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따지고 보면... 비슷한 데가 있긴 하다.
둘 다 이공대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메르켈은 양자역학 관련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쓴 학자 출신이고 박근혜는 숫자에 무척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예를 들면 대통령후보자토론회때)
둘 다 여성이라고는 하지만 박근혜는 남편이나 아버지의 후광을 누린 아시아 여성 정치인 중 하나인 것이고 메르켈은 자기 힘만으로 큰 사람이다.
그런데 둘 다 약간 꼴통스러운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자기 고집이 있어 남이 뭐라하든 꿈쩍도 않는다. 옆에서는 애가 탄다.
그렇게 애를 태우다 메르켈은 최종적으로 언제나 옳은 결정을 내린다. 결과적으로 이번 총선에서도 이겼다. 유로존 위기 탓에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선거에서 다 날아갔는데 메르켈은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 메르켈이 이번 총선에서 이긴 후 영국의 일간신문 가디언에서는 이제는 메르켈의 시대다, 입 닥치고 메르켈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야 겠다, 는 취지의 말을 했다. 독일 내 여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삼자 입장에서는, 메르켈은 정치적 뚝심과 판단력에 있어 비판자도 수긍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박근혜도 분명 꼴통스러운 면이 있다. 자기고집이 강해서 남이 뭐라하든 꿈쩍도 않는다. 의사결정도 상당히 늦어서 주변 사람들 애를 태운다. 그런데 최종결론이라 내놓은 것을 보면 항상 안좋은 쪽으로 기대를 넘어선다. 그래서 박근혜도 결국 비판자의 입을 다물게 한다. 항상 기대 이하라면 기대하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 블로그에서 관련된 말을 많이 했다. 여기 영국에만 와봐도 한국이 얼마나 아이를 안낳는 나라인지 느낄 수 있다. 여기 시내에 나가보면 아이 둘 이상을 안고 유모차에 태우고 손잡고 해서 데리고 다니는 젊은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한국이 직면한 가장 커다란 폭탄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라는 것이다. 이러한 때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명확하다. 다행히 한국은 담세율에 있어 아직 여유가 있고 의지만 있다면 이 문제를 풀어내는 데 박근혜 이상의 정치인이 없다. 그런데 박근혜는 사람 애만 태우다가 상상 이상의 폭탄을 떠뜨리곤 한다. 예를 들어 이번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을 해내야 한다. 연금 개혁이라고 해 봤자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정부로서는 3D 일일 뿐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시작부터 기초연금 문제를 잘못 건드렸기 때문에 연금 개혁에 나설 힘을 이미 잃었다. (물론 의지도 없었을 것이다.) 아주 먼 미래도 아니고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국가적으로 대처하는 비젼을 위해 야당과 정치적 책임을 공유하는 것은 국민을 설득하는 데 있어 필수일 것인데 박근혜는 야당을 포용의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비젼 없이 행동하는 정치인을 비젼에 비추어 평가하는 것은 분명 번짓수가 잘못된 것이리라. 이미 아무 기대도 없는데 기대하는 척 글 쓰는 것도 우습기 때문에 이제 이 블로그에 정치글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아무 기대할 것이 없다는 나의 단정이 틀렸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