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 1912년 오리지널 초판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진 웹스터 지음, 허윤정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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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은 서간체 문학이 바로 <키다리 아저씨>였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그전까지는 한번도 이런 식으로 온통 편지글로 쓰여진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정말 신기했죠.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에게 퍼붓는 이야기인데도 흐름이 있고 서사가 있고 스토리가 이어진다는 게 정말 재밌었어요. 물론 엄청난 부잣집 후원자가 가난한 고아 소녀에게 아낌없는 후원을 해준다는 설정 자체도 뭔가 꿈 같아서 좋았답니다~ 어른이 된 지금 다시 만나본 <키다리 아저씨>가 그때만큼이나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역시 잘 쓴 작품은 언제 읽어도 재밌는 법인가봐요. 


 <키다리 아저씨>는 역시 주인공인 제루샤 애벗, 애칭 주디의 사랑스러움과 생기발랄함에 엄청나게 기대고 있는 작품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디의 시선으로, 주디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읽으면 읽을수록 이 고아 소녀가 글쓰기에 얼마나 재능있는지 또 얼마나 똑똑하고 독립적인지 느끼게 돼요. '키다리 아저씨'라는 애칭만 해도 그렇죠. 누가 자기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얼굴 모를 후원자에 대고 간 크게 거미 이름을 애칭이랍시고 붙인답니까? 한국어로 초월번역 되어서 그 당돌함이 묻힌 감이 있는데, 영어 원문을 보면 Daddy-long-legs 라는 거미 이름이잖아요. 만약 존 스미스 씨가 조금이라도 옹졸해서 그 호칭 맘에 안 든다고 기분 나빠했으면 대학 생활 시작해보기도 전에 끝날 수도 있었다구요;;; 그때는 첫 편지라 키다리 아저씨가 그 정도는 받아주겠거니 하는 계산도 없었을 때잖아요. 정말.. 대담한 아가씨입니다..


↑ 이런 귀여운 그림으로 자기 반성을 어필하는 소녀에게 어떻게 계속 화를 내겠어요?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올라온 적이 있는데, 소설과 뮤지컬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저비스'가 직접 등장해서 자기 이야기를 가지느냐 아니면 끝까지 어둠 속에 묻혀 드러나지 않느냐 하는 부분일 겁니다. 사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어린아이였을 때도, 소설 속 저비스 씨가 무척 음흉하게 느껴져서 둘이 이어지는 게 좀 싫었어요ㅋㅋㅋ 특히나 키다리 아저씨가 방학 동안 샐리네 집에 가지 말고 농장으로 가라고 일방적으로 지시한 후에, 갑자기 농장에 저비스 씨가 '우연히' 뿅 하고 나타나서 꽁냥대는 부분에서 어린 나이에도 '키다리 아저씨가 저비스구나!' 하는 느낌이 팍 들더라고요. 저비스 씨가 뒤에서 교묘하게 다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였어요. 어른이 치사하게 이래도 되나 싶은 느낌? 주디가 편지에 지미에 대해 쓰기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자기를 어필하는데, 이건 반칙이잖아요! 이번에 읽을 때도 마찬가지 인상이었습니다. 저비스가 주디의 선택권을 다 빼앗고 자기랑 사랑에 빠지게 조종한 거나 마찬가지에요. 이게 평범한 남녀관계였다면 이런 계략(?)이 용인될 수도 있겠지만, 둘은 후원하고 후원받는 관계잖아요. 불공평할 수밖에 없죠.


 뮤지컬에서는 편지를 읽는 게 자기라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고, 후회도 하고, 고백할까 몇번이나 망설이는 장면들이 있어서 그나마 좀 상쇄가 되는데 소설에서는 그런 거 하나도 없이 오직 주디 시점만 나오니까, 후원자 권력을 남용하는 것 같고 그래요. 아무래도 현대의 독자들은 관계에 있어서도 '권력'이 작용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죠. 게다가 뮤지컬에서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과 달리, 소설에서는 14살 차이라고 딱 명시를 해버리니까 '자신이 후원하는, 14살이나 어린, 조카의 친구를, 자기 외에 다른 남자는 못 만나게 교묘히 조종하는' 얼굴 없는 남자로 느껴져서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주디가 사랑에 빠져버렸고, 주디가 행복하면 다 된 거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쨘! 내가 후원자였어! 이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어~! 하고 외치는 저비스 씨가 너무너무너무 못마땅합니다. 주디는 더 괜찮은 남자를 만났어야 해요 흑흑..


