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록들을 몇 개 읽어 보았다. 안달해 하는 모습들. 영국에 오기 전이나 그 후나...-.- 에세이 쓴다고 낑낑 매는 모습을 되돌아 보며 안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기고만장한 자신감. 뭘 몰랐을 시절. 나는 지금 엄청난 벽 앞에서 떨고 있는데... 언어의 벽, 너무 오래 학교를 떠나 있었다는 자각, 내가 주로 공장 노동자였으므로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고 마는 문화적 괴리감, 한국도 아니고. 얼마 전 런던에 있는 한 대학에서 철학 강연을 하나 들었다. 나 답지 않게(?) 강의실을 둘러 보며 나 같은 사람(검은 머리를 한 유색 인종)을 찾게 되더라. 없더라. 얼굴에서 스마트함이 풍겨지는 잘 생긴 백인들 틈에서 나는 고작 강사의 말을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앉아 있었다. (다행히 주제가 아주 낯선 것이 아니었고, 또 프리젠테이션 도구를 활용한 강의였기 때문에 대강은 파악할 수 있었다. 강의 끝무렵에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가며 사유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연회 끝나고 열린 다과회에 참석할 배짱은 없었다...)

기고만장했던 시절의 기록들 중 하나엔, 이제 테마를 잡았으니 1년 정도 후에는 엄청나게 진보해 있겠지! 하는 대목이 있다. 그로부터 7, 8 개월이 지난 지금의 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 그렇게 지난 버린 시간의 크기가 내게 충격을 준다. 나는 전혀 진보하지 못했다. 나의 테마에 대해서든 다른 무엇에 대해서든. 아직 4 달 정도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나는 또 안달이라는 익숙한 옷을 껴 입을 것 같다. (정확히 일년 전 이맘 때쯤 나는 공장 생활을 그만 두었었다. 삶의 단계를 특정할 수 있는 날짜를 갖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그걸 측정의 도구로 쓸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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