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81
제인 오스틴 지음, 박용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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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과 편견>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영문학 중 하나입니다. 어릴 때보다 오히려 성인이 된 이후에 더 좋아하게 된 작품 같아요. 어릴 때는 그냥 신데렐라 이야기 아니야? 같은 느낌으로 좀 뻔하게 봤었거든요. 주인공 다아시도 그다지 멋지게 생각되지 않았구요. 그런데 크고 나서 영국 사회와 문화를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그리고 어떤 피해자도 없는 해피엔딩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아시의 어떤 면이 신사적인지 깨닫게 되면서 점점 더 좋아졌답니다. 지금은 온갖 출판사 버전별로 하나씩 하나씩 수집하는 중이에요!ㅎㅎ


 문예출판사 버전은 표지가 특히 마음에 듭니다. 제가 상상한 리지의 모습과 엄청나게 비슷하거든요! 남들 눈에 괜찮은 외모로 칭송될 만 하면서도, 제인처럼 한눈에 완벽하게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어야 하고, 영민하고 반짝거리는 눈을 가지고 있는, 지적이고 우아하고 교양 있는 여성! <오만과 편견>을 읽고 리지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 독자가 있을까요? 주인공 버프를 빼고 봐도, 정말이지 괜찮은 사람이잖아요. 특히 자기 자신의 결점을 깨닫고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는 부분이 그렇죠. 도대체 어떻게 베넷 가에서 제인과 리지 같은 딸이 나왔는지, 정말 미스터리입니다.


 저는 그래도 베넷 여사와 리디아를 좀 좋게 봐주는 편인데, 아무리 작품 바깥에서 애써서 '맞아 베넷 여사가 없었으면 혹은 리디아가 사고치지 않았으면 리지는 절대 다아시와 연결될 수 없었을 거야' 하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가도 작품을 읽다 보면 이 둘이 점점 싫어집니다ㅋㅋㅋㅋ 휴.. 어쩔 수가 없어요. 스스로가 얼마나 피해를 끼치는지 모르고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요? 심지어 리디아는 마지막까지도 자기 인생이 방금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망가질 뻔 했는지, 그로 인해 집안 전체가 얼마나 수렁에 빠질 뻔 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잖아요. 앞으로도 내내 그렇게 해맑고 징그럽게 살 것을 생각하면 아득해집니다. 리지한테 빈대만 붙지 마로라...


 문예출판사 버전은 좀 더 고풍스러운 느낌이 강한 번역입니다. 번역체 어투가 강해요. '~라는 것이었다.' 같은 식의 문장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 그 나름의 말맛이 있어요. 그렇지만 다아시를 '다씨'라고 번역한 건 끝까지 적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워낙에 많은 매체에서 '다아시'라고 부르다보니 그게 너무 눈에 익어버렸거든요. 제 안에서 이미 대명사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 사람으로서 ~씨 같은 표현은 이름이 아니라 무슨 경칭 같기 때문에.. 자꾸 다아시로 자동 번역되어 읽혔습니다. 이 부분만 빼면 괜찮았어요!


 영화나 드라마로도 몇 번이나 만들어진 적이 있고, 연극으로도 만들어져서 공연을 했기 때문에 아마 그런 2차 창작을 통해 <오만과 편견>을 접하신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것들도 재미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원작은 원작입니다. 원작을 아직 안 읽으셨다면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매체로 각색하다 보면 아무래도 모든 문장, 모든 장면을 다 넣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거나 혹은 옮기기 어려워서 빠지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소한 부분들이야말로 재밌는 지점 중 하나거든요. 예를 들어 베넷 부인이 계속해서 "우리 집 아이들은 부엌일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부분이 그래요. 영화나 연극을 보면 베넷 부인이 너무 결혼에 목을 메다보니 엄청 가난할 것 같은 느낌인데, 정작 보면 가정부도 있고 하인도 있고 말도 있고 농장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심지어 베넷 부인이 가져온 지참금(재산)도 꽤 돼요. 다만 재산의 핵심인 부동산은 아들만 상속 가능한데 이 집은 아들이 없고,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은 5분할하면 너무 작아져서 문제인 거죠. 이런 식으로 자세히 그려지지는 않지만 스쳐지나가는 힌트(?) 같은 것들로 배경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추론하는 거, 엄청 재밌지 않나요? 각색물만 보다 보면 이런 매력을 놓치게 돼요.


