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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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과점집 애들은 집에서 맘껏 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까? 꽃집 애는 집에 항상 꽃이 가득할까? 글쎄ㅡ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난 말야. 매일 밤 따끈따끈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구.
 
나는 책을 고를 때, 흥미나 취향에 따라 고르기도 하지만 주로 작가중심으로 책을 골라 읽는다. 물론 그것은 그 작가의 전작이 괜찮은 감상을 주었음을 전제로 하는데 이 편이 비교적 안전한 책 선별법이 되어주곤 한다. 그에 따른 단점도 분명히 있다. 처음 어떤 작가를 접한 책이 나와 영 코드가 맞지 않아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버리면 후에 주옥같은 작품을 지나쳐 버릴 때도 있거니와 어쩔 수 없는 것이 사람인지라 내가 먼저 작가에 대해 질려버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비슷하고 비슷한 전형적인 '그 작가'만의 스토리에 지치기도 한다는 사실. 하마터면 기타무라 가오루라는 작가를 그렇게 나와는 맞지않는 작가로 분류하고 지나칠 뻔 했더랬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속단인지 뻔히 잘 알면서도.. 
 
다행히 "SKIP"에 대한 흥미가 조금은 남아있어 염두에 두고 있는 작가였는데, 그보다 먼저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마치, 사막의 모래가 발끝에서 소리를 내는 것처럼 이름만 들어도 사랑스럽단 느낌이 밀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조심스레 펼쳐 든 책 속의 간단명료 하면서도 생기발랄한 삽화가 결국 동심과는 전혀 무관한 나를! 무너뜨렸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엄마와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 사키. 엄마와 딸의 관계는 확실히 부자지간이나 부녀지간보다 훨씬 나란히 손을 잡는 수평적 관계 같은 느낌을 준다. 사키와 엄마는 친구같고 자매같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서로의 얘기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주기도 하고, 때론 이불 속에서 장난을 치며 키득거리기도 하는 아주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소한 일상속의 잔잔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절로 따라웃게 되기도 하고, 감동도 된다. 따뜻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작가, 기타무라 가오루가 남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웃음)
 
덧붙여, 사키와 엄마가 언제까지나 그렇게 꼭 손을 마주잡고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걷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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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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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soy coreano, ni soy japones, yo soy desarraigado
(나는 한국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이다.)
 
나오키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흥미로운 타이틀과 가네시로 가즈키라는 이름만으로도 덥썩 집어들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었지만 이렇게 뒤늦게 접하게 된 까닭에 대한 변명을 해보자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갖는 문제의식에 대해 고민하고 싶지 않아서가 첫번째 이유이고 두번째는 먼저 읽은 "레볼루션 No.3"에서 만난 좀비스 녀석들에 대한 나의 애정이 바래버릴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진작, 바로 첫 장에 적힌 작가의 다짐같은 선언을 먼저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쯤에서 미리 밝혀두겠는데, 이 소설은 나의 연애를 다룬 것이다. 그 연애는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자본주의니 평화주의니 귀족주의니 채식주의니 하는 모든 '주의'에 연연하지 않는다.'
 
재일동포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 작가는 이야기속에 본인의 성장기를 녹여내고 있다. 프로복서였으며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전향으로 조총련계에서 민단계로 옮긴 재일동포 3세 고등학생인 스기하라가 일본 사회의 뿌리깊은 민족차별을 극복해나가는 와중에 일본인 소녀와의 연애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자칫 무겁고 진지할 수 밖에 없을 이야기를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거침없이 우리를 그 안으로 불러들인다.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재일코리언'이 과연 얼마만큼의,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않는 무수한 차별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을지. 그러나 "우리들은 나라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라는 정일의 외침은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원 한 복판에서 아버지와 복싱결투를 벌이질 않나, 농구시합 중엔 상대편 선수에게 드롭퀵을 날리곤 질질 끌려나오질 않나, 전철과 달리기를 하는 무모한 담력테스트(스기하라의 표현을 빌자면 "슈퍼그레이트 치킨 레이스"라고 한다.)를 하고, 서랍속엔 항시 준비 된 재털이가 들어있는 울트라 골통 스기하라. 마치 더 좀비스를 보는 듯한 이 우직하고 말썽투성이인 녀석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나는 꽤나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스프링스천의 기분은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노래한다면 이렇게 하겠다.
 