 <키다리 아저씨>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여러 가지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얘기 너무 좋아해요! 이 작품으로 고아원 출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없어지고, 고아원에 대한 후원도 많이 들었대요. 결정적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이 생기는 데에도 엄청나게 공헌했다는 거예요! 잘 쓴 소설 하나, 열 정치인 안 부러운 상황.. 한편으로는 조금 웃기기도 합니다. 그전에도 그후에도 여성의 지적 능력이나 판단력은 똑같았을 텐데, 소설을 읽고 나서야 '아 여자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구나' 하고 바뀌었다는 거잖아요. 가끔 보면 정말 사람들의 편견이 무섭다 싶어요.


 원낙 일상을 재미있게 조잘대는지라,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게 되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읽고 어릴 때 친구랑 서로 애칭 만들어서 비밀 편지 쓰기 시도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다시 읽어보면 다른 독자분들도 저처럼 주디에게는 더 큰 애정을, 저비스 씨에게는 조금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시지 않을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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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오만과 편견 - 189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제인 오스틴 지음, 김유미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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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무뚝뚝하지만 알고 보면 다정한, 소위 '츤데레'한 매력을 가진 남자 주인공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냥 대놓고 잘해주면 되지 왜 상대방이 상처받게 겉으로 무뚝뚝(을 빙자해 무례)하게 구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대부분 앞에서 잘 못하는 사람은 뒤에서도 잘 못 하더라고요ㅋㅋㅋ 하지만 그런 저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츤데레 로맨스 조합이 바로 <오만과 편견>의 리지-다아시입니다. 거의 모든 현대판 로맨스의 원형을 담고 있는 이 명작, 지금 다시 읽어도 재밌더라고요!


 작년에 연극으로 올라온 <오만과 편견>을 봤더니 소설을 읽는 내내 배우들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재생되서 혼자 킬킬거리면서 읽었답니다. 특히 속물근성에 늘 수선을 피우는 베넷 부인이나 깐족거리면서 방정맞게 잘난 체 하는 콜린스 목사 같은 경우 본인은 그런 줄 모르는데 우스꽝스러운 게 핵심이잖아요. 연극 덕분에 한국어로 쉽게 상상이 되니까 좋았습니다. 다른 장르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작품을 읽으면 이런 점에서 참 좋아요. 리지는 누구, 다아시는 누구, 리디아는 누구.. 이런 식으로 자기 맘에 드는 이미지를 골라 상상할 수 있잖아요. 참고로 다아시는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 남자, 콜린 퍼스 버전으로 상상했답니다. 다들 그러지 않으시려나요?!


