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의 담화에 관한 기사들 몇몇을 읽었다. 박근혜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는 믿지도 않았으므로 담화에 실망한 척 하지도 않겠다. 

박근혜의 담화는 현재 한국이 처한 가장 커다란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영국에서 세월호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자. 초동 대처가 잘 못 되어 어린 학생을 비롯한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고 하자. 미국이나 영국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까? 우리는 이에 대해 수도 없이 보고 들었다. 수색과 구조 등 현장 상황을 최우선으로 관리한다, 이후 사고의 원인과 대책에 대한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조사와 연구에 들어간다, 이 결과에 기초하여 대안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이론'은 한국의 현실에는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박근혜의 해경 해체 선언이 바로 그런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준다. 사고 난지 한 달이 좀 지난 싯점에, 아직 수색 진행 중인 상황에서, 청와대 비서들과 몇 칠 논의한 결과를 바로 국민과 국회 앞에 내놓는 조급하고 비-시스템적인(비상식적인) 행동이 바로 세계 10위권대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는, 한국의 정신적 빈곤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절차를 쫀쫀하게, 혹은 찌질하게, 혹은 고지식하게, 혹은 유도리없게, 혹은 까칠하게 밟아나갔다면 세월호는 결코 물 위에 뜰 수 없었을 것이고, 숭례문 복원 공사가 수포로 되지 않았을 것이고, 박근혜는 사고 한 달 만에 해경 해체를 선언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말하자면 성향적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의 성향이 현재의 한국에 병존하고 있는데, 이 성향이 때로는 세대 갈등으로, 때로는 좌우 갈등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에서 말하는 좌우 갈등이 무슨 대단한 이념 갈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절차를 밟아나가는 일처리에 상대적으로 편안해 하는 성향과 그것을 답답하게 여기는 성향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적 함의를 다 떠나서 후자의 성향도 분명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이탈리아나 터키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이다. 반면, 우리가 결국 걸어가야 할 방향은 전자라는 것도 분명하다.

나는 충남지사 안희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의 인터뷰를 하나 읽었다. 앞서 말한 성향의 차이가 안희정과 정진석(한나라당)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제: 충남에 복철을 놓아야 한다. 국토부는 충남의 입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재정부가 돈이 없다며 난색을 표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진석의 답: 나는 박근혜와 친하다. 그에게서 돈을 따오겠다.

안희정의 답: 국토부와 협의하여 보고서를 만들겠다. 장기적인 차량과 철도의 운송량 퍼센트 변화를 보여주면서 지금 복철을 건설해야 시기를 맞출 수 있다고 재정부를 설득하겠다.

자, 누구의 태도가 더 옳은가? 물론, 안희정이다. 그러나, 당신이 충남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관한 한 누구를 찍고 싶은가? 솔직히 정진석이 더 미더울 수 있다. 안희정은 허황된 말 뿐일 수 있다. 이것이 노년 세대의 입장일 것이다. 노년 세대는 절차를 차근 차근 밟아나갔다면 한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삶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노년 세대는 무엇보다도 정진석, 박근혜와 진심으로 뭔가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세대일 것이다.

이런 성향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10년, 20년 정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이런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젊은 세대를 잘 지켜내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일베라는 사회 현상을 만들어낸 집권 세력은 정말 대단한 천재다. 그러나 우리가 질 리는 결코 없을 것이다. 

(혹시 댓글이 달려도 대댓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이제 진짜로 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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