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 은밀하고 뿌리 깊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
마야 뒤센베리 지음, 김보은.이유림.윤정원 옮김 / 한문화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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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솔직히 '우리는 병원에서 종종 무시당한다' 정도의 명제는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비단 여성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 남성분들도 많이 동의하시는 명제일 걸요? 저나 제 주변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적도 많고요.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지 않죠. 게다가 요 몇년 동안 언론이나 SNS 등에서 '현대의학은 대부분 건장한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걸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니 또 다른 충격이네요. 정확한 수치와 함께 눈앞에 차별의 증거가 들이밀어지는데, 어떻게 이걸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는지 놀라워요! 읽는 내내 경악과 경악과 경악의 연속이었어요. 



이토록 명백한 무지와 무시 속에서

 이 책에선 여성 환자가 무시되는 의료계의 구조 자체에 주목합니다. 몇몇 의사들이 못 말리는 성차별주의자라서 여자 환자들이 고통을 받는 거라면 차라리 이야기가 쉽죠. 소위 '썩은 사과'만 골라내면 되니까요. 하지만 엄청난 양의 논문과 연구와 조사 결과가 말해주는 진실은, 의료계 시스템이 너무나 남성 편향적이라 자신들이 그렇다는 사실 자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많은 연구자들이 여성을 작은 남성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고수합니다. 남성, 특히 백인 남성만을 연구하고는 유색인종 여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거라고 믿어버려요. 연구가 남성만을 대상으로 결론을 냈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숨겨버리죠. 그럼 어떻게 되느냐? 병원에서 백인 남성에게 알맞은 처방을 여성에게도 내려줍니다. 똑같은 정량을 처방하면 대체로 체중이 더 가볍고 남성과 신체적&호르몬적&신진대사적으로 다른 여성들에게는 약물을 더 많이 복용한 효과를 일으켜요. 2013년에 미국 식품의약국은 졸피뎀을 복용한 다음 날,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700여건의 보고를 확인합니다. 왜냐면 여성의 몸에서는 8시간이 지나도 몸 속에서 약 성분이 빠져나가지 않아서 운전을 하면 안 되는 상태였거든요. 물론 그 전까지는 누구도 몰랐지만요! 세상에, 이게 2013년에서야 밝혀진 사실이라니까요!


 임상시험의 대상에 임산부가 배제되는 문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지라 읽으면서 반성이 되더라구요. 저도 막연하게 '검증되지 않은 약품은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임산부에게 실험을 하는 건 비윤리적이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자가 지적했듯이, 아픈 여성들도 임신을 합니다. 임신한 여성들도 아플 수 있고요. 현대의학은 그 여성들을 완전히 방치하고 어둠 속에서 혼자서 고통을 무조건 견디게끔 내몰고 있어요. 이미 고혈압이나 우울증, 관절염 같은 병으로 고통받는 여성이 임신을 했다면, 그 여성은 그동안 먹고 있던 모든 치료를 갑자기 중단해야 합니다. 약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제대로 연구한 결과가 아무것도 없거든요. 이게 무슨 일이죠? 태아를 지키기 위해 임산부가 스스로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든가, 임산부의 건강을 위해 태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도박을 하든가, 둘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아무도 임산부를 대상으로 연구하지 않아서, 의사들조차 약물이 임산부와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에! OMG.. 이건 정말 너무나 불합리한 일이에요. 물론 지금까지 모든 사회규범은 언제나 임산부에게 '너는 태아보다 덜 중요한 존재니 참고 견디라'고 말해왔지만, 그게 옳은가요? 정말로?