유복한 나라와 가정에서 태어나
말썽을 부리곤 아버지에게 걷어차였다
인생의 대부분을 당당하게 살았지만
긴장을 풀면 언제나 벌받은 개꼴이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렇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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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끈 - CSI: 과학수사대, 라스베이거스 #6
맥스 알란 콜린스 지음, 김종각 옮김, 한길로 감수 / 찬우물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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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CSI 과학수사대'의 모든 시즌과 에피소드를 꼼꼼히 챙겨보는 시청자는 아니지만 범죄의 구성이나 실감나는 특수효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을정로도 완벽하다고 생각 해왔다. 그래서 책으로는 처음 접하게 되었지만, 영상으로 보여지는 것 만큼의 완성도를 과연, 활자로도 느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책을 집어든 동기가 되어주기도 했고 읽는 내내 그것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우리가 TV로 익숙하게 그릴 수 있는 인물들의 외모나 취향들을 아주 친절하게 묘사를 덧붙여 설명해주는 대목에서는 간질간질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예를들어, "검은 머리를 짧게 깎은 근육질의 전직 대학 미식축구 선수였던 닉의 매력적이고 싱그러운 미소는..."와 같은!) 그렇지만 범죄를 그려내는데 있어서 영상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 긴장감은 여전했다.
 
11년전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괴물, 캐스트. <capture(납치), Afflict(고문), Strangle(교살)>이라는 코드로 5건의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 범인이 10년만에 언론사에 편지와 자신이 전유물로 간직했던 지난 날 사건의 피해자의 손가락을 보내 그 부활을 알리고 10년전 5번째의 사건을 끝으로 발생하지 않던 캐스트 코드의 살인이 다시 발생한다.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몇몇의 수사관이나 지극히 한정된 언론인들만 알고 있었던 비밀 두 가지(잘려진 집게 손가락, 피해자의 등에 뿌려진 정액)가 정확히 일치하는데. 과연, 캐스트의 부활인가 아니면 카피캣의 새로운 등장인가! 라스베이거스 경찰국 초년시절 유력한 용의자를 확보하고도 결국 미제 사건이 되어 속 앓이를 했던 짐 브래스 경감의 악몽이 다시 시작된다.
 
문자만으로도 참혹한 현장과 함께, 범죄를 대하는 수사관들의 모습까지 마치 영상으로 보는 것 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각적인 효과로 자칫 지나칠 수 있는 부분들까지 천천히 되짚어보며 마의 의지로 흐름을 찾을 수 있는 게 역시, 책의 매력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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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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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왠만한 책은 모두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읽다보니, 받아 드는 순간 예상이란 걸 깨부수고 등장하는 책들이 종종 있다. 물론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뒤늦게 처음으로 접한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6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만만치 않은 두께에 입이 절로 떡 벌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작가는, 이렇게 방대한 이야기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p.91)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 모으듯 '사건'은 많은 사람을 빨아들인다. 폭심지에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 이를테면 각자의 가족, 친구와 지인, 근처 주민, 학교 친구나 회사동료, 나아가 목격자, 경찰의 탐문을 받은 사람들, 사건 현장에 출입하던 수금원, 신문배달부, 음식배달부 등 헤아려보면 한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있는지 새삼 놀랄정도다.
(사실, 책의 마지막 장을 지나면 '해설'에 더욱 잘 나와있지만, 역시 이 책을 설명하는데 빠져서는 안되는 부분이기에 부득이하게 언급을 한다.) 
비단, 그렇게 연결 된 '방사선'이 '사건'을 중심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리라. 지금도 나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사이,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그런 형태로 그 연결고리를 쥐고 있을 것이다.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그 이유를 어떠한 계기를 통해 알게 되느냐 그렇지 않은가 하는 차이일 뿐. 그런 의미에서 살인과 사건을 떠나 그 사람과 사람이라는 연결고리 자체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 예를 보여주듯, 소설 속에는 그 '양'으로만 따질 수 없을만큼 다양한 인물들이 깊이있게 등장한다. 그저 스쳐가는 이웃 주민에서부터 '사건'과 그 전, 후에 까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퍼즐조각을 쥐고 있는 사람까지. 그렇게 다양한 인물들을 친절한 설명없이 '왜?'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한 곳에 그러모으면서도 이야기는 결코 산만해지거나 번잡한 교통체증을 일으키지 않는다.
 
