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김 부장 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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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은 각자 다른 직업과 직위를 가진 6명의 여성 회사원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고충이나 소회를 풀어낸 책입니다. 아무래도 여성 조직원들은 남성 조직원들은 받지 않는 여러 압박을 받는 데다 롤모델도 별로 없다 보니 막막할 때가 있잖아요? 거기에 '너 혼자가 아니다! 우리도 여기 있어! 다함께 버텨보자!' 하고 으쌰으쌰 하는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일종의 처세물입니다. 대기업 부장부터 프리랜서 작가까지 다양한 직종의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총 6장, 각자 다른 소주제로 묶여있고 각자 한 꼭지씩 맡아서 이야기한다는 느낌이라 약간 수다 떠는 느낌의 구성이에요. 특히 각 장의 마지막은 사연을 받고 거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같이 토의하는 방식인데 여기가 특히 좋습니다. 왜냐면 그 전까지는 부장은 부장대로, 과장은 과장대로, 대리는 대리대로, 사원은 사원대로, 프리랜서는 프리랜서대로.. 각자의 입장을 하나씩 이야기했다면 여기서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식으로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거든요. 예를 들어 부장이 A라는 해결책을 권유하면 듣고 있던 대리나 차장이 그건 아닌 것 같다며 B는 어떻겠냐고 제안합니다. 회사생활에는 어차피 정답이 없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고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사연의 주인공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연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말이죠!


 4장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같은 경우는 사실 정부나 기업,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이상 별다른 대책이 없는 이야기들이라서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남자들이 아이를 키우는 세상이라면 어떨까?」 이런 상상 사실 사회생활 하는 여자들이라면 전부 한번씩은 다 해봤을 거고, 차별적인 현실 인식은 우리에게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는지라, 별 실효가 없게 느껴졌어요. 반대로 3장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같은 경우는 아주 구체적인 상황+아주 구체적인 조언을 해줘서 읽는 내내 도움이 엄청 많이 되더라고요. 골프나 술자리 없이도 사내 네트워킹을 하는 방법이라든지, 책임이 애매한 상황에서 타 부서와의 갈등을 조율하는 방법이라든지, 일을 잘하는 것만이 꼭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 아니라든지. 


 3장 중에서도 「너무 안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이라는 꼭지에 정말 공감됐어요. 내용인 즉슨, 정말 너무너무 안 맞고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있을 때, 사실 그 사람은 정말 '호의'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프리랜서인 본인은 자신이 필요하지도 않는 미팅도 꼬박꼬박 불러내고, 항상 진척을 체크하고, 개인 일정을 공유하고.. 이런 동료가 너무 스트레스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동료는 자신은 그걸 좋아하기 때문에, 상대도 그렇겠거니 생각해서 일부러 그랬던 것이라는 일화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래요. 동료의 무능이나 이간질 같은 부분이 아니라 사소한 부분들, 예를 들어 연락이나 일정공유, 공사구분 같은 것들은 대개 성향 차이가 날 뿐인데 상대는 자신을 기준으로 두고 호의를 보인 경우가 많다는 걸 갈수록 깨닫게 됩니다. 내게 해줬으면 하는 걸 상대에게 해주는 거죠! '여우와 두루미의 식사' 정말 딱 들어맞는 비유입니다.


 사회 생활이라는 게 그렇듯 항상 비슷해 보이지만 또 각자가 놓인 처지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 책 하나로 모든 고민을 다 해결할 수는 없어요. 독자들도 그걸 기대하지는 않을 거구요. 이 책 역시 6명의 저자들이 각자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은 뒤 '내가 해보니까 이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더라' 하는 대안 제시 정도입니다.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현실에서 그런 대안을 제시할 롤모델이 너무나 적은 게 또 사실 아닙니까! 주변에 어느 순간 보면 터놓고 의논할 사람도 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니까요. 때로는 조언해준 그 길을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을 제시해주는 것만으로도 조언은 큰 도움이 되기 마련이니.. 언슬조의 의의는 바로 그것 아닐까요?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수많은 여성 동지(?)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버텨봅시다. 나도 당신도 언니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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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알고 있다 -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퍼트리샤 윌트셔 지음, 김아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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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 마플>의 실사판이라고 불리는 영국의 법의생태학자, 퍼트리샤 월트셔! 그녀는 꽃가루에 능통한 식물학자로 이름을 떨치다가, 어느 날 경찰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고 법의생태학의 세계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녀가 지적했듯이 아직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물론 한국도 포함입니다) 그게 뭔지 제대로 모르지만요. 지문이나 DNA 같은 '범인도 주의하면 남기지 않을 수 있는' 흔적과 달리, 범인이나 피해자의 옷이나 차, 피부나 머리카락에 남은 생태학적 흔적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 때문에 더욱 확고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아직 크게 활성화되지는 못했지만요.


