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셋을 보면서 감독 리처드 린클레이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비포 선셋은 쥴리 델피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 영화가 전개되기 때문에 영화 전체를 통제하는 감독의 역량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웨이킹 라이프는 그렇게 보게 된 영화고 내게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형식적인 면을 보자면 영화는 실사에 애니매이션을 덧입힌 작품이다. 내용적인 면을 보자면 영화는 객쩍은 철학적 잡담의 범벅이다. 나의 주목을 끈 부분은 실사에 애니매이션을 덧입힘으로써, 그렇게 피사체를 추상화함으로써 철학적 잡담의 위화감을 상당히 떨쳐 낼 수 있더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사르뜨르의 구토, 혹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와 같이 객쩍은 소설들을 영화화한다고 해보자. 아니, 더 쉽게 비틀즈의 일대기를 영화화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걸 실사로 했을 경우 배우들이 얼마나 비틀즈 멤버들과 닮았는가가 영화의 성공의 관건 중 하나가 된다. 동시에, 얼마나 현실을 비슷하게 모방했는가가 영화의 한계가 된다. 영화는 결코 위화감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므로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꺼리를 태생적으로 안게 될 것이다. 반면, 500년 전의 실존 인물을 영화화한다고 해보자. 비틀즈에 대한 영화를 만들 때 각오해야 할 위화감의 위협은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인물은, 역사적 행적이나 저서의 문장 등등으로 추상화된 채 우리에게 건네져 있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안다면 표현하지 못할 것은 없다.


(요즘 영국 영화들. 킹스 스피치, 퀸, 철의 여인, 그리고 다이애너까지... 후~ 말만 들어도 위화감의 닭살이 돋아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