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어느 갤러리에서)


오늘 저녁 한국으로 돌아간다. 진학 문제를 매듭짓지 못해서 마음이 가볍지가 않다. 오로지 나의 게으름 탓이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 하나. 프랑스에 갔었던 것. 프랑스는 나에게 많은 좌절을 주었었다. 파리 대학가 서점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던 스피노자에 관한 책, 나는 그걸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상심을 했었다. 위 사진 속의 갤러리, 현대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구내 계단에 걸터 앉아 갤러리에서 제공하는 가벼운 알콜 음료를 홀짝 홀짝 마시며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선남선녀들이 떼로 화려한 옷을 입고 알콜 음료를 마시며 환담하는 걸 지켜 보면서 나는 또 좌절감을 느꼈었다. "저 사람들 지금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한 껀 올리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는 걸까?" 나는 시무룩해 했었지... 나는 완전한 무력감을 느꼈었지...


세잔의 고향 엑상 프로방스 어느 카페. 와인 한 잔을 시켰더니 올리브를 작은 접시에 같이 내오더라. 세잔이 파리에서는 와인을 시켜도 올리브를 서비스로 내주지 않는다고, 파리 놈들은 쫀쫀하다고 시골사람답게 투덜댔었다는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올리브는 맛있었고 영국에 와서 테스코에서 올리브를 살 때마다 꼭 엑상 프로방스에서 맛 본 그 올리브와 비교하게 되고 실망하게 되더라. 엑상 프로방스의 것은 그냥 집에서 담근 올리브이리라. 카페에는 한동네 사람들로 보이는 노인들이 많았고 카페 아가씨는 일을 잘 하고 싹싹했고 손님이 뜸할 때는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담배를 피워 댔다...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신선한 경험들이었다.


영국에서의 경험들은 나의 틀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들이었다. 셰익스피어, 베토벤, 서점, 피쉬 앤 칲스, 철학, 논문... 그것들은 나의 틀 안에서 부드럽게 소화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예쁜 옷을 입은 영국 아가씨들이 워털루 역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것을 보고는 오히려 반가왔다. 영국에서 논문을 쓰고, 이러 저러한 주제로 교수님들과 토론을 하면서 나는 내가 작거나 약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강하다, 무자비하다, 확고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신하게 되었었지. 나는 부서질 필요가 없었고, 좌절을 느낄 필요가 없었고, 놀랄 필요가 없었다. 아니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


이제 떠날 말미에 느끼는 것은, 이 말미에 내가 너무나도 게을렀기 때문에 다시는 게으르지 말자고 다짐을 하고 또 하는 나 자신이다. 진학을 위해 퍼스널 스테이트먼트를 쓰면서 나는 나의 과거에 대해 변명을 해야 했고 그것이 하기 싫어서 계속 도망치고 게으름을 부렸다.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도박벽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리면 결국은 써질거야 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곤 했던 가여운 남자... 그러나 내가 머리에 떠올려야 할 사람은 도스토옙스키같은 사람이 아니라 아마 빠삐용일 것이다. 삶에서 가장 커다란 죄는 무엇인가? 시간을 낭비한 죄. 나는 시간을 낭비했는가? 내게 재능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영국에서 내가 느낀 것은 부드러운 접속감이었다. 그 부드러운 접속이 내게 자신감을 주었다. 프랑스에서 내가 느낀 것은 단절감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좌절감을 주었다. 그 단절을 메울 시간이 내게 있을지 겁이 났다. 차라리 이런 기분을 되새기면서 귀국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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