 읽는 내내 정말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이런 직업이, 이런 작업이 한국에서도 하루빨리 현장에 도입됐으면 좋겠어요! 범인이 자신이 묻힌 줄도 모르고, 어떻게 없애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런 증거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억울함이 사라지겠어요? 퍼트리샤의 책에 따르면, 특히 실종사건이나 강간사건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더라구요. 강간의 경우 범인이 "우리가 성관계를 한 것은 맞다. 하지만 합의하에 한 일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피해자의 몸에서 DNA가 검출된다 해도 별로 도움이 안 되잖아요. 성관계 자체는 인정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후의 진술이 엇갈릴 경우, 양 쪽의 몸에 묻은 생태학적 증거들을 채취해 대조해보면 누구의 진술이 맞는지 판가름이 나서 사건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합니다. 얼마나 좋아요? 범인은 감옥으로, 무고한 사람은 사회로, 피해자는 가족의 품으로! 


 사람은 거짓말을 합니다. 혹은 잘못 기억할 수도 있죠. 관계자가 2명 이상일 때, 모두의 말이 맞는 경우는 오히려 굉장히 드물다고 해요. 많은 사람들의 진술에서 어떤 부분이 정확한 사실이고 어떤 부분은 오류인지 잡아내는 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잘못 기억하지도 않죠. 내가 장미덩쿨 근처에 있었다면 내 몸에 묻은 생태학적 증거는 장미덩쿨을 가리킬 겁니다. 반대로 내가 놀이공원 근처에 있었는데 분수대 옆에 있었다고 우겨봤자, 내 몸의 증거들은 다른 말을 할 거예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은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자연은 아니죠. 우리는 더 확실한 증거, 더 정확한 증거를 찾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영국 내에서도, 심지어 퍼트리샤가 이렇게 유명해진 지금까지도, 현장에서 생태학적 증거를 오염시키는 일은 상당히 흔한 것 같더라구요. 현장 경찰이나 부검의, 심지어는 다른 법의학자들까지도 그녀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이걸로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의아해하고 비웃는 경우도 많았대요. 물론 퍼트리샤는 신경 쓰지 않고 '피고 측 변호인이 똑똑하다면 무슨 질문을 할까?' 한 발 먼저 생각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오염을 막고,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고, 장소나 사람을 특정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했습니다. 그 노력이 책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어요. 한 장르의 선구자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 외부로부터 거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는데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잘 해낼 수 있나 정말 놀라울 뿐이에요!


 게다가 생태학의 세계는 아직 무궁무진합니다. 제가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아주 어렴풋이 의심하긴 했지만) 사망 추정시간을 예상하는 데 너무나 변수가 많아서 아직까지 우리 과학으로는 유의미하게 특정을 짓기가 어렵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미국의 인류학자 윌리엄 배스는 경찰로부터 사체가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정작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있는지 느끼고 '시체 농장'을 세웁니다. 과학자니까 데이터가 필요했던 거죠. 자연적인 환경에서 다양한 환경과 변수 하에서 시체를 실제로 관찰하고 정말로 시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식으로 변화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기록하는 겁니다. 이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실제 현실에서 발견되는 많은 시체들이 언제 죽었는지 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저항하고 있기도 하고, 유색인종과 여성의 비율이 턱없이 낮아서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만 관찰이 이루어지는 문제점도 있어요. 저만 해도 선뜻 제 시체를 기부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죽은 후에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선뜻 내키지는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데이터들이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현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더 널리 알려져서 저항감이 좀 들어들면 좋겠어요.


