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이 좋은 에스프레소 카페를 알려 주었다. 아무 생각없이 첫 모금을 넘기다가 감탄사를 떠뜨렸다. "여기가 이 근방에서 최고로 에스프레소를 잘 뽑는 데야. 내가 널 여기 데려온 이유이기도 하지." R은 지난 주에 다른 학교에서 들었던 에티카 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제2부 명제7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카페에 앉아 이 문제에 대해 같이 토론했고, 추워서 자리에서 일어설 즈음에는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R이 토론 내용을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 줄 것을 부탁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내용을 정리하고 나니 모든 게 명확해 보였다. 스피노자가 명제7을 증명하는데 공리6을 이용하지 않고 공리4를 이용한 이유는? 즉, 공리6은 무엇을 하는 것이고, 공리4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모든 게 너무 당연해 보여서 에티카의 이해에 중대한 진전을 이루었다는 감흥마저 사라져 버렸다. 도서관을 나서서 비가 간간히 뿌리는 가운데 우산도 받쳐 들지 않고 지하철역 몇 개를 지나쳐 걸었다. 오늘의 감흥이라면 단연코 그 에스프레소 가게야...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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