 그런데 환자는 물론이고 연구자나 의사조차도, 자신들이 젠더 편향적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들에게 성과 젠더에 따라서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처방이 달라야 한다고,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환자들을 대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거든요. 예를 들어 여성도 심장병에 걸립니다. 여성도 폐암에 걸리고, 여성도 뇌졸중에 걸려요. 하지만 이들의 처방은 남성과는 달라야 한다고 보는 의대생들은 거의 없습니다. 교과서나 시험에서 그런 부분은 알려주지 않거든요. '여성 건강'이라는 과목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개 가정폭력이나 산부인과 임상 실습 같은 교육만 몇 시간 받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의학교과서나 의사 시험에서 젠더 편향성과 그게 따른 차이를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해요. 성인지 과학은 아직까지도 의료계에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비용은 사회가 다같이 치르고 있구요.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료계가 여성을 잘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더 문제인 건 여성 환자를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아프다고 말해도 아니라고, 너는 안 아프다고 하는 거예요! 이 책의 70% 정도는 수많은 여성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의사들이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몇 배는 더 절망하고 외롭게 싸워왔던 과정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신체적으로, 생리학적으로, 분명히 고통을 느끼는 데도 의사가 "환자는 정상이에요. 모든 건 환자분이 스스로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겁니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보세요." 같은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사례들이 정말 끝도 없이 나열되어 있어요. 이것은 아주 유구한 역사로서, 서양의 아주 초기 의학 문헌에서부터 히스테리 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주목받거나 동정받거나 정신적 문제를 가진 여성이 자신이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다고 계속 우긴다는 거죠;;; 이 편견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거치면서 더욱 단단하게 고정되어 아직까지도 표현만 다를 뿐 '너의 정신적인 문제가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거야' 같은 소리를 하는 의사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고 해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지점 중 하나는, 간혹 역사와 인식의 변화 속에서 헛발질을 하는 페미니즘 진영의 모습 또한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는 겁니다. 2세대 페미니스트조차 가부장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히스테리'라는 건 자율성과 주체성을 가진 여성을 견디지 못한 의사들이 꼬리표를 달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해요. 히스테리는 19세기의 새로운 마녀사냥이었다는 거죠. 하지만 저자는 거기에 대해 '진실의 조각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해석이 대부분의 여성들이 실제로 아팠다는 사실은 간과했다고 지적합니다. 여자들은 실제로 아팠습니다. 지금도 계속 아프고 있구요.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히스테리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는 것을 망설이는 것도 이해는 간다. 결국 수세기 동안 의학은 '여성은 아프며, 선천적으로 아프게 되어 있고, 이 점이 여성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를 정당화한다'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여성이 아프다는 첫 번째 주장을 수용하기 위해 두 번째와 세 번째 결론까지 인정할 필요는 없다. 여성의 건강이 나쁘다면 여성을 치료하는 의학 체계의 폐단 때문일 것이다. (p.107)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호소해도 '그건 마음이 만들어낸 거예요'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아무 조치도 없이 방치되고 있다뇨! 거짓말 같죠? 그러나 저자는 통계를 통해 이것이 사실임을 아주 차근차근 확인시켜줍니다. 검사 결과가 아주 명백하게 나오는 심장질환 같은 병조차도 그래요. 여성의 심장마비는 남성의 심장마비와 양상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사들조차도 잘 모르고, 그래서 수많은 여성들이 '검사를 받고도'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하고 그냥 방치됩니다. 어떤 논문에서는 심장질환을 앓는 여성의 44%가 의료진으로부터 스트레스나 우울증, 걱정 때문에 통증을 느끼는 거라는 식으로 자신의 증상을 폄하하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 징후가 명백하게 나타나고, 검사 결과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질병이 아니면 상황은 더 심각해집니다. 자가면역질환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고, 검사도 까다로우며, 의사들도 잘 모르는 희귀병들은 격차가 더 극심해져요.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은 유전병인데, 남성은 보통 진단까지 4년이 걸리지만 여성은 16년이 걸린대요. 세상에! 여성은 12년을 더 고통받고 나서야 자기 병명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건 단순히 희귀병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둘의 시간 격차를 좀 보세요!


 "환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질병을 진단하는 의사의 능력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성보다 여성의 진단에서 엄청난 진단 지연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 남성의 진단 시간이 더 빠르다는 점은 의사에게 진단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p.217)

 의사들은 대개 자신이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고 생각하고는 ("음, 당신의 마음이 당신을 아프게 하네요.") 다음 환자로 넘어갑니다. 하지만 정작 잘못된 진단으로 해결되지 않은 고통과 함께 남겨진 환자들은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걸 알아줄 다른 의사를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거나, 혹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의료 체계 속에서 조용히 사라집니다. 대부분의 만성질환 or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부유한 백인 여성들인 것도 이걸로 설명할 수 있어요. 부유하지 못하고 백인도 아닌 여성 환자들은 자신들의 병명을 진단받을 때까지 의료 시스템 안에 버틸 수가 없는 것이죠. 환자들은 내가 미쳐서 아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내가 아프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의사에게 납득시키려고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입니다. 당신이 만약 여성이고, 유색인종이고, 가난하면 더 그렇죠. 내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픈 것 때문에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어요! 사람은 아프면 당연히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고, 스트레스가 많아지잖아요. 그런데 의사들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는 오진을 해 고통 속으로 되돌려보내는 환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너무 충격적이에요.