 중간에 몇 부분 문장이 어색한 게 있어요. 예를 들면 166페이지. "자생종 야생동물들도 쉽게 드나들지 못하는 이런 곳들을 나는 항상 이런 장소를 암울함과 파멸이 짙게 드리운 곳이라고 여겼다." 이런 곳들을/이런 장소를 하면서 같은 워딩이 두번이나 들어갑니다. 뒤에 하나는 빠져야 맞는 문장이겠죠? 193페이지는 약간 헷갈립니다. "당신의 심장은 뛰지 않고 폐는 숨을 쉬지 못하며 몸 전체의 모든 세포로 산소를 퍼뜨린다." 여기서 몸 전체의 모든 세포로 산소를 퍼뜨리는 주체가 무엇인지 나와있지 않아요. 아마 짐작하기로는 혈관이나 뇌가 들어가야 맞지 않은가 싶은데, 아니면 앞부분과 연결되어 폐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쉼표가 하나 들어가든지 아니면 주어가 하나 더 들어가든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뭐, 이런 건 사소한 부분이지만요.


 정말 모든 챕터 하나하나가 다 흥미로워요. 심지어 수사와는 관계없는 본인의 어릴 적 얘기조차도 그렇다니까요! 세계 제 2차 대전에 태어나 온몸에 화상을 입어 병치레로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했던 소녀시절을 거쳐 지금 영국 최고의 법의생태학자가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분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더라구요ㅋㅋㅋ 왕년에(?) CSI나 범죄수사 드라마를 즐겨보셨던 분들이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살인과 강간, 범죄와 수사, 증거와 재판, 죽음과 인간.. 이런 요소들에 관심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즐거운 독서가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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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허밍버드 클래식 M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한에스더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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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다른 장르로 옮겨져 엄청나게 성공한 작품을 원작으로 만나보는 건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 도대체 원작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을 주의깊게 보다보면 어느새 책 한 권 뚝딱이라니까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어마어마하게 성공했으니 아마 저처럼 뮤지컬로 먼저 접하신 분들도 많지 않을까요?


 뮤지컬과 원작 소설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우선 뮤지컬에서는 지킬 박사의 서사를 따라가잖아요. 지킬이 왜 실험에 집착하는지, 왜 실험이 좌절되는지, 왜 자기 자신의 몸에다 실험을 하게 되는지, 왜 권력자들에게 복수를 하는지.. 뮤지컬에서는 거의 모든 장면이 지킬을 위해 사용되고 있어요. 하지만 원작은 뮤지컬에서는 조연에 가까운 지킬의 친구이자 조력자 '어터슨 변호사'를 화자로 내세웁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소설을 처음 만났다면, 아마 미스터리 추리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무대 위에서 똑같은 배우가 1인2역을 하는 뮤지컬과 다르게, 소설 속에서는 지킬과 하이드는 얼굴이나 키, 몸매나 걸음걸이 같은 모든 부분이 전부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지킬=하이드라고 연결 짓지 못하는 거구요.


 뮤지컬에서는 하이드가 지킬 실험에 반대했던 상류층 인사들 찾아다니면서 위선자라고 죽이고 다니는데, 정작 소설에서는 아주 교양있고 매너있고 친절한 신사를 그냥 냅다 후드려 패서 죽여버립니다. 왜냐면 그때 하이드는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중이었거든요. 이걸 저택의 하녀가 창문으로 목격하게 되는데, 그 하녀가 이 소설에 나름 비중있게 나오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에요. 그러니까, 뮤지컬의 엠마/루시 같은 여주인공 위치의 인물은 소설에서는 아예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책 실물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당히 얇아요.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이 모두 있다- 는 아이디어 자체에만 충실한 느낌입니다.


 저는 뮤지컬을 보면서도 '결국 지킬 내면의 악을 분리해낸 게 하이드니까, 하이드가 저지르는 악행들은 사실 지킬이 내심 원했던 거 아닌가? 그렇다면 지킬은 별로 좋은 사람 같지 않은데..'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원작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심지어 소설은 지킬이 스스로 자기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극단적인 이중 생활을 하는 인물로 나와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둘로 쪼개서 악(惡)은 양심의 가책 없이 자유롭게 나쁜 짓을 하니 좋고, 선(善)은 양심의 가책을 안 느껴서 좋고, 윈윈이네? 같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해내는 거예요!! 게다가 두 가지 본성 모두 자기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이드가 저지른 악행들은 내가 저지른 죄가 아니니까~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는 듯한 묘사도 있어서 헨리 지킬이란 인간이 너무 싫어져 버렸습니다-_- 


 결국 죄를 저지른 건 하이드였으니 지킬의 선한 면은 손상되지 않았고, 때로는 하이드가 저지른 악행을 보상하기도 했네. 따라서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지.

