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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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너무나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길래, 궁금해서 결국 보았다. 베스트셀러를 유행이 좀 가신 뒤에 보는 것을 즐기는 나로서는, 대한민국이 왜 이렇게 이 소설에 열광했는지 잘 몰았었다. 그리고 책을 본 뒤에 생각한다- 혹시 그건 거품이 아니었을까? 남들 다 보니까 한 번씩 보게 되는, 뭐 그런 거품.

 러브스토리와 미스터리와 반전이 있는 재미있는 프랑스 소설. 이 소설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이러했는데, 어째서 읽고 나서 "역시 책은 내가 읽어보고 구입해야 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지. 어디서 많이 본 영화 스토리 몇 가지를 짜깁기한 느낌이 드는 사람은 정녕 나뿐이란 말인가? 

 특히 결말 부분은 허무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뭐냐고 그게!! 결말이 얼마만큼 괜찮냐에 따라 그 책의 평가를 내리는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에 좋은 평을 줄 수가 없다. 그래, 환상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도 좋고 다 좋은데.. 어째서 프랑스 소설임에도 몇몇 유명한 미국 연애물이 떠오르는 거냔 말이다. 내 참..

 책에도 확실히 거품이 끼여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남들 다 읽는다고 왠지 나도 읽어야 될 것 같은 기분에 우르르 읽은, 나같은 이들도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고두고 다시 읽어볼 책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는다는 평소 원칙을 깬 내가 후회스럽다. 많이 팔린다고 혹은 유명한 작가라고 함부로 책을 구입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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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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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리뷰를 쓰신 분들이 다들 너무 좋은 평을 내리셨길래, 각오하고 나쁜 평을 내려볼까 한다. 나와 같이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분들은 아직 리뷰를 안 쓰셨을 거라 믿으면서.

 <머저리클럽>은 성장소설이다. 6명의 악동들- 세상에 반항하고 뭔가 청춘을 불태우고 싶어하는 이들이 모여 각자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기도 하고, 집안사정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 자신을 찾겠다며 훌쩍 떠나기도 하면서 '청춘'이라 불리는 눈부시고도 지난한 한 때를 지난다. 

 개인적으로 인물들의 방황과 발전이 담긴 성장소설을 흐뭇해하며 즐겨읽는 편이다. 그들을 보면 왠지 나 자신도 성장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나'와 소설 속 '그들'이 연결된 듯한, 즉 공감할 만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 <머저리클럽>은 바로 이 부분에서 나와 소통에 실패했다.

 내가 70년대를 살기 않았기 때문일까? <머저리클럽>에서 대대적으로 다루고 있는 연애와 사랑에 관한 청춘남녀들의 이야기가 그닥 와닿지 않고, 오히려 어색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그 시절에는 까까중 머리를 한 남학생들과 새침하게 앉아있는 여학생들이 빵집에서 만나는 것까지 일일이 학교에서 검사를 하던 시절이었다고 하니 내가 보기에 이상한 건 당연한 것도 같다. 누가 뭐래도 남녀가 같은 반에서 자연스럽게 부대끼며 자란 세대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적 어색함보다는 인물들의 관계에서 오는 어색함이 훨씬 심하다. 영민과 5인방이 친구가 된 이야기까지는 그럴 듯 했는데, 그 후부터 보이는 대화나 태도를 보면 이들이 정말 친한 친구인지 살짝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분명 대화체로 적혀 있는데 구어체보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건 도대체 왜인지.

 주인공 동순과 소림, 혹은 동순과 승혜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영화 <클래식>의 두근거림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어린 개똥철학자 동순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러브레터는 읽기도 민망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 시대의 문학소년들이란 다 이런 걸까? 아니면 유독 동순만 그런 걸까? 로맨틱하기보다는 자기 감정에 자기가 취해 있는 듯 보였다.

 성장소설에 대한 내 관심과 애정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공감'이라는 색채가 덧입혀지지 않는다면 결국 남의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머저리클럽>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빛나고도 불안정한 청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멍하니 딴 생각만 하는 건 너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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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세트 - 전5권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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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포터>를 처음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 갓 되었을 때였는데, 사촌언니 집에 놀러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그 책을 읽고 '아, 재밌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고, 그때까지만해도 가벼운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이 책이 그렇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하지만 차츰 <해리포터> 시리즈를 알게 될수록, 점점 주인공 3인방에 애정을 주게 되면서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사보는 나름 착실한 독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최초로 실망을 안겨 준 것이 바로 제 5편 <불사조 기사단>이었다. 

