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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최대의 연애사건 -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금단의 사랑
호르스트-에버하르트 리히터 지음, 모명숙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사랑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어느 영화를 통해서였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본 영화라 제목도 생각나지 않지만 남자의 상해 소식을 전해들은 여자가 "Oh, No!"하며 절규하는 모습은 아직도 인상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중에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때 그 영화가 그 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벨라르.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으로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통찰에서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을 얻는다. 전자로 인해 그는 세상에 오만한 자로 알려졌고 후자로 인해 여러 번 이단으로 몰렸다.
엘로이즈. 그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18세의 아름다운 여자라는 점 때문이 아니라 그의 대단한 학구열과 학식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수녀원에 서원을 할때 아벨라르와 주고 받은 시가 이교도 로마인의 것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이교도들의 서적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을 인정하는 용기와 그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의 가치를 배웠을 것이다.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보고 반했을 것이다. 그는 외모와 학식과 언변과, 명성으로 인한 권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없이 엘로이즈를 유혹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는 착각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닌지라 그것은 분명한 사실로 드러난다. 그러한 과정의 한 정점에서 엘로이즈는 임신을 한다.
가문의 불명예에 직면하여 엘로이즈의 친척들은 둘의 결혼을 강요하는데 이때 엘로이즈는 결혼을 극구 반대한다. 엘로이즈가 결혼에 반대한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그들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남자들은 잘 깨닫지 못하는 여자들의 본능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엘로이즈는 아벨라르가 결혼하여 가정에 묶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또, 둘의 결합으로 인한 결과로 둘의 사회적 지위가 하락한다면 둘의 결합은 파멸을 의미할 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실제로 결혼은 아벨라르의 경력에 대단한 장애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까지 있는 상태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엘로이즈는 차라리 아벨라르의 정부, 창녀가 되겠다고 했다. 즉, 둘의 사랑과 아벨라르의 장래를 위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일반인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굴욕 따위는 단호히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친척들의 강요와 아벨라르의 동의로 둘은 비밀 결혼을 하지만 엘로이즈가 친척들과 계속 불화를 빚자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친척집에서 데리고 나와 수녀원에서 서원을 받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분노에 이성을 잃은 엘로이즈의 친척들은 아벨라르가 자는 방에 침입하여 그의 자지를 잘라내는 잔인한 방식으로 복수를 한다.
이것으로 당대 최고의 학자로 명성이 자자하던 아벨라르는 깊이 모를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는 수사가 되는 것으로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엘로이즈와 연락을 단절하는데 그것은 10년간 지속된다. 10년 후 엘로이즈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기 위해 둘은 재회하지만 철저히 공적인 관계로 일관했던 듯 싶다.
그로부터 또 몇 년후 엘로이즈는 아벨라르가 쓴, 서간 형식의 자서전을 입수한다. 물론 그 안에는 엘로이즈와 관계된 고백도 들어 있었다. 엘로이즈는 바로 아벨라르에게 편지를 내어 아벨라르의 무정함을 탓하는 원망의 말들을 쏟아낸다. 당시 수녀원장이었던 엘로이즈는 아벨라르를 거침없이 "유일한 님"이라고 부르지만 아벨라르는 그 호칭 앞에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덧붙일 것을 권고한다. -신 안에서. 아마 이것이 관계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방식, 즉 그 관계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방식일 것이다...
십수년 묵은 감정을 털어낸 후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의 권고를 따른다. 그리고 자신에게 아벨라르를 영원케 한다. 즉, 아벨라르에게 수녀원의 규칙을 제정해 줄 것과 예배할 때 사용할 성가를 작사, 작곡해 줄 것을 부탁한다. 아벨라르는 그렇게 한다.
엘로이즈는 추상 따위에 집착하는 종족이 아니다. 그는 사회의 치욕스러운 시선도 무시할 수 있었고, 하느님의 존재도 무시할 수 있었다. 사회도, 국가도, 신도, 도덕도 다 추상이다. 그는 구체적인 존재만 믿었다. 그래서 그는 아벨라르의 사적인 음성을 들어야 했고 그의 손의 피부를 만져야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자 다소 추상적인 방식에 만족하기로 한다. 즉, 아벨라르가 정해 준 규칙 안에서 살며, 그가 만들어 준 성가 안에서 하루를 살고 일년을 사는 방식으로. 아벨라르가 죽어도 그는 엘로이즈의 삶 안에 구체적으로, 아주 세세하게 함께 할 터이다.