 많은 분들이 이 멋진 명작을 꾸준히 만나주시면 좋겠네요. <오만과 편견>, 재미있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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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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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아주 거대한 개념입니다. 현재를 생각해봐도 그렇죠. 우리가 지금 아는 대부분의 정치인, 대부분의 유명인은 몇십 년이 지나기만 해도 금방 잊혀질 겁니다. 우리가 지금 1950년대의 국회의원이 누구누구였는지 제대로 모르는 것과 똑같죠. 너무나 많은 인물과 사건과 시간을 짧게 욱여넣어야 하다 보니, 정말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지 않으면 역사에 이름 한 줄 남지 않게 되는 거예요. 당연히 어느 시대에나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개개인들이 수도 없이 깔려있어요.


 저는 항상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장삼이사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왜냐면 저 역시 그런 평범한 일반 대중 중 하나인데, 세상은 온통 유명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 이야기만 하잖아요. 과연 생리대가 발명되기 전 여자들은 어떻게 생리를 처리했을까요? 혹시 이런 거 궁금해하신 적이 있나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과서 그냥 실제 그 때의 삶이 어땠는지 한 번 살펴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 있나요? 만약 있다면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정말 잘 맞으실 거예요ㅋㅋㅋ (아, 참고로 이 책에 저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역사 교과서나 역사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는, 유명하지 않은 일반인의 말 그대로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어요. 일기니까요. 오늘 하루는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구를 만났고, 그래서 나는 기분이 어땠고, 일의 전말은 이러이러한데 이게 저러저러하게 해결이 되었다, 같은 소소한 일상이요. 물론 사화(士禍)와 같이 엄청난 일에 휘말리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보다 보면 그 역시 인생의 굴곡 중 하나처럼 느껴집니다. 저자가 머리말에 쓴 바에 의하면,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의 개인 일기만 해도 1431건에 이른다고 해요. 그 많은 일기를 모조리 다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 특정한 몇 명의 인물을 따라가며 조선 사회의 천태만상을 들여다봅니다. 사람 사는 게 비슷비슷하기 마련이다 보니, 8명 정도의 인물만 따라가도 책 한 권이 뚝딱이에요!


 당시의 과거시험 문화, 관료제 사회의 신고식, 가족을 애틋해하는 마음, 부동산에 얽힌 싸움 등등 현대에도 일어나는 일이 고스란히 과거에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제도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지 그 안에서 아옹다옹 하는 모습이 정말 똑같다니까요! 그만큼 인간의 습성 자체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겠죠? 개인적으로는 노비가 양반을 속이고, 골리고, 반항하고, 욕하는 모습이 담긴 장이 정말 재밌었어요. 막연하게 '노비는 항상 양반에게 당하기만 하는 불쌍한 신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실제로도 상당히 많은 경우 그랬겠죠. 하지만 의외로 양반에게도 노비가 꼭 필요한 존재라서, 막상 자기에게 덤비는(?) 노비를 어떻게 하지 못해서 끙끙 앓는 양반의 모습이 신선했어요.


 그리고 남의 일기, 그것도 짧게 발췌된 일기를 보면서 울게 될 줄 몰랐는데.. 먼저 세상을 떠난 어린 딸이 꿈에 나왔다는 글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찡하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꿈 내용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습니다. 앞서서 계속 이 아이가 얼마나 연약하고, 얼마나 많이 아팠고, 얼마나 살리려고 애를 썼고, 그러나 결국 죽었고.. 하는 부분을 봐 와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토록 지극히 애정했던 자식이 죽은 뒤 2년 만에 꿈에 나타나, 꿈에서 깬 뒤에 아내와 함께 부둥켜 우는 모습이 정말 짠했습니다. 가족 간의 애정과 그리움은 지극히 보편적인 감정이어서 더 공감이 갔나 봐요.


