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에 가입했다. 물론 나는 시민권자도 아니고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내가 한국에 사는, 한국을 사랑하는 영국인이고, 한국이 극도로 우경화되는 모습에 안타까워 하고 있고, 마침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작은 일이 있다면, 내가 한국을 사랑한다는 그 표현은 오로지 내가 그 어떤 작은 일을, 그것이 어떤 것이든 실제로 수행함에 의해서만 내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이번 탈퇴 결정이 긴축 정책과 심화된 계급 갈등의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이건 거의 자명한 이야기다. 그래서 문제는 이런 상처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집권 보수당은 이런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보수당은 장애인 복지 혜택을 줄이는 정책과 부자들 세금을 깍아주는 정책을 동시에 발표할 정도로 아무 감수성이 없다. 노동당도 마찬가지다. 대처 이후 집권기 동안 노동당은 이런 문제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야당이 된 지금도 다를 건 없다. 노동당 내에서 유일하게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현 노동당 리더인 제레미 코벵이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

영국에서는 국민 투표가 끝나자마자 블레임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 화살은 누구에게 갔을까? 카메런 총리? 아니면 보리스 존슨? 아니다. 제레미 코벵에게 갔다. 영국의 얼마 되지도 않는 진보 신문 중 하나인 가디언이 먼저 포문을 열고, 노동당 예비 내각 멤버들이 아침에 한 명, 저녁에 한명, 이런 식으로 잘 계획된 작전마냥 사임에 나섰다. 현재 예비 내각의 2/3 이상이 사임했고 코벵에 대한 불신임에 투표한 의원들은 80%에 달한다. 도대체 왜 이럴까? 국민투표로 EU 탈퇴 결정이 내려졌는데 왜 코벵이 그 책임을 져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80%에 달하는 의원들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누구나 인정하는 하나의 답이 있다. 그것은 노동당 의원들이 코벵이 electable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것은 구실에 불과한 것이다. 왜 코벵이 electable하지 않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코벵이 긴축 정책을 완화하고 계급 갈등을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럴려면 먼저 부유층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야 한다. 영국은 EU 내에서 소득 불균형이 가장 심한 나라이지만 고소득층에 대한 최고 세율은 미국보다도 낮다. 계급적 분리가 심화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코벵의 이러한 기득권층에 대한 도전에 영국의 중앙 정치권은 화들짝 놀란다. 보수당도 놀라고 노동당도 놀란다. 기득권에 도전해서는 선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지혜인 것이다. 그것은 또 노동당 역시 기득권에 속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당 의원의 80%가 비토하는데 코벵이 리더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노동당 의원의 80%는 코벵을 비토하지만 평당원의 과반수는 코벵을 지지한다. 곧 노동당 리더 경선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나는 평당원으로서 코벵에게 투표하기 위해 소정의 당비를 내고 노동당에 가입한 것이다. 노동당 현직 의원의 절대 다수가, 그리고 거의 모든 언론이 코벵을 비토하고 있기 때문에 코벵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에 어떤 의의가 있을지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나이 먹는다는 것이 좋은 것은 어떤 좌절적인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는 것인 것 같다.

어쩌면 영국 워킹 클라스의 분노와 좌절을 노동당이 아니라 UKIP이 받아안을 수도 있다. 워킹 클라스 사람들은 산업을 살리고 커뮤니티를 복원하자는 코벵의 주장에 적개심을 보일 것이다. 내가 가는 피쉬앤칲스 가게마다 놓여 있는 신문은 언제나 썬이나 데일리 메일같은 어처구니없는 우파 신문들이다. 영국 서민들의 심성에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이런 신문들인 것이다. 영국 총리 아버지가 파나마 페이퍼에 연루되어 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데일리 메일은, 상속세는 이중 과세이고 열심히 돈 벌어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생물학적 동기를 부정하는 것이니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코벵이 성공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다...

내게 영국의 EU 탈퇴 사태가 의미하는 것은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계급이 존속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제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한 자이거나 승리한 자에 동화된 패배한 자이다. 그러나 승자 중에는 좀 더 지혜롭고 솔직한 사람도 있다. 워렛 버핏이 그렇다: "There's been class warfare going on for the last 20 years and my class has won." 코벵은 이미 진 전쟁을 배경으로 등장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지게끔 운명지워져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미 끝났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도 시간의 열려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 계급은 존속한다는 것, 거기에 갈등이 개재해 있다는 것, 거기에 운동이 놓여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은 철지난 거대 서사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매일 겪는 구체적인 현실의 배경이다. 만약 철학에 어떤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현실로 돌아가라, 라는 것일테다. 그렇게 했을 때 우리가 곧장 발견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유년기에 있다는 것, 즉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언제나 그렇듯 이것이 곧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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