아군의 원정. 짓밟힌 아크로폴리스. 살라미스로의 결전을 거부했던 그리스 동맹국들.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른 채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었던 노잡이들. 살라미스 최초의 전투. 페르시아의 퇴각. 저자는 이 모든 것을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기준으로 아이스킬로스의 희극과 플루타르코스 등 남겨진 조각들을 붙들고 가장 그럴 듯하게 이어 붙인다.
전쟁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인간의 상상 속에서 창조된 것보다 더욱 극적이고, 전쟁의 영향력 아래 놓인 우리들에게는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는 일부의 진실이자 일부의 허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파생된 것들은 결코 허구가 아니니 멀리 갈 것도 없이 교과서만 펼쳐 보라. 살라미스의 증거가 눈앞에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