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펄럭이는 세계사 - 인간이 깃발 아래 모이는 이유
드미트로 두빌레트 지음, 한지원 옮김 / 윌북 / 2025년 5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요소들을 뜯어보며 그 상징이나 은유를 알아보는 작업 너무 재밌지 않나요? 그래서 세상에는 기호학이라는 것도 생기고 그러나봐요. 그런 의미에서, 국기는 그 작은 네모 안에 그 나라에 있는 온갖 우여곡절과 스토리를 다 담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흥미진진한 기호잖아요? 그런데 제가 거기에 매력과 흥미를 느끼는 것에 비해 아는 게 너무 적어서 항상 아쉬웠어요. <펄럭이는 세계사>는 딱 제가 원하는 정도의 지식을 전달해주는 책이라 정말 너무 재밌고 유익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 미술시간에 국기 그리는 시간에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국기를 만들었지?' 하고 의아했어요. 태극문양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사방에 있는 팔괘는 순서도 어렵고, 뜻도 너무 어려웠거든요. 비교군이 옆나라 일본이나 중국이라 더 그랬나봐요. 그런데 <펄럭이는 세계사>를 보면서 새삼 우리나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국기들도 엄청 많구나, 우리나라 정도면 양반이었구나, 싶어서 놀라 버렸습니다. 아니, 국기 한복판에 국장을 딱 박아버리면 어떡하죠? 국민들이 국기를 그릴 수 있기는 한 걸까요? 가만 보면 국기를 수제로 제작할 수 없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에요ㅋㅋㅋ
여러 나라의 국기를 다루고 있다 보니, 책에서는 제가 잘 모르는 국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 나라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책이 아니어서 수박 겉 핥기 식의 이야기만 잠깐 하고 넘어가게 되는데, 그 '엄청나게 축소된'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그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페루를 점령한 시몬 볼리바르라는 남자는 그 영토를 페루와 볼리비아 두 나라로 분할했다는 거예요. 아니, 너무 이상하잖아요. 자기가 전부 점령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둘로 쪼개냐구요. 이런 특이한 선택을 하게 한 환경이나 상황이 뭐였는지 너무 궁금해서 페루 역사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다보면 이런 부분이 너무 많아요. 세계는 넓고, 역사는 정말 무궁무진하구나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태극기는 사실 그렇게 큰 변형을 거치지 않은 편에 속한 국기라 잘 몰랐는데, 세상에는 나라가 독립하거나 체제가 뒤집어지거나, 혹은 독재자가 집권하거나 그 독재자를 몰아내거나 해서 역사의 변곡점마다 국기를 갈아치우는 국가들이 꽤 많더라고요? 그때마다 이 조그만 네모에 자기 나라를 대변해줄 수 있는 상징과 가치를 부여하려고 애를 쓴 게 느껴져서 신기했어요. 사실 무심한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냥 조그마한 네모 표식일 뿐인데... 바로 그 표식 하나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의 바람과 자부심과 가치관이 녹아들어있는 거잖아요. 그 뜻을 아는 사람에게는 가서 와닿는 바가 또 다르구요.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국기들을 좀 더 열심히, 성의 있게 봐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굉장히 많은 나라의 국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설명이 너무 간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국기에 얽힌 각 나라별로 간단한 상황이나 역사 정도는 짚고 넘어가주기 때문에, 읽고 나서 더 흥미가 생긴 나라나 국기에 대해서는 따로 또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거예요. 전 이전에는 관심없었던 라틴아메리카 역사가 너무 궁금해져서 알아보고 있답니다. 세계 역사는 정말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고, 공감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좋은 세계사 입문서라고 생각합니다.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