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건국 시점 논란. 어쨌든 정리해 보자. 건국 시점에 대해, '말하자면' 기존에 두 가지 관점이 있었다.
1. 정통주의: 정통주의의 근거는 대한민국 헌법이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한반도 유일의 정통성 있는 합법 정부다. 그러므로, 예컨대 북한은 불법 단체다.
2. 현실주의: 헌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는 입장이다. 예컨대, 현실적으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이미 남북 공동으로 유엔에도 가입했으니까.
아마 한국이 정상적인 나라라면 보수 세력들은 당연히 정통주의를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진보 정당은 정통주의가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이고 대결주의적이고 이념적이라는 점에서 현실주의에 기울 것이다. 요컨대, 기존의 논란에서는 북한을 국가로 봐야 할 것인가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보수 진영을 자처하는 박근혜 정권이 난데 없이 수정주의를 표방하고 나선다.
3. 수정주의: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성립하고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은 것은 1948년이니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은 1948년으로 보아야 한다.
무슨 말장난일까? 물론 말장난이 아니다. 수정주의의 함의는 다음과 같다:
1). 그러므로 1948년 정부 수립에 기여한 사람들만이 건국 유공자다. 그러므로 예컨대, 김구는 독립 유공자이지 건국 유공자는 아니다. 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 운동들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아무 상관이 없다.
2). 대한민국은 무엇보다도 공산화의 위협에 저항하며 건립되었다. 그러므로 반공은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 이념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3). 객관적으로 말해서 독립은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독립 운동이 기여한 바는 사실상 미미하다.
4). 일제 시대를 산 거의 모든 사람은 사실상 일제에 참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친일이라고 비판하는 인사들도 민족의 근대화를 위해 일제의 기관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이해해줘야 한다.
수정주의는 하나의 관점이고 이념이다. 그러므로 토론을 통해 수정주의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것은, 내 생각에는 거의 무의미한 것 같다.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이러한 주장을 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일 뿐이다. (솔직히 한국에서라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물론, 수정주의가 먹혀 들리는 없다고 본다. 교과서를 어떻게 바꾸든 말든 말이다. 수정주의는 민족, 자주, 독립, 민주 등의 긍정적인 테제가 아니라 반공이라는 안티 테제에 기반하기 때문에 완전한 자가당착이다.
램브란트의 야경을 보기 위해 네덜란드의 어떤 미술관에 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미술관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램브란트의 거대한 작품 앞에 서는 순간까지 내내 충격이 빠졌었다. 왜냐하면 관객의 동선을 입구에서부터 램브란트의 그림까지 안내하는 동안 미술관의 의도가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네덜란드는 이렇게 외세(스페인)와 싸워 독립을 챙취해 냈다! 라는 것이었다. 램브란트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할까? 자기 돈으로 산 군복을 입고, 자기 돈으로 산 무기를 들고, 그렇게 가지각색의 형상을 한 사람들이 민병대로 모여 서 있는 모습, 그것은 시민들의 '자발성'을, 네덜란드라는 국가의 기초가 시민의 자발성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것이다. 그 그림은, 나 같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람객의 시선 따위는 싹 무시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덜란드의 딸과 아들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네덜란드를 만들어 왔다!" 나는 네덜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이고, 개인주의가 발달한 나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노골적인 국가주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국가든 그 국가가 지향하는 이념을 공동선의 체험, 즉 remembrance의 형태로 가공하여 그 구성원의 통합성을 유도한다. 미국의 독립 기념탑과 헌법이 그렇다. 독일의 런던 대공습 다음 날 새벽 도시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돔에 전혀 손상을 입지 않고 자태를 드러낸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의 모습이 그렇다, 등등.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수정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공동선의 이념은 반공이고 공동선의 체험은 한국전쟁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에 반공? 더 이야기할 가치가 없다. 그리고 한국 전쟁... 한국전쟁은 냉정하게 보면 동족 간에 벌인 내전이고, 냉전 시대 두 이념 진영 사이의 대리전이었을 뿐이다. 한국전쟁은 공동선의 체험이 될 수 없다.
한국도 다른 모든 나라와 똑같이 그 통합성은 시민적 자발성에서 출발한 공동선의 체험에서 올 수 밖에 없다.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그것은 일제에 항거한 독립 운동의 역사이고 독재에 항거한 민주주의 운동의 역사다. 만약 이런 역사가 없다면, 또 이러한 역사를 remembrance의 형태로 사회가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내가 단지 우연히 태어나 살게 된 땅 이상의 의미는 없게 될 것이다. 거기에 정서적 연대는 없게 될 것이다.
이른바 한국의 보수 진영이 하고자 하는 바는 한국의 remembrance를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Remembrance는 필연적으로 시민의 자발성을 고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사회가 통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보수 진영들은 사회 통합의 기제로 가족주의, 가부장주의를 내세운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한국의 청년들을 20만원도 안되는 급여로 착취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군복무는 공공선의 실현이 아니라 남자라는 '생물학적 조건' 때문에 생긴 의무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군복무는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의 부모, 형제의 안녕을 책임진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국가는 단지 너가 그러한 일을 수행할 때 필요한 도구와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다치면? 그러므로, 다친 사람 책임. 끝. (독립 운동이나 민주주의 운동이 공동선의 추구라는 것은 그것이 개인이나 가족의 안녕에 오히려 역행할 수 있는 가능성에 기반한다.)
다행히도 이른바 보수 진영의 수정주의는 극소수파의 의견에 불과하다. 우리는 여전히 낙관의 근거를 갖고 있다. 일제에 항거한 독립 운동의 역사가, 독재에 항거한 민주주의 운동의 역사가 우리에게 공동선의 체험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낙관은 우리가 이러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remembrance의 정확한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