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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 사랑에 대한 설레고 가슴 아픈 이야기
김성원 지음 / 넥서스BOOKS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작은 꽃을 한 송이 꺾습니다. 생글생글한 꽃잎을 하나하나 뜯으며 낮게 읊조립니다. '한다, 하지 않는다. 한다, 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남은 꽃잎에 따라 우리는 빙그레 웃기도, 우울해 하기도 합니다. 하는 것, 하지 않는 걸 꽃잎이 결정해주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문득 노란색 꽃 한 송이를 또 꺾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는 동안에도 여러 번 마음의 꽃잎을 세어 보곤 합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고백을 해 왔을 때 선뜻 대답을 하기 전에 꽃잎을 떼어 봅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바쁘다며 내 전화를 퉁명스럽게 끊어버렸을 때도, 늦은 밤 보고 싶다면서 집 앞까지 찾아왔을 때도, 입맞춤이 더 이상 수줍지 않게 되었을 때도, 꽃잎을 뜯습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동안에도 간절하게 마지막 꽃잎을 셉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도 돌아서고 나면 더 이상 꽃잎을 셀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발신번호가 없는 전화가 걸려올 때, 소식이 느린 친구가 그의 안부를 물어올 때, 단골집 아주머니가 왜 혼자 왔느냐 궁금해 할 때, 새벽 무렵까지 자꾸만 뒤척이게 될 때도, 물기 어린 손으로 꽃잎을 세어 봅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만나고, 사랑을 하고, 헤어지는 건 뜨거운 심장을 가진 청춘에겐 일상과도 같습니다. 그 일상을 감각적인 이야기로 담아 낸 책은 사랑은 판타지이며, 그 판타지에 과감하게 뛰어 들라고 종용합니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인생은 무엇으로 빛날 수 있을까요? 사랑 때문에, 앓지 않는다면, 잠에 깨 눈을 뜬 후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사랑을 잃지 않았다면, 저녁놀이 내릴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경험을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요?"
사춘기 때는 열혈 라디오 청취자였으나 점차 세월을 먹으면서 라디오보다는 리모컨을 손에 쥐고 3초 마다 채널을 바꾸는 심드렁한 TV 시청자가 돼버린 지금, 아쉽게도 [푸른 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라는 FM 프로그램에서 작가가 전하는 사랑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책으로 접한 작가의 진한 감수성은, 지난 [이소라의 음악도시]에서의 '그 남자 그 여자'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럼에도 '그 남자 그 여자'에서 맛보았던 배시시 비집고 나오는 웃음, 어쩐지 내 얘기 같은 뜨끔함과 간혹 맺히는 눈물에는 살짝 미치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베개를 부여잡고 혼자 볼이 빨개지는 달콤함은 없지만, 씨익 미소 지을 만한 유머는 있습니다. 날카롭게 베인 듯한 상처는 없지만, 한번쯤 뒤돌아 보게 하는 미련은 남깁니다. "자, 마음엔 무엇을 담을까요? 베이글을 반으로 자르는 동안, 브로콜리 크림 수프가 식기 전에 우리는 아름다운 사랑에 빠질 거라는 믿음"
꽃잎을 세고 있습니까? 이런! 사랑에 빠지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