 한 가지 아쉬운 건,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게 '양반 남성'으로 한정이 되는 사회이다 보니 남겨진 목소리가 죄다 지배계급 성인 남성이라는 겁니다. 평민 아낙이나 노비 소년의 이야기 같은 건 일기에 아주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등장 가능하고, 사실 그마저도 거의 없습니다. 작가도 그 부분을 아쉬워하고 있어요. 중간에 글을 읽고 쓰지 못해서 눈 뜨고 코 베이는 농민도 나오는데,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왜 과거에 '글'이라는 게 권력의 수단이 되었는지도 새삼 느껴지고요.


 맺음말을 읽어 보니 전작에 비슷한 시리즈(?)처럼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이 있나 보더라고요. 일기 버전을 읽고 났더니 편지 버전도 읽고 싶어졌습니다. 흥미진진한 역사 썰을 팩트에 기반해서, 사료를 첨부해가며 들려주는데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ㅋㅋㅋ 할아버지에게 자꾸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어린 아이처럼, 저도 작가님에게 후속작을 달라고 조르고 싶어집니다. 다음편 주세요! 다음! 다음!ㅋㅋㅋ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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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 - 세계적인 법정신의학자가 밝혀낸 악의 근원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신혜원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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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는 범죄자를 분석하면서 '악(惡)'의 근원을 탐구해보려는 시도가 담긴 책입니다. 그런데 시작부터가 당혹스러웠어요. 사실 누구도 '악(惡)'이라는 걸 명확하게 정의하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다들 막연하게 혹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뜻이 있기는 한데, 학술적으로 딱 들어맞는 정의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나봐요. 이런 상황에서 정신과 의사인 테오 R.파이크가 했다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악은 그 지붕 아래 나쁜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기이한 구조물이다." 


 다양한 사례를 끌어오는데, 개인적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범죄자보다 그렇지 않은 범죄자 쪽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었지만요. 물론 피해자 입장에서는 격분에 의해 순간적으로 살해가 되었든 아주 치밀한 계획에 의해 학살을 당했든 똑같이 '죽음'과 '고통' 그리고 '공포'라는 피해를 입었죠. 하지만 이게 일회성인지 아니면 또다시 되풀이될 문제인지는 범죄를 판단하는 데 중요하지 않겠어요? 다른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고는 태연히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시 그런 악행을 할 확률이 높겠죠.


 저는 '세계적인 법정신의학자가 밝혀낸 악의 근원!' 같은 문구를 보면서 이 책이 정답을 찾아줄 거라고 기대했어요.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정작 이 책의 내용은 아직도 우리는 악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다는 거예요. 다만 일반적인 바람이나 편견과는 달리, 우리 모두의 안에도 똑같이 악의 씨앗이 심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것이 발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있는 힘껏 '악이 활개칠 수 있는 경향'에 반대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꾸 고통스러운 상황에 노출되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방향으로 변한다고 해요. 어린 시절 학대를 받으면 공감능력이 떨어질 확률이 높고 그러다보면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타인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어른으로 자랄 확률이 높다는 거죠. 그러니 우리는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을 최대한 줄여서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거예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범죄자나 전쟁 중에 벌어지는 홀로코스트나 학살 같은 건 딱지를 붙이기 쉬운 사례들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어려운 건,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고 사회생활도 곧잘 하며 중상층 이상의 환경에서 교육을 잘 받고 자란, 가정환경도 괜찮은 극악 범죄자들이었습니다. 이런 법정신의학자도 그럴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한 범죄자들. 이 돌연변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저는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갈피가 잡히지 않아요. 증오와 파괴의 충동이 인간의 본성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괜찮은 환경에서 갑자기 발현되는 극단적인 악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우리가 황금률로 서로를 대하고, 사회구성원 전반이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사회를 만든다고 해서, 이 돌연변이들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저는 확신이 서지 않아요.. 물론 보통 사람들이 서로에게 행하는 악은 당연히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정답을 찾기 위해 책을 집어든다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악의 사례와 그것을 분석하는 정신의학의 관점이 보고 싶다면 꽤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거예요!


