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11월 초가 되면 밤마다 불꽃 놀이를 벌인다. 400년 전에 가이 폭스라는 사람이 영국 국회 의사당을 폭약으로 날려 버리려다 미수에 그친 걸 기념하는 거라나...
지난 토요일에 집 근처 나대지에서 하는 불꽃 놀이 축제에 다녀 왔다. 캄캄하고 바람이 엄청 부는 저녁이었는데 사람이 많이도 왔다.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장화를 신은 사람들(나대지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잔디로 덮여 있어서 장화가 정말 요긴하다), 그 추운 날 유모차를 끌고 온 사람들, 그 추운 날 반바지 차림으로 나온 어떤 가족...
한쪽에는 번쩍 번쩍 빛나는 놀이 기구들이 돌아가고 다른 쪽에는 햄버거나 칲스를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또 다른 한쪽에는 목재를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불을 붙인다.
우리도 놀이기구를 하나 탔다. 한국보다 훨씬 오래 탈 수 있어서 좋았다.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놀이기구에 혼자 탔는데 안전바가 아이 가슴팍 정도에 오더라. 아슬아슬해 보였다. 부모가 도대체 누구길래... 하는 생각도 슬며시 들었는데, 놀이기구가 멈추고 나자 아저씨 하나가 아이를 데리러 들어왔다. 아이가 환하게 웃는데 앞니가 없더라. 아이 웃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예전에 버지니아 워터라는 물 많은 공원에 갔었는데, 꽤나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아이 둘이 빤쓰만 입고 물에 들어가 있었다. 부모들은 지켜보고 있고...)
바람이 엄청 불어서 모닥불의 불길이 삼 사 미터 정도나 뻗어서 마치 태양의 표면을 보는 듯 했다. 친구 둘이 '모닥불 피워 놓고'를 불렀다. 사실 그만큼 운치가 있지는 않았다. 나중에 민박 하나 빌려서 진짜 모닥불 피워 놓고 놀자고 했다. 빈말 반 진말 반. -모닥불 피워 놓고 소주잔 기울이면서 밤새 두런 두번 나누는 이야기들을 상상해 보면 아련하기도 하다.
불꽃 놀이도 참 화려했다. 음악에 맞추어 폭죽들이 갖가지 모양으로, 갖가지 색깔을 내며 가까운 하늘을 수놓았다. 평지이기 때문에 멀리 다른 곳에서 하는 불꽃 놀이들도 다 보인다. 우리 것 말고도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다섯 개는 되는 것 같았다. 이쯤 되면 온 영국이 폭죽으로 뒤덮인다고 해도 빈말이 아닐 거 같다.
돌아가는 길. 그 많은 차들이 일시에 나대지를 벗어나 도로로 진입하려 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별 것 없다. 우리도 자동차 경적 소리 한번 들을 틈 없이 부드럽게 도로로 진입할 수 있었으니까. (이탈리아를 다녀와서인지 이런 질서, 배려, 여유가 좀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