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북정상회담록 논란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은 회담록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 이관되지 않았다는 것인 것 같다. 후임 대통령이 회담록을 참고할 수 있도록 지정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설명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인다.

첫째,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는 주체가 대통령 본인일 것이므로, 회담록을 지정기록물로 지정한 후 폐기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아예 지정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봉하마을에서 반납된 이지원 시스템에서는 회담록이 발견되었으며 국정원 보관본과 거의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최종본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이지원 시스템에서 또다른 버전이 삭제된 채 발견된 것도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검찰에서 복구했다고 한다). 어떤 문서를 최종본으로 할 것이냐 역시 대통령의 재량일 것이고, 최종본을 남기고 중간 버전을 삭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그러므로 법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 문재인이 이관해서 넘겼다고 말한 것은 착오로 보인다. 이 부분은 그가 사과하여야 할 것 같다.

넷째, 회담록 논란은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NLL을 넘겼다고 한나라당이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북한이 먼저 한국 정부에, 노무현이 NLL을 넘겼으니 NLL 이남으로 물러나라고 요구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에 NLL을 넘기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이적행위다.

다섯째,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정치적 논쟁이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 보여주는 것: 한국 사회, 정말 호락호락하다.


2.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기사를 봤다. 교과서 필진이 십자포화를 맞고 있었다.

일제 시대때 한국의 경제 지표는 눈에 띄게 좋아졌으며 각종 근대적인 제도들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명백한 팩트다. 이제 이 팩트에 대해 평가를 해보자. 교학사 필진들은 일제가 억압적이긴 했지만 긍정적인 기여도 했다는 걸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도 한국의 근대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이 있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교학사 필진들의 논리를 부정할 수 있나? 난 못하겠다. 그것은 사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학사 필진을 비판하는 것은 결국 그 필진들의 사관을 비판하는 것이리라. 만약 과거 일제의 식민 통치가 정당화될 수 있다면 장래의 식민 통치도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 

교학사 필진들로 대표되는 세력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서 한국 사회가 극도로 보수화되어 가는 것을 보고 오랜 세월 마음 속에 품어두었던 주장을 공식화할 여건이 되었다고 본 것 같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그렇게까지 호락호락하지 않은 셈이다.

3. 전작권 관련 여론 조사에서 전작권을 한국군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70% 가까이 된다는 것을 봤다. 나로서는 놀랍도록 높은 수치였다.

통일될 때까지는 전작권을 미국이 갖는 것이 우리에게 이득이라는 의견이 있다. 가장 확실한 전쟁 억지력이 될 수 있고, 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전작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 낭만주의적 민족주의라는 비판도 곁들이면서.

이런 걸 갖고 논쟁을 벌인다 한들 결론은 나지 않는다. 난 내가 다수 세력에 속해 있어서 기쁠 뿐이다. 자칭 현실주의자들이 우리를 이상주의라고 비판하더라도 우리가 다수에 속해 있으면 그 자체가 든든한 방패가 된다. 애써 말대답을 해줄 필요도 없다. 

4. 네덜란드에 갔었던 기억이 난다. 네덜란드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나라의 하나이다. 그러나 국립 박물관에 갔을 때 나는 놀랐다. 네덜란드 국립 박물관은 네덜란드 국민들에게 네덜란드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내면화하게끔 디자인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너무 국가주의적으로 보여서 충격적이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는데, 바로 그 투쟁에 대한 자긍심이 박물관 전체를 도배하고 있었다. 박물관 이층에는 렘브란트의 대작 야경이 걸려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네덜란드 국민들의 자긍심의 결정판이다 싶었다. 커다란 방 하나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걸작, 세계 회화사에서 최고로 치는 화가의 대표작인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민병대가 스스로의 자금으로 스스로를 무장하여 스스로를 수호하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그 그림도 민병대 사람들이 돈을 모아 비용을 마련한 것이다. 자존의 근거는 자립이다.

5. 한국은 아직 갈 길이 아직 멀다. 그러나 빛은 언제나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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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2013-10-03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항과 관련하여 추가. 검찰에서 회담록을 기록관으로 이관해야 할 대통령기록물이라고 규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관되어야 할 것이 이관이 안되었으니 문제라는 지적인 것이다.

다음은 나의 상식에 입각한 의견이다.

회담록은 분명 지정기록물급이다. 그러나 지정기록물로 지정되면 국정원 보관본도 회수 파기되어야 할 것이고 후임대통령도 이를 참고할 수 없게 된다. 노무현이 국정원본을 후임대통령을 위해 보존하도록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회담록을 지정기록물로 걸어서는 안되는 게 당연하다.

회담록을 지정기록물이 아니라 일반 기록물로 기록관에 넘기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런 중요한 문서를 일반 이관 문서로 넘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렇다면 회담록을 비밀기록물로 넘기면 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후임 대통령이 기록관에 찾아가서 열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 번거롭기는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노무현은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사항을 진행 중에 있는 실무 사안으로 간주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회담록을 기록관에 넘기지 않고 유관 기관이 공유할 수 있되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곳, 즉 국정원에 보관하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결정에 법적, 윤리적 문제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