우리는 나아간다 너무나 느리고 고통스럽지만, 어쨌든

 물론 지난 몇십년 동안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임상시험에도 여성을 포함시키라는 권고가 내려오고 (강제는 아닙니다) 의료진들도 조금씩 젠더가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아요. 수많은 환자들이 여전히 자기가 아프다는 걸 믿지 않는 의사들에 대항해 인터넷을 뒤져 자기 병명을 '발견하고' 스스로 진단해야 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정신병으로 분류되다가 결국엔 실제 병으로 인정받은 사례들 중 상당수가 환자들이 스스로 조직을 결성하고 국회를 압박하고 연구비를 펀딩하며 학회를 열어 의료진들을 지원했다는 사실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그건 바꿔 말해서, 그 정도의 조직력이 없는 희귀병은 아직까지도 어둠 속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니까요.


 의사들은 환자가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 제일 먼저 말을 떠올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검사 결과 말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얼룩말을 의심해봐야 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얼룩말 단계까지도 가지 못하고 막혀버린다면, 그게 한두명이 아니라 수십명 수백명 수천명 수만명이라면, 그게 보통 여성 환자들이 대다수인 질병에서만 반복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그건 구조의 문제고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의료 시스템에 사각지대가 있고 우린 그걸 인정해야만 해요.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죠. 세상 모든 질병이 이제는 완벽하게 밝혀졌다고 믿는 게 아니라면, 의학이 앞으로 더 밝혀낼 미지의 영역이 없다고 믿는 게 아니라면, 지금의 의학으로는 진단하지 못하는 질병이 있을 수 있고 놓치는 환자가 있을 수 있어요. 환자의 말에 귀기울이고 환자를 믿어줘야 해요. 설령 환자가 '그저 꾀병이나 부리는 히스테릭한' 여성 환자라고 할 지라도 말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 환자들에게 의사의 권위와 맞설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에, 예전에는 그저 '전문가의 말이 맞겠거니' 하고 포기하고 체념했던 문제를 '아냐 의사가 틀렸어! 난 정말 아프다고!' 하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점점 더 이런 젠더 편향성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건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아픈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있었잖아요. 하지만 요즘은 더 많은 여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상태를 말하고, 자기 경험을 공유하고, 자기 의사가 틀렸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죠. 덕분에 정말 너무나도 느리고 고통스러운 전진이긴 하지만, 아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요. 아픈 사람이 없고 누구나 고통받지 않는 세상이 BEST겠지만 그건 정말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요. 적어도 아프다면 자기가 왜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이 아픔을 어떻게 치료하고 다루어야 하는지, 남성 환자만큼 여성 환자도 똑같이 존중받고  세상에서 살고 싶네요. 아직까진 요원한 일이지만요.


 