 대부분 독자들이 영국 계급제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해서, 신데렐라 로맨스로 오해하기가 굉장히 쉬운 것 같아요. 하지만 찾아봤더니 리지네 집안 자체는 계급이 낮지 않다고 해요. 베넷 씨가 젠트리 계급이니, 우리로 따지면 양반에 속해있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베넷 부인이 상인 계급 출신이라, 외가 쪽이 약한 편이래요. 리지가 "저는 신사의 딸"이라고 했을 때, 캐서린 백작부인이 그건 인정하면서도 외가 쪽을 걸고 넘어진 걸 보면 확실히 친가 쪽 계급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가문만 따지면 빙리보다도 더 단계가 높다는 말이 있어서 놀랐어요. 이쪽은 돈이 많은 신흥 부르주아라 그렇지, 계급 자체는 상인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베넷 부인이 자기네 집은 하인과 가정부와 요리사가 있어서 딸들에게 요리를 시키지 않는다고 불쾌해하는 부분도 있고, 하인들 앞에선 베넷 부인이 말실수하지 못하게 가정부에게 하소연하도록 내버려둔다는 묘사도 있고, 베넷 씨의 1년 수입이 2천 파운드라는 말도 나오는 걸 보면 여유있는 집안이긴 한 것 같아요. 부자 독신남이라는 빙리가 연간 4천 파운드의 수입을 얻으니, 2천 파운드면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죠. 다만 지참금을 챙겨줘야 하는 딸이 5명이나 있는데다, 남자 형제가 없어서 베넷 씨가 사망하는 그 순간 모든 재산이 전부 남의 손에 넘어간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이 로맨스의 멋진 점 중 하나는, 리지도 다아시도 둘 다 성장하고 변화해서 서로에게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첫번째 청혼 때의 다아시는 정말 별로거든요. "당신 집안은 열등하고, 그 때문에 나는 자존심이 상하고, 당신 같은 여자를 좋아하는 일이 내 계급에 어울리는 일도 아니라서, 나는 정말 괴롭지만 그래도 말하겠다" 이런 발언을 청혼이랍시고 하는 남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나중에 다아시 본인이 고백하는 바에 따르면, 세상에나, 이런 망한 플러팅을 하면서 정작 상대가 거절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었잖아요. 정말, 리지를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하지만 첫번째 청혼에서 리지에게 호되게 비난을 받은 후에, 다아시는 리지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부끄러워하고 반성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이건 리지도 마찬가지라서, 다아시의 편지를 받고 나서 '남을 꿰뚫어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고 착각하며 함부로 다아시에게 또 위컴에게 가졌던 편견을 반성합니다. 그래서 두번째 청혼 즈음에는, 둘 다 이전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되어있어요. 누구 한 사람이 맞추는 게 아니라 둘 다 서로에게 맞춰 조금씩 변화하는 거죠. 정말 멋져요!  


 <오만과 편견>에서 엄마인 베넷 부인과 리디아가 악역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실제로 어느 정도 악역이 맞지만), 그 둘이 없었다면 리지가 다아시와 연결될 수 없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이 로맨스에서 맡은 역할이 있는 거죠. 만약 베넷 부인이 제인을 마차가 아니라 말에 태워보내 빙리 씨네 집에 묶어두지 않았다면, 리지가 아픈 언니를 만나기 위해 3시간이나 길을 걸어 그 집에 찾아가지 않았겠죠. 그 날 아침 리지의 "두 눈이 반짝거리"는 걸 다아시가 못 봤을 테고요! 리디아의 경우는 더 명확합니다. 리지아가 그렇게 엄청난, 리지네 집안 자체적으로는 절대로 해결하지 못할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다아시가 끼어들어 중재할 일도 없었을 테고 둘이 다시 엮일 일도 없었겠죠. 리디아의 야반도주는 꼭 필요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걸 이해한다고 해서 베넷 부인이나 리디아가 더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더라고요;;; 특히 리디아가 끝까지 반성하지 않고 뻐기는 걸 보는 일은, 엘리자베스에게 이입한 독자로서는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평생 다아시 재산에 빨대 꽂고 살겠지 싶어요. 으윽..

   

 현대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리디아가 '결혼도 하지 않고 남자랑 야반도주한 것'이 다른 식구들에게 도대체 얼마만큼의 타격일까 감이 잘 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영문학 전공한 친구들에게 물어봤는데, 한번에 확 느낌이 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굳이 현대로 바꿔 말하자면 '막내여동생이 가족 모두를 끌어들이는 연대보증을 서고 정작 본인은 잠수탄 것'에 가깝다고요. 와, 정말 확 와닿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나머지 식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얘네를 찾아내서 어떻게든 결혼을 시켜야 하는 상황인 거예요. 아니면 다른 식구들도 전부 시궁창에 한꺼번에 끌려들어갈 위기니까요. 가족에게 이런 문제가 있으면 제인-리지가 결혼을 영영 못할 정도는 아닌데 결혼할 수 있는 남자의 수준이 엄청나게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결혼이 여자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상황을 고려하면 정말 엄청난 위기인 거죠. 그나마 결혼을 시키면 보증과는 달리 수습이 된다고 하니 다행이지요;;



