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팩션이라는 건 아이디어다. 팩션의 승부처는 기막힌 아이디어와 역사와 절묘하게 얽히며 풀어나가는 스토리, 누구나 무릎을 칠 만한 역사적 재해석에 있다 하겠다. 어떤 영화, 어떤 소설, 어떤 드라마는 본래의 장르와 아이디어 등이 맞아 떨어져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퍼져가기도 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필수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는 건 어디까지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야기라는 건 작가의 내공을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필수적 요소이자, 작품의 승패는 그 지점에서 갈려 나갈 수밖에 없다. 

 

  ‘이데아의 동굴’은 무척 흥미 있는 책이었다. 마치 암포라에 새겨진 그림을 연상시키는 표지와 더불어 제목인 ‘이데아의 동굴’부터 강하게 고대그리스의 향기를 내뿜고 있는 이 책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쳤을 때 시작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아카데메이아 학생이었던 한 아름다운 젊은이가 죽었다. 사인은 늑대의 습격.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의심을 품은 철학자와 그에 동감하는 해독자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지닌 이 이야기는 기원전 5세기에 써진 「이데아의 동굴」이라는 소설과, 이 소설을 번역하는 번역자의 이야기가 겉을 두르고 있는 액자소설이다. 첫 번째 장을 넘어갈 때까지 중심이야기가 되는 「이데아의 동굴」과 주석처럼 띠를 두르고 있는 번역자의 이야기 둘을 동시에 소화해야 했고, 짧은 장이었음에도 이야기는 다소 복잡했고 지루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에이데시스’라고 하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개념을 이해해야 했고.

 
연쇄살인범을 쫓는 추리소설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접목시킨 그 발상자체만으로도 ‘살인의 해석’은 여느 독자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단번에 치솟을 만했다. 발상은 획기적이었고 소설의 내용은 궁금하기 이를 데가 없다. 와우. 게다가 등장인물들이 대단하다. 프로이트가 미국 땅을 밟았던 1909년. 당시의 미국을 그대로 재현한 소설은 프로이트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 융과 그 외 실존인물들을 소설에 그대로 등장시켜 시작부터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다빈치코드’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의 팩션 블록버스터 소설. 그 기대는 그러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조금씩 삐걱댄다.

‘이데아의 동굴’과 ‘살인의 해석’은 추리소설의 형식만을 빌렸을 뿐 각각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담고자 했고, 프로이트 학설로의 초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데아의 동굴’은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으나, ‘살인의 해석’은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첫 번째 장의 난해함과 낯설음을 가뿐히 넘기고 두 번째 장으로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데아의 동굴’은 점차 독자들에게 한 가지씩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세 번째 장. 네 번째 장. 다섯 번째 장… 장을 넘길수록 이해해야 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은 많아지지만 그만큼 책에 몰입하게 되고 빠져들게 되는 속도도 빨라진다. 마지막 최종 열쇠는 정말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 도대체 뭐지? 무엇이 진실일까? 하는 사이에 반전은 거듭되고, 최종 열쇠가 밝혀지는 순간 설마설마 하다 머릿속이 멍- 해지고, 어느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이데아의 동굴’은 영화로 비견하자면 숨겨진 걸작독립영화와 같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구석구석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이 꼭꼭 채워진 완벽한 영화.

반면 ‘살인의 해석’은 규모는 블록버스터 급이지만, 너무 거대한 나머지 그 모양새조차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끝난 영화 ‘고질라’처럼 한껏 크게 가졌던 기대는 중반부로 갈수록 그 기대치를 점점 낮추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엥? 하다 끝나 버린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실존 인물들의 역할은 실질적으로 사건의 해결에 있어서는 등장하나마나에 머물다 말고, 오히려 추접스런 그들의 사생활만을 밝히다 쏙 이야기의 뒤로 사라진다. 프로이트가 던진 몇몇 조언들을 제외하면 굳이 그네들이 거기에 있지 않아도 사건의 해결이나 진행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프로이트의 학설을 근거로 추리소설을 만들고자 했다고 해서 굳이 프로이트가 미국을 방문할 당시를 시점으로 잡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프로이트 이후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학설은 그의 저서만으로도 충분하다. 550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책에서 프로이트의 미국 방문과 제자 융과의 갈등 등 같이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빼더라도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살인 사건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융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한때 떠오르기는 하지만, ‘살인의 해석’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용의자로서의 가능성을 두는 방식은 그다지 세련되지 못하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데아의 동굴’은 칭찬만 가득 써놓고, ‘살인의 해석’은 부족한 점만 부각시킨 것 같다. ‘이데아의 동굴’은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칭찬만 해도 모자랄 만큼 훌륭한 책임은 틀림없지만 ‘살인의 해석’의 경우 장점이 없는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점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결국은 처음에 언급하고 있듯 이야기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다. 아이디어로만 본다면 ‘이데아의 동굴’이나 ‘살인의 해석’ 둘 다 끝내주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 그 중에서도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롯한 그의 학설을 함축하면서 동시에 입증하고 있는 ‘이데아의 동굴’은 사건의 진행방식이나 반전, 결말에 이르기까지 그저 완벽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이야기가 충실한 것이다. 잘 짜진 이야기는 마지막 페이지마저 넘기면서도 손에서 쉽게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이성과 본능의 충돌, 논리와 감성의 뒤섞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사고를 해나가게 만드는 지적인 글쓰기는 책읽기를 마친 순간, 더없는 만족감을 준다.

기막힌 발상과 프로이트 등장, 추리소설의 고전적인 방식인 주변의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혐의두기 방식을 통해 초반에는 뭔가 대단한 이야기가 될 것임을 예감하게 하지만 ‘살인의 해석’은 서서히 틈을 보인다. 아이디어와 작가가 가진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의 세계에 대한 지식은 많지만, 그에 반해 이야기는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끝으로 향할수록 빈약한 이야기는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결론마저 이르면 쩝 하고 입맛을 다시게 되는 아쉬움이 든다.

흥행으로 보자면 ‘살인의 해석’은 대박을 터트렸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몇 달간을 머물렀고, 여전히 서점에 가면 잘 보이는 위치에 진열되어 있다. ‘이데아의 동굴’은 글쎄.. 몇 만부나 팔렸을까. 그나마 2005년에 출간된 이 책이 아직까지 절판되지 않고 여전히 서점에서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승패를 따진다면 단연 ‘이데아의 동굴’을 꼽는데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겠다. 뭐, 스포츠도 아닌데 이기고 지고를 굳이 따질 것도 없겠지만 그저 좋은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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