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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기묘한 생김새, 잔뜩 움츠린 자태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움직임.. 하지만 후각에 관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향수 제조인.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혐오감을 주는 외모를 지닌 채 세상에 섞이지 못하면서도 적의를 드러내는 대신 안으로, 안으로 침작하기만 하는 주인공 그루누이는 작가와 닮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쥐스킨트를 처음 만난 건 약 10여 년 전쯤 ‘좀머씨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뒤로 단편모음집 ‘깊이에의 강요’를 읽고 난 후, 참으로 오랜만에 몇 년 전부터 마음만 먹고 있던 ‘향수’를 집어 들면서 쥐스킨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특이한 작가는 독특한 상상력과 소재의 독창성, 그리고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간결하면서도 빠른 전개와 놀라운 필치로 어느새 작품에 빠져들면서 심적으로 동요하게 만든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라는 의문을 품게 되면서도 거부감 대신 오히려 책 속에 빨려 들어가듯 눈을 뗄 수가 없게 되고, 책을 덮는 순간에는 작가의 능력에 찬탄을 하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마치, 그루누이가 지상 최고의 향수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 버린 그 순간처럼.
자신을 방치한 채 죽이려던 어머니를 참수시키고 있는 힘껏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 생명을 유지한 그루누이는 태어나던 순간처럼,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학대와 무시, 절망을 이겨내고 심사숙고한 결정과 인내로 때를 기다려 결국 자신만이 가진 천재적인 능력으로 세계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낸다.
물론 그루누이는 자신에게 행해지는 모진 학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듯 자신이 행하는 살인과 악마적인 행위 역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루누이를 동정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의 능력을 찬탄하고, 은밀히 그의 살인행위에 동조하게 된다. 왜? 그는 그만한 대가를 치렀으며, 그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고, 또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이 작품이 위대한 건, 독특한 소재로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의 심장을 자극하는 탁월한 심리분석과 밀도 있는 스토리, 그리고 하나의 소설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과 은근한 비판, 풍자가 가득 흐르기 때문이다.
그루누이가 아무런 채취가 없는 자신에게 사용하기 위해 온갖 역겨운 재료들로 인간의 냄새를 만드는 과정과 자신이 만든 향수로 사람들에게 신의 위치에까지 떠받들어지는 순간 등 읽는 내내 놀라움과 끔찍함, 두려움, 경의와 조소를 보내다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되기까지.. 냄새라는 하나의 감각을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오만가지 느낌을 체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마도... 인간에 대해 어떤 경멸을 느낄지도.
눈에 보이는 게 다 일까?
냄새에 관한 한 천재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냄새를 가지지 못한 모순덩어리 그루누이를 통해서 인간의 추악한 이면과 세상의 모순, 어쩌면 자신에 대해서까지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그는 천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