 인생을 뒤바꿀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로맨스를 다루고 있는데도, 흥미진진하고 뒤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는 게 정말 신기한 작품입니다. 등장인물이 입체적이라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제인은 너무 사람을 좋게만 보려고 해서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그런 태도를 지녔기 때문에 다아시를 오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재산과 신분 차이가 있는 남녀가 단지 외적인 조건 뿐만 아니라 내적인 조건 때문에 어긋날 뻔 했다가 결국 이루어진다는 지점도 단순한 신데렐라 로맨스가 아니라서 좋아요! 로맨스를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다들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명작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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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 189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브램 스토커 지음, 원은주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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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만 딱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캐릭터를 창조해낸다는 것, 모든 작가들의 꿈 아닐까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그 엄청난 영향력으로 이젠 드라큘라라는 단어 자체가 흡혈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지요~ 실제하는 역사와 전설, 인물을 엮어서 하나의 소설로 탄생시켰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 같아요. 지금 보니 <드라큘라> 자체에는 현재 우리가 아는 흡혈귀 설정과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창작에 창작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우리가 아는 흡혈귀가 된 것 같아요.



고딕 소설 vs 대극장 뮤지컬

 얼마 전에 뮤지컬 <드라큘라>가 성황리에 마쳤는데, 뮤지컬과 소설을 비교해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다른 점이 많거든요. 대극장 뮤지컬과 고딕 소설이 가지는 장르적인 차이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소설 속 드라큘라는 절대, 절대, 절대!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완전한 악역입니다. 최종빌런 그 자체거든요. 여주인공과 아련하고 사연 많은 과거가 있지도 않고, 심지어 미나는 (살아남긴 하지만) 여주인공이라고 하기엔 중반까지 비중이 엄청나게 낮아요. 중반까지는 오히려 루시가 더 주인공 같다니까요. 뮤지컬에서는 그저 '주인공의 친구' 정도로, 세 남자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드라큘라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그 루시가요! 소설에서는 거의 미나만큼이나 추앙받지만 안타깝게도 구해지지 못하는 여성이에요. 미나와 같은 상황 다른 결말을 맞는 운명이랄까요.


 드라큘라가 대놓고 악역인 만큼 외모도 굉장히 추하게? 인상적이게? 나옵니다. 보통 악=추한 외모로 등치시켜서 나타내곤 하니까요. 매부리코에 창백한 얼굴, 악마처럼 붉게 빛나는 두 눈은 드라큘라 백작의 트레이드 마크에요. 다양한 등장인물의 일기나 수필, 메모로 내용이 전개되는데, 드라큘라 백작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붉은 눈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의외로 처음부터 인외라는 힌트가 굉장히 많이 나와요. 예를 들어 조나단이 면도를 하다가 실수로 얼굴을 베는 장면 같은 경우, 뮤지컬에서는 그저 실수일 뿐이지만 소설에서는 드라큘라 백작이 거울에 비치지 않은 걸 보고 너무 놀라서 손이 헛나간 거예요. 조나단은 드라큘라 성에서부터 이 존재가 사악하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성에 갇혀버린 몸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악을 대비하며 일기를 씁니다. 뮤지컬과 달리 미나는 드라큘라 성에 방문하지 않고요.


 뮤지컬과 비교해서 보면 정말 신기한 게, 어떻게 이런 원작에서 그런 로맨스를 뽑아냈지? 싶어요. 렌필드만 해도 드라큘라랑 전혀 상관이 없고 그냥 혼자만의 믿음으로 다른 생명을 잡아먹으면 영생을 할 수 있다! 하고 믿는 정신병자일 뿐이거든요. 나중에야 병원에 드라큘라를 안으로 초대함으로써 드라큘라랑 엮이게 되는데, 그 전까지는 그냥 수어드 박사의 환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그런 인물을 조나단의 선임자로서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 방문한 뒤에 정신병원에 갇힌 인물로 살짝 틀어서 훨씬 더 개연성 있게 만들다니, 역시 2차 창작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1897년의 과학, 2020년의 과학