 내가 모른 척 했던 하이드의 악행에 관해서 구구절절 열거할 생각은 없다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저지른 죄라고 인정할 수 없거든. (p.110) 

  저기서 말하는 지킬이 보상한 하이드의 악행은, 길가던 어린 여자아이를 밟아서 비명을 지르게 하고 뭐 그런 일이었단 말이에요;;; 그런 짓을 해놓고 '그건 내가 아니라 하이드가 한 거야! 나는 잘못이 없어! 물론 하이드 역시 진정한 나의 한 조각이지만! 그래도 난 양심의 가책 안 느껴! 그건 하이드가 한 거니까!'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요? 지킬인 순간에도 솔직히 영 별로인 인간 아닙니까? 그 어린 소녀에게 너무 미안하네- 이 정도는 지킬로 돌아왔을 때는 느껴야 될 텐데.. 이건 뭐 뮤지컬 속에서 하이드가 때려죽이던 위선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뭣 같은 상류층 인간 수준..^^ㅗ 소설 보고 나니 역시 하이드를 만들어낸 건 지킬이다 싶어져요.


 허밍버드 클래식 시리즈가 손바닥만한 크기에 가벼운 종이를 사용해서 가지고 다니기 편하기도 하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분량이 짧기도 해서 굉장히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어요. 6장 창가에서 있었던 일 같은 경우는 페이지 수가 3페이지가 전부입니다. 그냥 잠깐 한 5분 안에 한 장 전체를 다 읽을 수 있는 거예요ㅋㅋㅋ 뮤지컬 좋아하셨던 관객이라면, 원작 소설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고전인데 딱딱하지 않고 꽤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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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허밍버드 클래식 M 2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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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을 드디어 원작으로 만나봤어요!! 사실 그동안 다양한 장르, 다양한 작품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을 만나왔지만 정작 원작은 읽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워낙에 유명한 소설, 유명한 괴담이다 보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읽지 않은 수많은 고전 중 하나였던 거죠. 읽어보니 확실히 고전이 왜 고전인지 알겠더라구요.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인데도 아주 그냥 술술 읽혀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괴담

 물론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데는 이미 캐릭터와 이야기를 대강 알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했습니다. 어느 버전이든 상당히 많이 각색이 되긴 했지만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애니메이션, 소설 등에서 만났던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분명하게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보신 분이라면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니라 창조자의 이름이며, 괴물은 따로 이름이 없이 크리쳐로만 불린다는 사실을 아실 거예요. 어릴 적에 영화 <프랑켄슈타인>이나 애니메이션 <두치와 뿌꾸> 같은 작품에서 머리에 나사를 박은 거대한 초록 괴물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소설 속 크리처의 키가 240cm나 되고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힘과 스피드와 체력을 가졌다는 걸 쉽게 납득하시겠죠. NT Live <프랑켄슈타인>이나 2014년 연극 <프랑켄슈타인>을 보신 분이라면 크리처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을 만들어달라고 빅터를 협박했던 내용을 아실 겁니다. 이런 식으로 그동안 다양한 곳에서 마주친 프랑켄슈타인의 조각들은 끝도 없죠! 이 모두가 원작을 빠르게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엄청나게 도움을 줍니다. 


 게다가 이번 허밍버드 클래식M 버전 같은 경우엔 1831년판 수정본이거든요. 그 말은 작가의 서문도 2가지 버전이고, 1818년 초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을 작가가 수정한 내용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영화 <메리 셸리>를 만나본 저로서는 메리 셸리가 남편을 깎아내리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하면서도 본 소설은 온전히 자신의 창작물이라는 걸 밝히고, 남편은 (자기가 쓰지도 않은 소설을 자기 소설인 양 써놓은) 1818년 서문에만 크레딧을 가진다는 걸 은근슬쩍 흘렸다는 걸 눈치챘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소소한 설정들을 수정하면서 작품 내에서 약간의 설정 충돌이 일어나는 걸 지켜볼 수 있는 건 덤이죠ㅋㅋ


 프랑켄슈타인의 아이디어 자체가 괴담에서 시작되었던 만큼, 공포를 묘사하는 데 굉장히 충실하다는 느낌입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생각보다 크리처가 존재감에 비해서 정작 비중이 아주 적고, 굉장히 나~중에 등장하는데, 이건 결국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알 수 없는' 미지(未知)의 존재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프랑켄슈타인도 크리처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소설 절반이 지나가도록 알 수가 없고, 그래서 주인공만큼이나 독자도 겁에 질리게 되는 거죠. 크리처가 탄생하자마자 프랑켄슈타인은 그 기괴하고 흉측한 외모에 놀라 도망쳐버렸고, 이후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크리처가 사라지고 없었으니.. 프랑켄슈타인 입장에서는 크리처와 소통하거나 그의 정체(?)를 탐구할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때문에 크리처가 뭘 원하고 무엇 때문에 복수심에 불타는지는 11장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가 있어요.



