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주일 전에 영국 아카데미 영화제를 보다가 각본상 후보에 오른 엑스 마키나란 영화에 끌렸다. 테스코에 갔다가 있길래 사 보았다. 아주 좋았다.
에스에프 로봇 영화의 주제는 로봇의 정체성, 그러므로 역으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화적 긴장감을 잃지 않고 이 주제를 참신하게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엑스 마키나는 대단히 성공적인 영화다. 스릴러가 있지만 정적이다. 영화의 균형을 깨뜨리는 과도한 연출도 없다. 좀 지루하다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감독이 적절히 절제력을 발휘했다고 본다.
영화의 주요 테마 중 하나는 튜링 테스트이지만 남자 칼렙과 여자 로봇 에이바에게 튜링 테스트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유리벽이 가로놓여져 있다. 그러므로 이제 유리벽이 상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즉, 섹슈얼리티. 사르트르가 하이데거에 대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는 섹슈얼리티가 없다고 불평을 한 적이 있는데, 영화는 바로 이 점을 상기케 한다.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의식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영화의 질문은 굉장히 날카롭다. "~인 척" 할 수 있다면? 여기서 자아의 발생을 지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핵심적인 것은 '나'의 분리이다. 이제는 상식이 된 이야기이지만, 자아라는 것은 우리의 행위의 배후에 놓여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에 대해 갖는 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나'와 '자아'는 다르다. 타인도 나에 대해 어떤 상을 갖는다. 자아와, 타인이 나에 대해 갖는 상은 존재론적으로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타인의 나에 대한 상이 나의 나에 대한 상에 앞선다.) 인간은 타인의 나에 대한 상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이 "~인 척"의 가능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의식적이라는 것은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연기를 하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로봇 에이바도, 사람의 시선 아래에서, 더우기나 남자의 시선 아래에서, 그리고 우연찮게도 자신이 여자의 몸으로 만들어졌으므로(사실성), 여자를 연기한다. 영화를 가득 채우며 울렁이는 섹슈얼리티의 분위기는 여기서 기인한다. 섹슈얼리티를 극대화시키는 영화들의 비결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엑스 마키나는 인간학적 비밀의 핵심을 성공적으로 폭로한 매우 진귀한 영화다. (사실 2001 오딧세이에도 이런 테마가 나온다.)
-추: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더 깊은 가능성도 있다. 인간의 경우 자신에 대해서도 "~인 척" 할 수 있다. 로봇도 이것이 가능할까? 예컨대, 자아 개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동물들도 타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이 동물들이 자기 자신도 기만할 수 있을까? 로봇은 자기를 기만할 수 있을까? 어떤 존재가 의식적인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 기준은, 이 자기 기만성에 있을 것 같다. (물론, 사르트르적인 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