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베린 1 - 엘프의 소원
이수영 지음 / 황금가지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이수영님의 특징인 통쾌하고 서슴없는 문체는 이 쿠베린에 와서 더더욱 빛나는 듯 하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산만하다고 비판했지만, 나는 그 밑도 끝도 없는 묘사의 행진이야말로 쿠베린을 더욱 쿠베린답게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과 닮은, 혹은 같은 묘인족. 그리고 야생동물의 생활을 묘사해놓은 것 같지만 미묘하게 이 세상의 모습을 닮아 있는 세계. 만화처럼 영화처럼 먀냥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것 같았던 전개속에서 난데없이 죽어버린 아이들. 쿠베린 특유의 강함으로 모두다 이겨낼 것 같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모든 것은 더 꼬여버린다. 평화롭지 않은 세계, 꼬일 대로 꼬여버린 사건들이 원만하게 풀릴 가능성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막연한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전작인 귀환병이야기에서도 그랬듯,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고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고 누구도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주인공은 의외의 부분에서 지나칠 정도로 둔감하고 약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통쾌하고 시원한 전개는 보여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면서, 손가락질 당하면서도, 일단 자신이 목표하고자 했던 바는 끝내 해치운 다음, 강한자의 여유인지 앙갚음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나버린다.

멋있다면 멋있겠지만, 어쩐지 처음 책을 펴들었을 때처럼 책의 맨 뒤를 봤을때 그다지 느낌이 산뜻하고 개운하지는 않다. 긍정적이고 유쾌한 내용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한번더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 생각 없이 깔깔깔 웃고 덮어버리고 잊어버리게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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