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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심판한다 - 마이크 해머 시리즈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30
미키 스필레인 지음, 박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추리물을 읽을 때면 기대하게 되는 것이 있다.
미스테리한 사건, 범인은 주변인물 중에 있으며 예상치 못한 인물일 거라는 것,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 전개, 등등... 그래서 마지막장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은 ‘멋지다’라는 것.
“내가 심판한다.”
이 책은 이 모든 것을 나름대로 고루 갖춘 추리물의 고전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경찰이 아닌 사립탐정이 직업인 주인공, 꼬이고 꼬이다가 가장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내는, 역시나 가까운 곳에 있었던 범인, 눈치 빠른 독자라면 충분히 알아 챌 법 하지만 어쨌든 중간중간 나름 교묘하게 제시되었던 증거들. (물론 의도적으로 연출된 흔적이 보여 나중에 그것이 증거라는 걸 알았을 때 아! 하는 탄성 대신 그럴 줄 알았지.. 정도의 반응이라는 게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당혹스럽다.
물론 그 유명한 ‘셜록홈즈’ 시리즈와 ‘아가사 크리스티’ 등만을 접한 얄팍한 독서량이 문제겠지만 처음 접한 하드보일드 물이라서인지 문득문득 당황스러운 부분이 많다.
하드보일드 물이니 소재나 내용이 거칠고 폭력적일 수도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통쾌한 액션과 이를테면 진한 남성미랄까 이런 게 배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이 1940년대에 등장했으니 꽤나 노골적으로 보이는 인종차별주의적인 부분이나 성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같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래도 이건 뭐.. 이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주인공은 거친 게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난폭하고, 모든 여성들은 그에게 첫눈에 반해버리는데다 그것도 모자라 저돌적으로 유혹하기까지 한다. 무조건.
그리고 주인공의 폭력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된다. 살인마저도.
잔인하게 살해된 친구의 복수를 위해 편안하게 재판받는 법 같은 건 필요 없고 자신이 직접 똑같이 범인에게 돌려주겠다는 주인공은 그러나... 정작 자신이 행하는 폭력과 살인은 당연시되어버리는 것이다. 추리물에서 이렇게 매력 없고 막나가는 주인공은 처음이다.
아! 이건 하드보일드물이지.. 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은 부여해줘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주인공의 캐릭터는 후에 액션물이나 형사물 같은 드라마나 영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틀림없이 그건 사실인 것 같다. 분명 터프한 매력과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하는 남성 캐릭터는 질리도록 많으니까.
어떤 것이든 처음 선보일 때는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내가 심판한다.’는 하드보일드물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으니 그런 점을 가만하고 본다면 그럭저럭 흥미 있게 볼 만하다. 빠르게 읽히기도 하고.. 나름 의미도 있지 않은가. ‘원조’라는데.
하지만 멋진 주인공과 뒤통수를 치는 반전을 기대한다면 조금은 실망스러울지도. 특히나 이런 마초적인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주인공을 싫어하게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