 그전까지는 볼드모어와 해리의 대결구도 역시 흥미진진했고, 마법학교라는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도 즐거웠다. 중간중간 너무 허무하다 싶었던 해결들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무난하게 잘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사조 기사단부터는 어딘가 모르게 초기의 매력을 많이 잃어버린 모습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이 혹시 있을지 몰라 자세히는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도대체 뭐하자는 건가? 너무 간단하게, 이때까지 정말 X고생 하면서 버텨낸 것치고는 너무 허무하게 끝나지 않은가? 게다가 갈수록 사회비판적인 면이나 해리의 성장담 같은 여러 가지 것들을 한꺼번에 섞으려고 하니 이도저도 안되는 모양새다.

 그 후로 나온 책들도 한 번씩 훑어보기만 했는데, 신기하게도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읽었는데도 말이다. 3편까지 꽤나 좋아하면서 마법 교과서도 구입했던 나로서는 놀라운 변화다. 확실히 <불사조 기사단>을 기점으로 해리 포터 인기가 한풀 꺾인 것은 많은 독자들이 나같이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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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마법의 주문 - 소중한 나를 위한 약속
아네스 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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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네스 안,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어디서 많이 본 글을 짜깁기한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어디서 많이 본 명언과 어디서 많이 본 에피소드, 어디서 많이 본 충고. 그런 것들이 모여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정말 읽을 건덕지도 없었다. 부록 때문에 책을 사본 적은 정말 처음이다. 위즈덤 카드는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많이 이야기하는 꿈을 위한 소도구가 아니던가.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딸려오는 위즈덤카드의 일러스트가 너무 마음에 드는데 어찌 하리오. 

 어쩔 수 없이 구입하긴 했지만, 정말 정이 안 가는 책이다. 만약 부록만 따로 살 수 있었다면 난 무조건 부록만 구입했을 것이다. 위즈덤카드와 책 속 일러스트는 정말 너무 예쁘고 맘에 들지만, 이렇게 알맹이 없는 책을 자꾸 내놓는 저자에 대해서는 약간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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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비단보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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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 이 별점은 다른 사람들이 너무 후한 점수를 줬기에 균형을 맞추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높게 평가받을 책이 아닌데, 너무 높은 것 같아 점수를 많이 짜게 줬다. 실제로는 별 2개 정도 줄 수 있는 책이다. 

 작가는 여성의 끼가 인정받지 못하는 조선 시대에 예술가의 혼을 가지고 태어난 세 여인을 통해 직업적 예술가 이전의 운명적 존재로서의 예술가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것을 위해서 신사임당의 외면적 조건들을 모티브로 가져왔다고 말이다. 하지만 모티브라는 것은, 어느 정도 기반을 두되 새롭게 창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작가가 갖다 쓴 몇몇 에피소드는 어릴 적 신사임당의 위인전에서 읽었던 내용 그대로였다. 주인공이 신사임당이 아니라 항아였을 뿐. 두 친구 역시 허난설헌과 황진이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항아의 아들이 어머니의 쾌차를 밤새도록 비는 에피소드는 율곡 선생 그대로이지 않은가.. 허구적 인물임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성격적인 측면이나 재능, 하다못해 에피소드라도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했지 않을까?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세 여인을 한 데 모아두고는 "이건 모티브만 따온 거에요. 캐릭터는 허구에요."라고 외치는 건 어쩐지 꼴사납다. 이럴거면 차라리 신사임당을 모델로 한 소설을 내놓던가! 허구적 캐릭터로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만 곳곳에서 거슬리는 에피소드들 때문에 결국 짜증만 나도 말았다.

 작가는 "화려한 삶이나 비극적인 삶의 전형이 아닌, 반(反) 클리셰적인 예술가를 그리고 싶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들도 충분히 클리셰적인 비극적 예술가이다. 끼를 가지고 있었기에 비극적이어야 했던 전형적인 여성예술가들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은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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