+) 중간에 아예 내용 자체가 겹쳐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202~204 페이지의 내용이 209~211 페이지에 그대로 복붙해서 나오고, 208페이지의 내용이 212~213페이지에 반복됩니다. 심지어 '갖기 못한다' 하는 오타도 똑같아요;;  확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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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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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은 기혼 여성, 그 중에서도 아이를 갖게 된 여성이 어떻게 개인적으로 또 사회구조적으로 성차별에 내몰리면서 혼자 '독박육아'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꽤 깨어있고 열려있으며 공정한 역할분담을 한다고 '믿는' 부부들조차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다양한 논문과 책, 사례들로 조목조목 보여주고 있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결혼을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차오르더라고요. 수많은 여성들이 당혹스러워하고, 화를 내고, 잔소리하고, 절망하다가, 결국 체념하고 우울에 빠지는 그 과정이 너무 생생해서 무서웠어요. 저도 자라면서 숱하게 봐왔던 풍경이었거든요.


 밑줄 긋고 싶은 문구가 너무 많아서 책 전체를 발췌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저는 막연하게 미국이 그래도 한국보다는 사정이 낫겠거니 했는데 전혀 아닌가봐요. 전세계에서 '어머니는 위대하며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신화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는 나라는 프랑스밖에 없는 수준이래요. 성평등이 그나마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북유럽도 사회제도적으로 가정 안팎에서 육아를 도와주는 제도가 잘 되어 있다 뿐이지, 딱히 가정 내에서 남편이 아내와 동등하게 육아를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이나 미국에 비하면 높은 육아 참여율을 보이겠지만요. 또 요즘은 페이스북 같은 SNS 덕분에 엄마들이 다른 집 엄마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이 정도는 해내야 해' 하고 받는 압박이 어마어마하게 높대요. 도저히 혼자서는 다 쫓아갈 수 없는, 불가능의 기준인 거죠.


 결혼을 하고나서 가사 분담으로는 나름 공정하고 공평하게 잘 굴러가던 집도,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완벽하게 어그러집니다. 이 책은 그 이유를 여러 가지 문화적/사회적/생물학적 요인으로 분석을 시도해요. 좀 거친 요약일 수도 있겠지만, 읽다보니 결론은 '그래도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이 한 줄로 요약되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하나하나 세세하게 짜 놓지 않으면, 남자는 자신에게 이득으로 돌아오지 않는 모든 일은 죄다 미뤄버립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되기 때문에. 저는 '전략적 무능력'이나 '선택적 망각'이라는 용어가 참 마음에 듭니다. 적어도 남자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내주잖아요. "여보 이거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나 "미안 깜빡했네" 같은 말로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것은 당신의 일이고 나는 결코 하지 않을 거라고 신호를 보내는 행동에 딱지를 붙이는 거예요.


 저자가 일본 여성의 대응을 소개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도 지금 똑같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저자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2011년 일본 18~34세 여성의 49퍼센트가 남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고 39퍼센트는 아예 한 번도 성관계를 갖지 않았대요. 전문가 용어로 '친밀한 관계로부터의 도피'입니다. 결혼과 육아가 여자의 인생에 그토록 많은 짐을 올려놓는데, 그걸 우리가 왜 져야 하지? 처음부터 남자를 만나지 않으면 되잖아?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거죠. 요즘 한국의 비혼 열풍을 생각해보면 남의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한국은 출산율이 일본보다도 낮잖아요. 다들 눈치챈 거죠. 육아가 여자의 무덤이라는 걸.


 그렇다고 이 책이 결혼-출산-육아를 반대하느냐? 당연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런 식의 비정상적인 회피 전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금 각자 가정 내에서 겪고 있는 불평등을 인식하고 그걸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요. 정말 신기하죠? 이대로 가다가는 결혼 생활이 파경에 다다를 게 분명히 보이는데도 (외도와 관계소홀 다음으로 많은 이혼사유가 불평등한 가사&육아분담이래요) 많은 남편/아빠들이 그저 손놓고 아내 혼자서 잠도 못 자고 허덕거리며 모든 일을 처리하는 걸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는 게요. 의외로 결혼 생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득을 보는' 쪽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내용도 나오는데.. 아니 그럴 거면 그냥 너도 하란 말이야! 하는 소리가 바로 목 밑까지 차오릅니다.


