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지금은 나의 아내가 된) 친구와 페트워쓰 하우스에 다녀왔다. 아무 길이나 잡아 탄 것이었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참 복 받은 나라야." "정말로~ 헌데 복 받은 걸로 치면 프랑스가 최고라지? 신이 아낌없이 베푼 나라라고 하더라." "딱 하나만 빼고?" "프랑스 사람들!" 우리는 깔깔 웃었다. 어찌 그 좋은 자연 환경에서 그런 삐딱한 사람들이 생겨 났을까. 농담을 즐기기엔 이 나라 저 나라 사람들의 스테레오 타입만한 것이 없다. 만약 이 땅에 한국 사람들을 들여 놓는다면? 저 너른 땅이 그대로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다 밭이나 논으로 변해 있겠지. 영국 사람들은 저 땅들을 다 놀리고 식량은 수입해 먹는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림같은 들판, 수목, 집들을 지나면서 우리는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고 그러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페트워쓰 하우스는 멋없게 지어진 커다란 저택이다. 집 주위의 공원은 너무 너무 넓어서 축구장 수십 개가 족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다. 푸른 들판 위로 사슴들이 무리 지어 풀을 뜯고 이러 저리 뛰어 다니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 무리 중에는 하얀 사슴도 있어야 하고 머리에 뿔이 잔뜩 달린 사슴도 있어야 한다. 지난 주말 내가 직접 본 광경들이다. 흐린 하늘에 간혹 빗방울도 떨어져 날씨는 스산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어느 시대극 속의 영국으로 들어와 버린 것 같았다. 제인 에어, 다운톤 애비? 커다란 연못 옆 나무 밑에서 두 남녀가 연인 놀이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입은 청바지와 잠바가 오히려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졌다.

페트워쓰 하우스 내부는 터너, 블레이크, 반 다이크같은 화가의 그림들, 이태리에서 수입해 온 대리석 조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영국 여왕(누구더라?)이 방문해서 수집품들이 모두 훌륭하긴 한데 배치가 아무렇게나 되어 있는 것이 흠이라고 했다던데 여전히 그 꼴이긴 하더라. 이런 물량 공세에 대처하는 방법은 가볍게 걸으며 작품들에 짧고 균등한 주의를 주는 것이다. 다음에 다시 와야 겠다고 생각해 두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다. 그래도 한 바퀴 돌고 나니 진이 빠졌다. 그만큼 작품들이 많았다.

미술품들을 구경하고 나서 하인들의 공간, 그러니까 부엌을 둘러 보았다. 이 대저택의 식구들을 전부 먹여야 했을 테니 부엌이 여러 방으로 되어 있고 복잡한 도구들도 많았다.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냉장고도 있다. 그 안에 모조로 된 케익과 트리플이 들어 있었다. 테스코에서 평소 사먹던 것과 모양이 똑같다. 아무튼 다운톤 애비에서 보던 부엌이 눈 앞에 딱 놓여 있었다.

저택 안에 마련되어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케익 한 조각을 사먹고 복도 귀퉁이에 진열되어 있는 헌책 코너에서 책을 여러 권 샀다. 보통 것은 1 파운드 두꺼운 표지는 2 파운드. 위대한 개츠비, 맨큐 경제학 등등을 샀다. 3판이긴 하지만 아주 깨끗한 맨큐 경제학 책을 단 2 파운드(3600원 정도)에  손에 넣고 나니 아주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 또 와서 쓸만한 책들을 쓸어가기로 했다.

페트워쓰 하우스가 있는 동네 중심가에는 안틱 가게들이 즐비하다. 친구 손에 이끌려 별 마음 없이 한 가게에 들어갔다. 수많은 오래된 가구들, 도구들, 그림들로 꽉 차 있다. 일본 그림들 몇 점이 걸려 있는 것이 신기했다. 이 가게 안에도 헌 책들을 쌓아 놓고 있는 코너가 있었다. 거의 미술 관련 책들이다. 우리의 당장의 관심은 램브란트였다. 마침 적당한 책이 있기에 골라 들었다. 네덜란드 가기 전에 읽어(공부해) 두어야 할 책이려니...

근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까 했는데 이 동네가 너무 관광객에 특화된 곳 같아서, 바가지를 쓸까 하는 소심함에 그냥 발길을 돌렸다. 차 타고 가다 음식점이나 펍이 눈에 띄면 밥이나 먹고 가자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지역적인 음식점 안에서 밥을 먹을 뱃심이 없었다. 아니면 귀찮았다. 우리는 온통 푸른 들판에서 양 수 백 마리가 풀을 뜯는 장면에 다시 한번 감탄사를 던져 주며 영국의 아름다운 국도를 따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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