 물론 이건 미국의 의료 시스템 속의 이야기지만 한국이라도 다를까요? 글쎄요.. 저 역시 생리 불순이나 염증 문제로 의사를 찾아갔을 때 "이건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흔한 거예요."라거나 "원인을 모르겠네요. 일단 알레르기 반응인 것 같긴 한데.." 같은 소리를 듣고 별 효과도 없는 치료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젠더 편향적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쪽이 더 놀라울 것 같네요ㅋㅋㅋ  사실 읽는 내내 '이런 일이 언제든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심과 '누구도 이런 일을 당하면 안 되지' 하는 분노가 차올라서 엄청 집중해서 읽게 됩니다. 서문의 추천사부터 본문의 꼭지 하나, 페이지 하나도 빼놓을 것이 없는 책이예요! 500여 쪽으로 꽤 두꺼운 편인데, 의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인데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어요. 몇몇 어려운 의학용어만 빼면 오히려 술술 잘 읽히는 편입니다. 꼭 한번쯤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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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현재의 기술로 관찰할 수 있고, 알려진 생리 기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질병만 ‘진짜‘ 질병으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히스테리가 심인성 질병으로 몰리자 어떤 증상이든, 특히 여성에 발병하며 의학이 아직 관찰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증상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무의식‘ 탓으로 돌렸다. 의학이 지식의 한계에 도달할 때 아무렇게나 갖다 둘러댈 수 있는 이론이었다. 이는 객관적인 증거로 입증되기 전까지 여성의 주관적인 증상에 대한 보고를 의사가 계속 불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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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 하셀틴 Florence Haseline 박사는 로런스와 와인하우스에게 "나는 이 현상이 악의적이거나 고의적인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사들에게 각자 관심 주제에 대해 연구하라고 하면, 50대이고 남성인 의사라면 모두 심장질환을 연구할 것다."라고 말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학 연구에서 연구자가 관심 있는 주제는 연구자 자신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이기 마련이다. 1990년에 슈뢰더 대변인이 "사람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자금을 쓴다. 남성이 대다수인 의학 연구 집단은 유방암보다는 전립선암을 더 걱정하기 마련이다."라고 언급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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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썰록
김성희 외 지음 / 시공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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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명의 작가들이 그려내는 다섯 가지 이야기들은 제각각이지만 <좀비썰록>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자아를 잃은, 인육을 먹는, 사람을 공격하는, 우리가 흔히 좀비라고 부르는, 어떤 존재가 등장한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고전과 판타지와 호러의 결합이랄까요? 


 제 마음에 쏙 들었던 건 <사랑손님과 어머니, 그리고 죽은 아버지> 였습니다. 원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도 특유의 서울사투리가 아주 맛깔나게 그려져 있잖아요? 그 말투를 잘 살렸더라구요. 그러면서도 시집살이에 시달리고, 마을 사람들의 잔혹한 뒷담에 시달리고, 끊임없는 남편의 육체적&정신적 학대에 시달리고, 온갖 노동에 시달리다... 결국엔 못 참겠다! 하고 뚜껑이 열려버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어쩜 그리 시원하던지! 그렇잖아요. 아직도 그렇게 사는 여성들이 많다는 걸 아는 입장에서, 더 이상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말 그대로 자기를 괴롭혀왔던 모든 속박을 다 깨부수는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으면서 어찌 짜릿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ㅎㅎ 로맨스의 기운이 살짝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사실은 '지옥'을 탈출하려는 수단이었을 뿐이고, 결국 사랑방 손님은 옥희와 옥희 어머니를 두고 혼자서 도망가버리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도 엄청 웃겼어요. 두 사람이 기차를 타고 떠나 도달할 곳이 어디든, 이 지옥보다는 행복했겠지요. 역시 해피엔딩이 좋네요.


 <관동행> 같은 경우에는 약간 애매한 것이, 관동별곡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게 분명하고 관동별곡의 내용을 따라가는 것을 보니 정철이 주인공인 것 같은데 또 읽다보면 정철은 주인공이 될 수가 없고 정 대감이라는 별개의 인물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정 대감이 정철이 아니라면, 어째서 그렇게까지 정철과 꼭 닮은 인생역정을 겪고 '관동별곡에서 다시 벼슬하는 부분까지 왜 그렇게 생략되어 있는 줄 너네 아니?' 같은 의문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걸까 잘 모르겠어요. 현대 국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인데, 워낙에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를 하셔서 저는 선생님이 사실은 이야기 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직접 겪었던 사람이 아닐까 의심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영원히 죽지 않는? 좀비 같은? 그런 인간이라는 암시가 마지막에 나오지 않을까 했었는데- 저는 지나친 생각이었던 걸로^^ 하지만 단순히 수업 시간에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한 썰 치고는 너무 장황하고 본격적이라서 이런 숨겨진 요소가 하나쯤 들어있었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만복사 좀비기>는 읽는 내내 으악! 으악! 하는 고통스런 비명이 저절로 나오는 작품이었어요. 무서워서? 아니요. 슬퍼서? 아니요. 남자 주인공의 비호감을 견딜 수가 없어서요.. 어쩌다 보니 만복사라는 절에 갇히게 된 청년이 너무나도 혼인이 하고 싶어서(;;) 여자만 보면 안달복달한다는 내용이 그려져있는데, 여자 독자 입장에서는 단지 '치마를 둘렀단 이유만으로' 자기 혼인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침을 질질 흘리는 남자를 보고서 불쾌함을 느끼지 않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상대방 의사는 생각도 않고 김칫국부터 마시면서 상대를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여자'로 여기는 그 사고방식 자체가 현실에서도 아주 흔하기 때문에.. 정말 주인공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엔딩에서도 웬만하면 안타까움을 느끼고 싶은데 전혀 그럴 수가 없더라구요ㅠ 학창시절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술술 잘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역시 똑같은 불쾌감을 느끼게 될까 궁금해졌어요. 시대가 변했고 제가 변했으니 역시 마찬가지이려나요?