 저는 특권을 가진 쪽이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노력할 거라고 믿지 않는 쪽입니다. 그래서 더 이렇게 회의적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정말로 상대를 사랑한다면, 아내의 희생이나 노력을 당연시하지 않고 자기도 그 짐을 나누려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지 않을거면 애시당초 결혼을 하지 말았으면 싶고요..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지금 '독박육아라기엔 뭔가 애매하게 남편이 시키는 건 해주지만 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하지 않고, 그 시키는 일을 생각하고 결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알려주고 점검하는 것까지 전부 다 내가 해야한다'는 상황에 빠져 계신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의 분노와 울분이 단순히 내가 속이 좁고 까탈스러워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위안이 되는 지점이 있으니까요. 그 남편되시는 분들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는데, 책에 묘사된 남편들의 행태를 봐서는 본다고 해도 깨닫고 변화할지는 미지수네요.


 '당신은 정말 좋은 엄마야' 혹은 '당신 없으면 굴러가지가 않아' 같은 사탕발림으로 모든 부당함을 떠맡고 계신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여.. 이제는 그딴 허울 좋은 말에 만족하는 대신 반은 당신의 몫이고 그건 당신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얘기합시다. 아직도 세상 대부분의 여자들이 이렇게 산다는 게 너무 슬프고 화가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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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디테일 - 위대한 변화를 만드는 사소한 행동 설계
BJ 포그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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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관은 간단한 것 같은데, 의외로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골치가 아파요. 매번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면서 '내일은 이러지 말아야지' 해놓고 그 다음 날도 똑같은 짓을 했던 경험.. 아마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습관에 관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고요!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습관을 더 빨리, 더 쉽게 만들 수 있을까? BJ 포그는 반복이 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런저런 이론이나 행동양식을 많이 말하고 있지만, 다 읽은 지금 핵심은 '감정'으로 정리되는 것 같아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싶으시겠죠. 책 내내 습관을 만들려면 더 구체적으로, 더 작게, 더 잘게 쪼개는 거라고 외치고 있으니까요. 이건 기술적인 부분이잖아요. 예를 들어서 '운동을 30분 하겠어'가 아니라 '팔굽혀펴기를 딱 2번만 하겠어'나 '매일 런닝화를 신겠어' 하는 식으로 더 쉽고 간단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식이거든요. 그런데 이 쪼개고,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감정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싶어져요. 그게 뭐든지 하고나서 어색하거나 불편하거나 힘들다는 느낌이나 기분이 들면 그 습관은 물 건너갔다는 거죠. 결국 '감정'이 핵심입니다.


 왜 하기 쉬운 일부터 하나씩 해 나가야 하는가? 왜 가장 피곤하고 힘들고 아픈 날에도 할 수 있는 그런 목표를 세워야 하는가? 그래야 잠깐이라도 '아 하기싫다' 하는 생각을 안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는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바로 그 느낌을 전력으로 받아들인대요.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는 순간, 그 전에 아무리 반복해왔든 상관없이 습관으로 만들기 어렵다고 해요.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막연한 생각과 다르게, 의외로 시간은 습관을 만드는 데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해서 놀랐습니다. 보통 100일 정도를 기준점으로 잡는 걸 많이 봤는데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으로도 습관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나요?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성공하고 나서 자기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라는 꼭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실패한 상황에 대해 '짜증나' 같은 소리는 입에 달고 사는데 비해, 기분이 좋은 상황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거든요.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러실 것 같아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습관을 꼭 바꿔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뇌에다 자꾸 부정적인 피드백은 계속 주고 긍정적인 피드백은 하나도 안 주고 있으니까, 계속 상황이 악화되는구나 싶었어요. 그게 뭐든지, 기분이 좋아야 계속 힘내서 뭘 자꾸 이어갈 수 있는데 저는 그게 정말 안 됐던 것 같아요. 이제라도 꼭 고쳐야겠다 싶어요.


 각 장마다 마지막에 핵심 내용을 정리해놨고, 책 제일 뒤쪽에는 아예 책 내용을 4페이지 정도로 간략하게 요약을 해놨더라고요. 빠르게 내용을 파악하고 싶은 분들은 뒤쪽부터 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다만 책에서도 말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찬찬히 읽으면서 그 아는 내용을 실천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과정을 가지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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