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금지어 사전 - 보기만 해도 상식이 채워지는 시사 개념어 수업
김봉중 지음 / 베르단디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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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데 <트럼프의 금지어 사전>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트럼프가 보면 화나서 뒤로 넘어갈 단어들' 혹은 '트럼프 너는 무식하니까 이 정도도 이해 못하지?' 하고 비웃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실제로 정부에서 어떤 지침으로 특정한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게 너무 이상하잖아요. 욕설이나 슬랭 같은 단어라면 모를까,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를 금지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제가 너무 트럼프를 얕봤습니다. 정말로 지침을 내려 정부 공식석상에서 멀쩡한 단어를 금지시켜 버렸네요. 말만 들어도 독재로 가는 한 걸음을 착실히 내딛고 있는 것 같죠?


아무튼,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얘기하자면 생각보다 훨씬 더 사전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전 금지어를 쫙 적어놓은 리스트 같은 걸 생각했었나봐요. 단어를 묶어서 미국의 역사책 같은 내용이 시대별로 나오고요. 그런데 실제 <트럼프의 금지어 사전>은 각 단어마다 충실하게 기본적인 뜻과 실제 미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뜻, 그리고 현재는 이 단어와 연관된 사회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적혀 있어서 좀 의외였어요. 그러니까 '역사'보다는 '뜻'에 더 방점을 찍은 듯한 느낌이에요.


제가 섬세하게 알지 못했던 단어를 이번 기회에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예를 들어서 'increase'와 'enhance'는 둘 다 늘어난다, 증가한다는 뜻이지만 전자는 양적 성장에, 후자는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거든요. 개인적인 맥락에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oppression' 같은 단어도 공식적인 곳에서 쓰이면 일상화/제도화되어서 아예 한 사람을 구성하는 정체성이나 권리가 손상되는 상황을 가르키는 단어가 된다는 것도요. 이런 식으로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단어를 정확하게 서술해줘서, 단어에 대한 소양이 좀 더 올라간 것 같아요.


그런데 보다보니 그냥 사회적으로 올바른(PC) 용어 모음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제가 아는/모르는 용어에 대한 사전처럼 읽고 있다가 문득 '아 맞다! 이거 트럼프가 금지한 단어라고 했지?' 하고 새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트럼프 같은 극우주의자가 왜 금지시켰는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너무 바보 같은 짓이에요. 예를 들어서 '억압'이나 '형평성' 같은 단어를 금지시켰다고 해서,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정부가 그 단어를 금지시켰다는 기록만 남지 않나요? 지금이야 대통령 권한으로 이리저리 정부의 모든 예산과 정책을 쥐락펴락 한다지만, 종신제가 아니니까요. 평생 저 단어를 금지시킬 수는 없을 텐데!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 모든 퇴행을 지켜보며, 이 금지된 단어들을 꼭꼭 씹어 삼키는 것도 제가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실천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트럼프 네가 암만 금지해봐라, 이 단어들이 사라지나.ㅉㅉ.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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