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보다는 '노르웨이의 숲' 이 제목이 난 더 좋다.너무 제목이 적나라하게 상실 운운한 것보다 노르웨이의 숲은 어떨까하는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그 느낌이 더 좋지 않은가.그런데 비틀즈의 노래는 헤이쥬드,예스터데이,히어캄즈 더 썬,미셀,렛잇비,등등 많이 아는 듯한데..노르웨이의 숲은 모르겠다.노르웨이의 숲은 내가 기억하지 않아서 슬플까..

내가 하루끼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던 건 아마 결혼 후 2번의 유산때문에 친정으로 돌아가 몸조리를 할 때이던 십여년 전인것 같다.그때 나는 누워있어야만 했기에 아무 낙이 없었고 몸대신 눈하나만으로 할수 있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하고 있었다.활자 중독증처럼 읽고 읽고 또 읽었다.하루끼의 초기작품들을 걸신들린 듯이 읽었었다.

그러나,난 그 때 느꼈어야했다.다시 읽으면서 나에게 준 상실과 허무를 난 그때 미리 알았어야만 했던 것이다.나오코에게 기즈키의 죽음 후 늦게 알게된 성장의 고통이 더 힘들었던 것처럼, 늦게 알게된 허무의 괴로움이 지금의 나를 관통하게 내버려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요즈음의 나는 어항에 들어있는 금붕어같다.새로운 세계는 내 앞의 유리를 통해 보이는데, 난 그 곳을 갈 수가 없다.가끔 숨쉬느라 버끔거리며 물가에 거품을 밀어내는 것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대신 할 뿐이다.유리가 깨지면 난 죽을 지도 모른다.그러나 어항 속에서조차도 침대에 누울 때마다 왜 사는지 모르겠고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아침마다 너무 힘들게 일어나고,아이들을 보내고는 또다시 죽음같은 잠 속으로 빠진다.그러면서 깨어있는 시간에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분석하고 또 분석한다.나는 누구인가.

하나의 깨달음은 있다.내가 이같이 리듬을 잃은 적이 또 있었는데 바로 결혼 직후부터 큰애를 낳았던 그 몇 년이라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이다.결혼하자마자 우리는 신랑이 군의관으로 근무하는 부천 옆의 부평에서 신혼집을 얻어 살림을 시작했다.그땐 난 졸업하자마자였기 때문에 친구들은 직장이다 대학원이다 또는 선이다 하면서 나랑은 다른 세계에 살았고,생전 알지도 못하던 동네에 와서 이웃들과 마실을 다니며 새로 안면을 트기에는 너무 어렸다.신랑과 나란히 침대에 드는 일은 아침까지 나를 뒤척이게 만들었고 가끔은 엄마가 해주는 밥이 못견디게 그리웠고,작은 군인 월급을 쪼개 생활하는 일은 나에겐 너무 낯설었다.게다가 예상치 않은 연달은 임신과 유산은 나의 미래 계획을 다 바꿔놓았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돌아보면 그때의 난 너무 순진했고 자신만만했으며 낙천적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때와 지금의 내 경우가 바로 부적응증이라는 진단이 나오게 된다.난 이때껏 내가 굉장히 적극적이며 새로운 것을 재빨리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이같은 결론은 좀 놀라웠다.생각해보면 미국에 오자마자 아이들은 써머캠프에 ,신랑은 공부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며 전투 속에서 하루하루를 적응해 갈 때,나는 하루하루 평온하려고 애쓰는 집에서 도닦으며 썩어갔다.내 머리속에 떠도는 숱한 이야기들은 영어의 장벽에 막히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장벽에 막혀 출구를 못찾아 우왕좌왕하고 있다.나오코처럼 말찾기병에 걸린 것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나의 병은 없었을까...계속되는 의문은 그것이었다.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결론은 노이다.단지 이것저것 포장으로 두텁게 나를 감싸서 들여다 보지 못했을 뿐이지 이것은 내 내면의 본질적인 문제이다.부적응증은 다른 이름으로도 어디서든지 나타날수가 있다.미국에 와서 단지 포장을 뜯는 순간이 조금은 빨라진 것일 뿐이다.그러면 해결책은 있을까.

와타나베는 책에서 말한다.

<어째서 그런 식으로 모든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어깨의 힘을 좀 빼라구.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으니까 그런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거야.어깨에서 힘을 좀 빼면 훨씬 몸이 가볍게 돼.>

<어깨 힘을 빼면 몸이 가벼워진다는 것쯤은 나도 알아요.그런 말은 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구요.알겠어요? 내가 어깨 힘을 뺀다면 나는 산산조각이 난단 말이에요.나는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만 살아왔고,지금도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한번 힘을 빼면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갈수 없다구요. 난 산산 조각이 나서 어딘가로 날려가 버릴 거에요.어째서 그걸 모르는 거죠?그걸 모르면서 어떻게 나를 돌봐준다는 말을 할 수가 있죠?>

나오코는 마치 나처럼 대답하고 있다................!