나를 빌어 나온, 나와는 다른 존재

 메리 셸리가 여자 작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작가의 성별을 빼놓고 봐도 창조자-피조물이라는 관계성이 있기 때문에<프랑켄슈타인>은 페미니즘 비평도 꽤 유명한 작품이잖아요~ 확실히 원작을 읽으니까 그런 부분도 잘 보이더라구요.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나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공포를 건드리니까요. 심지어 그렇게 나를 통해 생명을 얻은 존재가 이 세상에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잖아요. 도대체 어떤 존재가 탄생할지 우리는 모른다구요! 임신과 출산이 마냥 행복하고 축복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 나를 평생 옭아매고 '노예'로 만들 (실제로 프랑켄슈타인이 크리처를 생각하며 이 워딩을 사용합니다) 일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프랑켄슈타인이 고민하다 결국 크리처에게 짝을 지워주지 않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크리처에게 짝지워주기 위해 만들어낸 그 존재가 크리처를 거부하면? 크리처보다 더 악랄한 괴물이면?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에 자신을 빼고 맺은 협의을 거부하면? 그들이 자식을 낳으면? 그래서 괴물들의 신인류가 새롭게 시작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창조물에 대한 공포에 더해, 창조물이 자신과 다른 사유와 추론의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인식까지! 이건 정말 현대적인 관점의 이야기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계속해서 '나는 이 존재를 창조했으니, 이 존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만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여성이 모성애를 타고난다고 강요받던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라니! 정말 천재 아닙니까?!??? 너무 멋져요!!!


 프랑켄슈타인-크리처 모두에게 용서 없는 파멸을 준다는 점에서 결말도 완벽합니다. 이 둘은 어떻게 해도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운명이잖아요. 시작이야 어찌됐든, 자기 자신에게만 열중하면서 주변인들을 너무 많이 희생시켰어요. 크리처가 울부짖으면서 '나만 나쁘냐'고 광광댄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용서받을 수는 없죠. 크리처의 외모만 보고 배척한 사람들이 잘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게 살해당해도 마땅한 죄는 아니잖아요? 게다가 앙리나 엘리자베스까지 가보면, 그냥 상대를 고통에 빠뜨리려고 무고한 사람을 죽인 거니까요. 프랑켄슈타인은 또 어떻구요? 본인은 정작 자기 손에 피를 안 묻혔으니 OK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쥐스틴이 무고한 걸 알면서도 진실을 밝히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 순간부터 살인범이나 마찬지인 거잖아요. 자기 자신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줄 아는 이 못난 남자들에게 마땅한 처벌을 시원하게 내려주는 결말이라 좋아요ㅎㅎ



 이번에 허밍버드에서 뮤지컬-오페라 원작이 된 고전들을 특별히 엄선해서 시리즈로 내놓는다고 하는데, 공연을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저로서는 라인업이 너무 만족스러워요! 게다가 책도 적당히 가지고 다니기 좋은 크기와 디자인이라 틈틈이 읽기도 편했구요. 후속작으로 나온다는 <오페라의 유령>이나 <두 도시 이야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이 시리즈로 구비하고 싶네요^^