 흡혈귀 전설을 다루고 있어서인지, 작가 본인도 '피'를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는 듯한 묘사가 눈에 띕니다. 수혈이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은 현대에서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지점들이 몇 가지 있어요. 예를 들어 용감한 남자의 피를 받았으니 저 여자는 이제 생명력을 가지게 됐어! 하는 식의 묘사가 꽤 나오는데, 남자의 피든 여자의 피든 상관없이 피는 그냥 피일 뿐이잖아요. 당시로서는 남자의 피가 여자의 피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요. 피를 한 번 수혈해주고 나면 몇날 몇일을 꼬박 수척하게 지낸다는 묘사도 그래요. 저도 헌혈 많이 해봤지만 하루 정도 물 많이 먹고 푹 쉬면 괜찮아지잖아요? 체력에 무리가 갈 정도로 엄청난 양을 뽑아냈다면 좀 힘들긴 하겠지만요.


 제일 뜨악했던 건 혈액형 검사를 하지 않고 그냥 일단 남자의 피니까 당연히 OK, 하는 식으로 막무가내 헌혈을 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마 작품을 쓸 때는 아직 혈액형이라는 개념이 아직 없었던 시기인가봐요. 루시의 혈액형이 뭔지 모르는 상태로, 아서-수어드-모리스-반 헬싱의 혈액형이 뭔지 모르는 상태로 그냥 수혈을 진행합니다. 혈액형이 맞지 않아서 충돌 일으켰으면 드라큘라가 아니라 수혈 때문에 루시가 죽었을 텐데, 다행히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걸로 봐서 남자들이 전부 O형이었나봐요;; 현대의 과학 지식을 가지고 과거의 작품 속 흠결을 놀리는 건 좀 공평하지 못하긴 하지만, 읽을 때 물음표가 뜨는 건 사실이니까요ㅋㅋㅋ 


 굉장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 도드라집니다. 미나가 똑똑해서 그에 대한 칭찬을 하고 싶으면 그냥 똑똑한 여성이다 하고 1절만 하면 되는데 남성의 뇌를 가졌다는 둥, 훌륭한 여자는 자신의 삶을 전부 말한다는 둥 2절, 3절, 4절.. 끝도 없이 해요. 공포 장르가 대개 그렇듯이, 결국 살아남는 건 가부장제에 순응하고 철저하게 편입된 여성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미나 역시 일에 엮인 당사자인데 살살 추켜세우는 척 모든 사건에서 쏙 빼버리는 걸 보면 현대 여성 독자로서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결국 미나를 지키지도 못하고 미나한테 도움받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죠;;


  그리고 마담 미나, 모든 일이 잘 마무리 될 때까지는 오늘 밤을 마지막으로 이 일에서 바지세요. 마담은 우리에게 너무 ㅁ소중한 분이라 그런 위험을 감당하게 둘 수 없어요. 오늘 밤 회의가 끝나면, 마담은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마세요. 때가 오면 마담께 다 말씀드릴 겁니다. 우리는 남자들이고 견딜 수가 있죠. 하지만 마담은 우리의 별이자 우리의 희망이니, 마담께서 위험하지 않아야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 겁니다 - p.477


 게다가 드라큘라가 마지막으로 으름장을 놓으면서 "너희가 사랑하는 너희 여자들은 이미 내 것이다" 하고 협박하는 장면은 여자를 소유물로 보는 시각이 대놓고 보여서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여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남자가 보통 '(적들이) 우리 여자를 강간할거야' 하는 공포를 가지곤 하잖아요. 공포를 얘기할 거면 자기가 강간당할 공포를 상정하든지;; 이게 뭐람;; 어쨌든 백 년도 더 넘은 옛날 빅토리아 시대 작품이라는 건 감안해야겠죠.


