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학위 논문 주제를 정해야 한다고 해서 비트겐슈타인의 "논고"라고 알려 주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계로 복귀한 때인 1929년 앞 뒤의 기록들을 위주로 독서를 했다. 몽크의 전기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오그덴의 책에 대해서 "철학은 그렇게 쉽게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야!"라고 비판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비트겐슈타인과 무어는 마냥 무난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비트겐슈타인이 철학계에 복귀하여 첫 강의를 시작했을 때부터 무어는 그 강의에 참석하여 강의를 노트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죽고 난 후 무어는 이 강의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한다. 오늘 그 일부를 읽었는데, 학생들의 강의 노트보다 생생한 맛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 같았다.(다시 말해서 무지 지루했다.) 무어는 매우 솔직 담백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논문을 보면, 어떤 면에서는 과격할 정도로 담백한 면도 있는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은 무어의 그런 순수함을, 철학적으로 깊지 못하다고 비판하곤 했다. 무어는 비트겐슈타인을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았고 비트겐슈타인에게 직접 그렇다고 말했다. 너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너가 철학적 영감을 주니까 너의 강의에 참석하고 너와 철학 토론을 하는 것이라고. 무어의 그런 솔직함이 비트겐슈타인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비트겐슈타인이 죽기 직전까지 몰두한 작업도 무어의 논문에서 발단이 된 것이었다. 나도 비트겐슈타인을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무어처럼 비트겐슈타인이 매우 계발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사유의 흔적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제너시스 음악의 어떤 부분은 매우 병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제너시스에서 가장 즐겨 듣는 부분은 바로 그 병적인 부분이다. 나는 무어만큼 솔직할 수는 없는 사람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