며칠 전 신랑과 속깊은 대화를 하면서 나를 좀 터놓았다.그나마 오빠라도 눈치채고 말을 걸어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난 아직도 가끔 연애할 때처럼 오빠라고 부르는 데, 오빠는 정말 나를 끔직히 사랑해준다.그래서 나오코의 다음말이 이해가 된다.

<누가 누군가를 영원히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안그래요? 가령 내가 당신과 결혼을 했다고 쳐요.그럼 당신은 회사에 다니겠지요.그럼 당신이 회사에 있는 동안엔 누가 나를 보호하고 지켜줄까요? 당신이 출장에 가있는 동안엔 또 누가 나를 지켜주지요? 그러니 나는 죽을 때까지 당신과 붙어 다녀야 하잖아요,안 그래요? 그런 것은 좋지 못해요.그런 것은 인간 관계라고 할 수도 없겠지요.그리고 언젠가 당신은 내게 싫증을 느끼고 말 거에요.'내 인생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여자를 돌보는 일뿐이란 말인가' 하고. 난 그런 건 싫어요.그래서는 내가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나오코에 대해 무지무지한 감정 이입을 느끼며 이 책을 읽는 통에 나는 좀 두려워졌다.몇 년 전 자살을 한 00 엄마도 떠오르고.책의 마지막 부분에 레이코 여사가 기차역에서 와타나베와 헤어지며 울때 나도 울었다.지금도 눈물이 난다.요즘은 눈물이 너무 샘솟아서 어디 갈때 마다 제일 두려운 것이 우는 일일 정도니까.차라리 우는 게 날지도 모르겠다.울고나면 좀 시원해지니까.나이가 들수록 우는게 쉬워지고 화내는게 쉬워진다.굴러가는 돌을 보고도 웃음이 나오던 그 시절은 어디로 갔는지.

교회에서 이 책을 빌려온 일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내가 좋아하는 어린이책 작가인 Louse Sacher는 책에서 상담 선생님을 통해 말한다.세상에 우연이란 없단다..하고.이 대목을 찾고 싶은데 지금 그 책이 이층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에 있어서 정확히 쓸 수가 없다.요즘의 내 관심사는 신앙과 존재의 의미이므로 어쩌면 저번에 교회에서 빌려온 나니아 이야기와 상실의 시대 이 두 책의 조합은 그 책사이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던 것이었던 것이다.

너무 심각해져 버려서 오빠와 함께 보려고 했던 Passion of Christ는 다음에 보려고 한다.그 영화까지 내가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의 안락함이 필요하다.순진하고 자신만만했던 그 때로 돌아가게 해줄 환타지가 필요하다.

노르웨이의 숲..그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과연 상실의 시대처럼 허무한지.노르웨이에 숲은 있기나 한건지......

<도대체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해답다운 해답은 찾아지지 않았다.나는 가끔 공중에 떠도는 빛의 입자를 향해 손을 내밀어 보았으나, 그 손가락 끝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나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인가.그러나 그것이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대체 여기가 어딘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 것도 없이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나는 아무데도 아닌 공간의 한가운데서 미도리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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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1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ddanzi.com/ddanziilbo/music/pop/pop_03.asp
여기 중간에 함 바바. 노래 찾고있었는데 노래는 없다.
딴지 기사인데, 노래나 들려줘가면서 떠들든가 하지.
하지만 그동안 나도 좀 이상하고 의아했던 부분이 설명된 느낌.
어느 미국인에게 함 확인해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텐데...
아, 에이미... 친정에서 돌아오면 물어봐야지.

비로그인 2004-03-1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mdsvr1.imufe.com/oldkong/b/Beatles[Rubber Soul [US]-196512]-02 Norwegian Wood.wma
찾았으. 아줌마의 힘! ^^ V

좋은사람 2004-03-21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흑..내 컴으로는 자꾸만 에러가 난다..도저히 들을수가 없구나..
하긴 땔감으로도 쓰이는 노르웨이산 옷장이나 가구라니 도저히 상상이 안가지만..
안그래도 나두 사실 놀웨지안 우드라길래..
골프용품으로 쓰이는 건가...하는 엉뚱한 상상도 했었거든 ..
어쩌냐 ㅋㅋㅋㅋ 도저히 웃겨서 이제는 이 책은 상실의 시대로만 기억해야겠다..
땔감과 이 소설은 연관 시킬 수가 없어져버렸다..
도대체 비틀즈 이눔의 자식들은 왜그런 가사를 붙인거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