지상 25층 규모, 총 785세대가 거주하는 별천지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 '아라카와 일가족 4인 살인사건'으로 기억 될 대량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억수처럼 쏟아지던 비로 사건은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고, 사건의 배경엔 부동산 문제가, 중심에는 위기에 처한 '가족'의 단면을 담고있다.
 
사회파 미스터리로는 단연코 미야베 미유키를 떠올릴 수 있을만큼, 역시 그녀의 작품이구나 싶어 읽는 내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몇몇 의견처럼 지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느 르포르타주 보다도 훨씬 정갈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감히 단정할 수 있을만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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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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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란 단어는 언제나 특별하다.

자칫 무모한 호기심을 발동시키기도 하고 그에따라 예상치도 못했던 그 비밀의 실체에 다다라선

오싹함을 느끼거나 그 공유된 비밀의 중압감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비밀이야기. '굽이치는 강가에서'가 비밀의 소녀판이라 한다면, 네버랜드는 그 소년판이랄까.

'밤의 피크닉'보다는 더욱 아찔한 그들만의 성장통을 그려내고 있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남학교 기숙사 쇼라이칸에 네명의 소년이 있다.

언제나 시끌벅적하던 일상의 공간의 균형이, 점차 비일상으로 물들며 자의반 타의반,

저마다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비밀을 하나둘씩 풀어놓게 된다.

학교와 기숙사. 그 단체 생활이라는 틀 속에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모습들로 그저 균형을 이룬 것

처럼 보였을 뿐, 그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기운은 차가운 12월의 눈보라처럼 휘몰아친다.

장난처럼 시작 된 진실게임으로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는 그 과정속에 진실을 발견하게 되고

아련한 기억으로 남게 될 그들만의 성장통을 겪으며 비로소 진정한 우정을 만나게 된다.

 

사실, 껍질을 벗겨 낸 '비밀'의 열매는 생각처럼 달콤하지 않다. 오히려 그 끔찍함과 참혹함에

고개를 돌려버리고, 외면하고 싶은 순간도 분명 존재한다.

책장을 덮고서도 미쓰히로의 절규는 계속해서 내 귓가를 멤돈다.

"들어! 이런 이야기가 듣고 싶었잖아? 너희는 늘 그래.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면서 이것저것

캐물으려고 들어.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만두라고 하지. 자기가 듣고 싶어해놓고,

도저히 못 듣겠다고 해. 그리고 다 듣고나면 나를 더러운 물건 보듯이 하면서 피하기 시작해.

듣고 싶었잖아. 얼마든지 들려줄게......"

혹시, 나도 그런 적은 없었을까. 단지 호기심이라는 이유 하나로 누군가의 생살을 도려낸 적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했다.

 

오사무, 요시쿠니, 간지, 미쓰히로.

어쩌면 녀석들은 서로의 비밀을 바깥으로 꺼내놓고 오히려 자유와 편안함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쇼라이칸의 연휴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녀석들의 멋진 성장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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