 저는 흡혈귀가 굉장히 카톨릭적인 괴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모든 나라 모든 문화권에 흡혈귀가 나온다는 것은 그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는 식의 논리를 펼쳐서 좀 신기했습니다. 중국에도 흡혈귀가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하지만 흡혈귀가 카톨릭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도대체 왜 십자가나 성체에 그렇게까지 반응을 하겠어요? 중국 부적 쓴다고 드라큘라가 물러가지도 않을 텐데 말이죠. 결국 '카톨릭'과 '과학'으로 대변되는 1897년의 신봉 가치가 알 수 없는 미지의 괴물을 물리친다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종교적이에요.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목적이 조금은 엿보이고요.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는 일단 표지가 예뻐서 좋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 입장에서 뮤지컬 원작 소설을 꾸준히 내줘서 정말 좋아요♡ 원전과, 그에 파생되어 나온 다른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정말 큰 장점입니다. 덕분에 비교해가면서 읽는 재미가 늘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많은 작품 내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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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거울나라의 앨리스 (양장) - 187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손인혜 옮김 / 더스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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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대중문화에 정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잖아요!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도 영화나 드라마, 만화, 2차 창작, 심지어는 CF에서까지도 온갖 분야에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이미지는 아마 보셨을 거예요. 시계를 든 토끼나 티타임을 가지는 모자장수, 트럼프 카드의 하트 여왕 같은 강렬하고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온갖 대중문화에서 '너네 이거 다 알지?' 하는 식으로 오마주되곤 하니까요.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바로 그 후속작입니다. 앨리스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작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연관성은 거의 없어요.


 <거울 나라의 앨리스> 같은 경우, 앨리스가 말 그대로 거울로 빨려들어가면서 시작되는 모험입니다.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뒤 반년쯤 지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거울 속 세계는 체스와 비슷한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앨리스는 처음에는 병졸로 시작해서 제일 마지막 칸에 다다르게 되면 여왕으로 변신합니다. 세계관 전체가 체스에 기반을 둔 만큼, 체스를 알고 있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가장 계급이 낮은 폰이 끝에 다다르면 퀸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체스 룰이니까요. 앨리스는 체스 판처럼 한 칸 한 칸 전진하면서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온갖 다양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 붉은 기사와 하얀 기사, 트위들덤과 트위들디, 험프티 덤프티, 사자와 유니콘 등인데 전자는 체스에서 후자는 유명한 동요에서 따온 캐릭터에요. 참고로 초판본 표지의 앞면이 붉은 여왕, 뒷면이 하얀 여왕에요! 


 언어유희가 워낙 많아서, 원어민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매력이 꽤 많은 작품입니다. 작가인 루이스 캐럴이 워낙에 언어의 리듬이나 라임, 말장난을 중요시하는데 번역이 되다보면 아무래도 직관적으로 이해가 딱 되지는 않아요. '감사합니다'를 '감사합디다'로 바꿔 말한다면 아주 작은 차이지만 뉘앙스가 확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이걸 번역으로 전달하려고 하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루이스 캐럴 작품에는 주석이 굉장히 많은 편이에요. 만약 원어를 모른다면 이게 왜 농담인지, 이게 왜 재치있는지, 이게 어떤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지거든요. 책 속에 등장하는 '재버워키'라는 시는 영미권에서는 거의 전설로 인정받는 최고의 넌센스 시라고 하는데, 번역본으로 봤을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애를 먹었어요. 이런 식이거든요↓




 물론 나중에 가면 앨리스가 거울에 비쳐서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긴 하는데, 그것도 역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ㅋㅋㅋ 제가 영미권 독자였다면 이 시에 담긴 말장난을 훨씬 더 빨리 캐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ㅠ 주인공인 앨리스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모른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는다는 표현이 있는 걸 보면 시 자체가 의미없는 하나의 농담 같기도 해요!


 상징적인 내용이 많아서 그냥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읽어도 재밌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 같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붉은 여왕은 뭐든지 서둘러야 한다면서 빨리빨리 하는 모습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그런 모습이거든요. 이 작품 덕에 [붉은 여왕 효과]라는 용어도 생겼다고 해요. 죽을 둥 살 둥 숨이 턱까지 차게 달려야 겨우 현상유지가 가능하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진다는 건데.. 정말 섬뜩하고 슬픈 현실을 나타내는 말이죠ㅠ <앨리스> 작품 안에서는 뭘 위해 그렇게 달리는지도 모른 채 그냥 죽어라 달리는 모습을 풍자하기 위해 등장한 것 같지만요.