 <운수 좋은 날>은 유일하게 현대 배경으로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작품들은 전부 다 원래의 고전, 원래의 시간대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데 비해서 이 작품만 유일하게 지금 인터넷도 되고 스마트폰도 되는 시대에서 이야기가 진행돼요. 제가 <관동행>에서 기대했던 요소가 바로 이 작품에서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육식과 채식이라는 현대적인 쟁점을 좀비와 결합시켜서 극에 녹여낸 게 재밌었어요. 뒷이야기가 좀 더 이어졌어도 좋았을 텐데, 진실이 밝혀지고 세 사람이 모두 상황파악을 완료한 순간 이야기가 끝나버려서 아쉬웠습니다. 저는 이 뒤에 해환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그래서 결국 어떤 삶을 살지가 궁금하거든요! 정말로 엄격한 비건으로 살면,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요?


 <피, 소나기>는 절절한 멜로드라마죠. <소나기>는 첫사랑의 아이콘 같은 작품인데, 거기서 죽은 소녀가 다시 돌아왔다는 아이디어 정말 천재적이에요! 소년이 소녀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여전히 함께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위안이 됩니다. 실제로는 누구라도 그러기 힘들다는 걸 알아서 더 그래요.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선뜻 등을 내어주는 소년과, 자아를 잃고 피에 굶주려 미쳐 날뛰면서도 소년이 막아서면 얌전해지면서 등에 업히는 소녀.. 이 둘이 찐사랑이 아니면 뭐겠어요? 결국 원작의 마지막과 겹쳐지는 엔딩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처음 <소나기>를 읽었던 그 날처럼 마음이 아릿해집니다. 흑흑 얘들아.. 어른들이 아무것도 못 해줘서 미안하다..


 익숙한 고전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만나는 일은 작가나 독자 양쪽 모두에게 위험부담이 적은, 재미있는 놀이 같은 경험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아서 그냥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쉬운 부분들을 찾아내서 발견하고 거기에 문학적 상상력을 불어넣은 작품 특유의 신선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그 느낌이 정말 좋아요~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시도 환영합니다! 앞으로 꾸준히 다른 소재들로도 작업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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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안 2021-02-1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만복사 좀비기>가 자기 혼자만 사랑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여자라면 연애 상대, 결혼 상대로 보는 사람들의 환상을 산산이 깨 주는 작품이라고 봤어요. 여주인공은 한 번도 양생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준 적이 없고, 결국 양생은 퇴치 대상에 불과했으니까요.
 

소년이 주먹으로 소녀 입술을 닦아주었다.
소녀는 소년의 냄새를 맡았다. 소녀는 자신이 입고 있는소년의 옷 냄새도 맡았다.
소년은 신고 있던 고무신을 벗었다.
소년은 무릎을 꿇고 앉아 소녀의 짓무른 발을 잡았다. 그런 다음 소녀 발바닥에 묻은 재를 정성스레 털고 신을 곱게신겨주었다.
소년이 올려다보며 웃었다.
"우리, 산 너머에 갈까?"
소녀는 살기를 게우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 소년을 보기만 했다.
"자."
소년은 소녀에게 등을 보였다.
소녀가 업혔다.
소년은 소녀를 업고 불가로 걸어갔다.
소녀는 소년 등에 아기처럼 볼을 댄 채 잠잠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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