당신은, 저의 창조주이신 당신은, 피조물인 저와 단단히 엮여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당신이나 저,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 끊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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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기 - 사고 습관을 길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리용러 지음, 정우석 옮김 / 하이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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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기>는 수학으로 시작해 물리 이야기를 거쳐 일상 생활 속에 스며든 과학 이야기를 하는 책입니다. 저는 '과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입문서를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제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수준이 높은 내용이었어요. 고등학교 정규과정 이상은 배웠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 있거든요. 수식이나 공식을 아예 모르는 기초자가 개념을 잡기엔 조금 부적절합니다. 그보다는 여러분이 예전에 배웠던 수학 공식이 사실은 이런 걸 계산하기 위한 거였어요~ 하고 다시 한번 짚어주는 것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예를 들어 루트라는 게 뭔지 알려주지 않고 냅다 공식에다가 루트를 집어넣는 식이랍니다. 미적분 얘기를 할 때도 아주 간단한 개념만 잡아주고는 바로 미적분 공식으로 넘어가는지라, 만약 로그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수학 공식을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만큼 수학-물리-과학상식에 대해 엄청 간략한 설명은 얻을 수 있어서 그런 용도로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만족도가 높으실 것 같아요~ 저도 수학 파트에서는 공식 하나하나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엄청 진도가 느리게 나갔는데, 미적분 나오면서부터는 그냥 전체적인 개념만 잡는다는 느낌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더니 책이 술술 읽히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수학] 파트에서는 페르마의 정리가, [물리] 파트에서는 블랙홀 개념이, [과학] 파트에서는 [별은 왜 흑백으로 보일까?] 하는 이론이 가장 흥미진진했습니다! 특히 페르마 같은 경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전문이 아닌 아마추어 수학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페르마의 정리를 설명해주는 책의 52~53페이지의 공식에 잘못된 점이 있었다는 겁니다. 2의 2의 n승이라고 적혀있어야 하는데 2의 2n승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아무리 읽어도 이해를 못 하겠더라구요ㅋㅋㅋ 2의 2의 5승, 즉 2의 32승이 되어야 하는 부분에서도 2의 3의 2승이라고 잘못 적혀 있어서.. 수학/과학을 다루는 책이니만큼 이런 공식상의 오류는 굉장히 치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쇄부터는 빨리 수정이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블랙홀이라는 개념이 호킹 박사 생전에 증명된 적이 없었다니.. 이것도 처음 알았어요! 저는 너무 당연하게 '블랙홀'이라는 개념을 듣고 자라와서 당연히 우주 어딘가에 이런 구멍(?)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얼마 전에 블랙홀의 존재를 관측했다고 전세계적으로 난리가 났던 게 비로소 이해가 되더라구요. 이전까지는 '빛조차도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절대적인 질량의 공간'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상정만 했지 증명되지 않았다는 게 정말 놀랍지 않나요? 질량이 너무나 크면 시간조차도 느리게 움직일 수 있다니, SF 단골소재가 영 틀린 헛소리는 아니었다는 거잖아요. (물론 증명되지 않은 이론들도 엄청 차용하긴 하지만요) 게다가 블랙홀 안에서는 시간은 양방향으로 흐르는지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데, 오히려 지금 현실 세계에서 자유롭게 오가는 공간은 블랙홀 안에서는 일방향으로밖에 움직일 수 없다니, 이런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존재에 어떻게 매혹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최근 모든 과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라는 게 이해가 갑니다.




 아무래도 아주아주 복잡하고 지금도 세계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다루기 때문에, 엄청나게 간소화되어 있다는 게 느껴져요. 제가 보기엔 충분히 복잡한 공식을 가져다놓고 '이건 하나도 안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복잡한 공식을 줄인 겁니다' 하고 설명하지 뭐예요?!?? 아마도 원래 공식은 칠판 하나를 빼곡히 채울 정도로 긴데 그걸 짧게 줄였기 때문에 과학자=수학자인 저자 입장에서는 아주 간소하다고 느껴지나 봅니다ㅎㅎ


 1장 수학, 2장 물리를 넘어서 3장 우리 생활 속의 과학이야말로 제가 이 책을 펼치면서 기대했던 부분일 텐데, 다 읽고 나니까 왜 이런 구성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겠더라구요. 책 전체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A는 ~~~한 것이다> 하고는 앞장과 연관된 부분을 뒷장에서 설명하는 식이었습니다. 결국 앞부분을 소홀히 읽으면 뒷부분에서 진짜 흥미를 가진 내용이 나와도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별을 왜 흑백으로 보일까?' 하는 부분에서는 블랙홀 문제에서 다루었던 <흑체복사>라는 개념이 나오거든요. 흑체복사가 뭔지 앞서 2장에서 이미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3장에서 나와도 연관해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간략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많은 설명들이 순서대로 촘촘하게 깔려있어서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시길 권합니다. 

  

 최근 들어서 이런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지는 게, 아무래도 실생활에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긴밀히 관련이 있는 '수학'과 '과학' 특유의 매력에 빠진 것 같아요! 관련한 서적들을 좀 더 읽으면서 이 책에서 다뤄진 수많은 소재들을 하나하나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은 넓고, 과학의 세계는 아직 무궁무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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