 "말도 안 돼. 계속 이 나무 아래에 있었던 거야! 모든 게 아까와 똑같아요!"

 "당연하지. 그럼 어떨 거라고 생각했느냐?"
 여왕이 말했다.

 "제가 사는 곳에서는 오랫동안 빨리 달리고 나면 보통 다른 곳에 도착해요."

 앨리스는 여전히 약간 헐떡이면서 말했다.

 "정말 느린 나라구나! 여기서는 같은 장소에 있으려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뛰어야만 하지. 만약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고!" - p.44


 환상문학이 대개 그렇듯 환상 속에 깃든 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때로는 과장되게 때로는 엉뚱하게 나타나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이런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이런 글재주를 가지고 있다니, 그러면서도 현실은 수학자이자 교수였다니, 정말 세상은 넓고 능력자는 많은 것 같아요. 상상력이 메말라버린 독자에겐 그저 놀랍고 경이로울 뿐입니다.. 우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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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벤허 (1900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 그리스도 이야기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 월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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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허> 저 이 작품을 뮤지컬로 처음 접했는데, 알고 보니까 5번이나 영화화되었더라고요. 1959년의 영화 전차씬이 워낙 유명해서 <벤허> 하면 대부분 그 영화를 떠올리신다고 해요. 나중에 한꺼번에 영화를 몰아봤는데, 확실히 영화에서는 소설에서 그저 상상해볼 수밖에 없는 장면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훨씬 더 박진감 넘치는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소설과 중점을 둔 부분도 달라서 훨씬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복수'의 카타르시스 덕분에 슬며시 가려져 있던 카톨릭적 메시지가 훨씬 도드라지거든요. 

 

 저는 불교-카톨릭-무교 라인을 탄 케이스라서, 신앙심은 쥐똥만큼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당대의 시대상 묘사나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이리저리 얽혀있어서 종교와 상관없이 꽤 재밌게 읽었어요. 다만 워낙에 카톨릭적 색채가 진하기 때문에 성당/교회에 반감을 가지신 분들이 보시면 불쾌하실 수도 있습니다. 대놓고 '야 하느님은 있고 예수는 그리스도고 믿는 우리는 구원받을 거고 그러니까 안 믿는 너네는 멍청해!' 하고 외치는 소설이거든요ㅋㅋㅋ 뭐, 처음부터 작가가 자기 종교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고자  만들었다고 하니까요.


 제가 소설을 읽다가 가장 놀란 부분은 메살라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영화나 뮤지컬에서 보면, 메살라는 그래도 벤허와 우정을 나누고 함께하는 시기가 꽤 있잖아요. 벤허를 배신하는 것도 (아무리 터무니없어 보인다고 해도) 차별을 받았다는 둥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고요. 그런데 소설에서의 메살라는 진짜 완전 양심도 없고 우정도 없고 그냥 나쁜 놈이에요;;; 로마인이랍시고 거들먹거리기나 하면서 유대인 완전 깔아뭉개는 언변 심해서 유다가 의절할 정도예요. 그리고.. 벤허 가문이 몰락하는 게 로마 총독 머리 위로 기왓장 떨어뜨려서 그런 거잖아요? 근데 처음에 사람들이 누가 떨어뜨렸는지 모른단 말이에요? 그걸 메셀라가 벤허가 그랬다면서 손가락으로 콕 집어 가리킵니다;;; 이후에 벤허 가문 재산 뺏어서 잘 먹고 잘 살면서 양심의 가책 따위 하나도 없어요. 벤허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이 아예 글러먹었다는 게 곳곳에 드러납니다. 특히 제가 정 떨어진 건 자기 앞에 사람들이 있는 거 뻔히 알면서 그 사람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이 그냥 말로 밟아서 지나가려고 한 장면이었어요. 벤허가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여인과 노인은 죽었을텐데, 벤허 덕분에 상황이 수습되자 뻔뻔하게도 사람을 못 봤다면서 눙치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어찌나 건들거리는지! 으으 너무 싫어요!


 "멈춰! 앞을 보라고! 뒤로, 뒤로!"

 로마 귀족은 재미있다는 듯 깔깔댔다. 벤허는 낙타 일행을 구할 길은 한 가지뿐임을 알았다. 그가 전차 앞으로 왼쪽 멍에마와 견인마를 붙잡았다. 

 "개 같은 로마 놈! 사람 목숨이 그렇게 우스워?" 

 (...)

 로마인 메셀라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였다. 몸에서 고삐줄을 풀어 한쪽으로 던지고, 전차에서 내리더니 낙타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벤허를 쳐다본 후, 노인과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용서하십시오, 용서를 구합니다. 두 분 모두에게. 난 메살라라고 합니다. 대지의 어머니에게 맹세컨대 두 분이나 낙타를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솜씨를 과신했나 봅니다. 여기 이 선량한 구경꾼들을 좀 놀려줄까 했는데 도리어 놀림을 당했네요. 어쨌든 저들에게도 다행이지요!" - p.310

 그런데 주인공인 벤허를 좋아하기에도.. 개인적으로 좀 불편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이게 1880년 작이라 그런지 곳곳에 좀 고루한 표현들이나 여혐적인 내용이 있거든요. 본인이 하면 OK인데 상대가 하면 욕하는 그런 부분도 있구요. 예를 들면 벤허 본인은 아름답고 화려한 이집트 아가씨 이라스에게 푹 빠져서 조용하고 다정한 유대인 소녀 에스더를 완전 등한시하는데, 읽다 보면 양다리 느낌이 팍팍 온단 말이에요? 물론 두 여자 다에게 절절한 사랑 고백을 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썸 비스무리한 걸 양쪽으로 자기 혼자 막 타고 난리부르스인데, 후반부에 이라스가 사실은 메셀라를 사랑하고 자기는 그냥 야망을 위한 떡밥 정도 취급하는 걸 알자마자 '아..!! 사실 나는 이라스를 사랑한 게 아니야 나는 에스더를 사랑해..!!' 이렇게 태세전환하는데, 완전 꼴사나워요. 방금 전까지 에스더에 대해서 완전히 싹 잊고 있었으면서.. 이라스가 그렇게 냉담하게 안 쳐냈으면 에스더가 상처받든 말든 신경도 안 썼을 거면서.. 그리고 벤허 본인이 그러는 건 괜찮고 이라스가 야망에 불타오르고, 두 상대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건 천하의 몹쓸 년으로 만들어버리는 묘사도 엄청 거슬렸어요. 작가 남자 아니랄까봐ㅋㅋㅋ 시대상 여자는 남자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설정이라 모든 여자의 소망이 (가족이든 연인이든) 남자를 향해 있는데, 아마 지금 시대에 썼으면 이라스는 훨씬 더 자기 목소리와 입장을 가진 여성으로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은 유대인만이 선하고 옳은 세계관에 맞춰지느라 좀 희생된 감이 있습니다.


 영화로 유명한 전차씬이나 후반부의 예수와의 만남보다도 오히려 초중반부에서 보여지는 유다 벤허의 다사다난한 인생 고난과 복수에의 여정이 더 재밌습니다. 아마 제가 그다지 종교적인 인간이 아니어서 그렇겠지요. 그리고 사실 저는 벤허만큼 고생 끝에 모든 부와, 명예와, 사랑과, 가족과, 건강을 부여받은 사람이 신에게 자신을 헌사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 아닌가 하거든요. 만약 예수가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나병을 고쳐주지 않았다면? 벤허가 보는 앞에서 비참하게 죽었다면? 그랬어도 믿음을 잃지 않았을까요? 종교인이라면 신이 그러지 않도록 예비하신 거라고 하겠지만, 저는 그들만큼 신앙이 깊지 않아서 그런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ㅎㅎ


 전체적으로 유대인 중심주의가 좀 있긴 한데, 그래도 여러 가지 문화와 민족을 다채롭게 등장시켜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더스토리 초판본 디자인이 끝내주게 예뻐요! 실제로 보면 벽돌책 색감도 고급스러워 소장용으로 딱입니다. 카톨릭에서 가끔 교육 서적으로 쓰일 정도로 종교적인 색채가 짙으니, 그 부분만 주의하시면 괜찮은 시대물로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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