한편 아벨라르의 삶은 결코 안정을 몰랐다. 그는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켰고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급기야 베르나르가 그를 이단으로 고발하여 공의회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다. 아벨라르는 로마의 교황을 찾아가 직접 해명하려 하였으나 가는 도중 지쳐 클뤼니 수도원에 머물다 그곳에서 죽는다.
그 클뤼니의 수도원장 페트루스가 전설을 완성한다. 그는 두 번이나 이단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아벨라르를 자신의 수도원에 머물게 한다. 그는 젊은 시절 미모와 학식이 대단했던 엘로이즈를 흠모했었다고 엘로이즈 수녀원장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뜻을 존중하여 아벨라르의 시신을 일반인들의 눈을 피해 몰래 엘로이즈의 수녀원으로 운구해 준다.
엘로이즈가 죽었을 때 그는 당연히 아벨라르의 옆에 묻힌다. 여러 번 이장이 있었지만 둘은 늘 함께 였으며 오늘날에도 둘은 나란히 누워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물질적 흔적들은 영원과 아무 상관도 없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우연의 것이기 때문이다. 엘로이즈와 아벨라르는 둘의 사랑을 영원하게 할 여러 결단들을 내렸다. 영원은 그 결단들 안에 있다.
여기서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첨가하자. 하나는 클뤼니의 수도원장 페트루스이다. 그가 아벨라르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둘의 사상의 친근성을 보여준다. 페트루스는 아랍의 신학서와 성서들을 번역하게 했다. 그는 무력이 아닌 이성으로, 지혜로, 사랑으로 이교도들을 무찌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십자군 전쟁에 반대했다. 아벨라르와 완전한 동조를 보이는 부분이다.
(물론, 사람들의 의견이란 이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성에 의해 설득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둘의 사상은 이상주의적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상주의를 현실화하는 것으로 진행되어야 할 터이다.)
다른 한 사람은 내가 아래 중세사상사 포스팅에서 언급한 베르나르이다. 그는 이성보다는 내면적 성찰을 더 중요시했다. 자신의 약함, 자신의 죄를 먼저 성찰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꼬치꼬치 캐고 따지는 아벨라르를 빌미를 잡아 이단으로 고발했다. 그와 공개 토론을 벌이게 되자 두려워 그것을 피하기 위해 공작했다. 십자군 전쟁을 적극 옹호했다.
너 자신을 먼저 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배 세력의 철저한 종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성을 억압하는 자와 사람들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자는 거의 언제나 동일하다.
이성은 억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극복되는 것이다. 폭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보다 큰 폭력이 아니다. 베르나르가 아벨라르의 이성주의를 비판하고 싶었다면 그렇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베르나르는 그럴 실력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폭력의 힘을 빌어 그것을 억누르려 하였다. 이런 식의 행동은 그가 완전히 틀렸음을 눈꼽만큼의 오차도 없이 보여준다. 그가 아무리 감미로운 문장들로 채워진 책의 저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제 아래에 아벨라르가 엘로이즈를 위해 적어준 기도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맺을까 한다. 엘로이즈는 이 글을 읽고 영원에서의 맺어짐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법당의 향내든, 성당의 높은 천정이든, 공명되어 울리는 성가든, 한 조각의 기도문이든 우리를 성스러움의 경험으로 이끄는 계기들이 있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경험들. 아래의 기도문도 그런 경험으로 나를 이끈다.
"오, 하느님, 당신은 인류 창조를 시작할 때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혼인성사를 제정하셨으며, 몸소 처녀의 몸을 통해 인간이 되시고 첫 번째 기적을 혼인잔치에서 베푸시어 혼인을 영예롭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무절제하고 나약한 저에게도 일찍이 혼인을 치유 방법으로 허여하셨습니다. 당신의 여종이 드리는 청을 물리치지 마소서. 저와 제가 사랑하는 이가 지은 죄를 대신하여, 거룩하신 당신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청합니다. 오, 대자대비하신 분, 자비 그 자체이신 하느님, 용서하소서.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고 많다 할지라도 용서하소서. 그리하여 수없이 많은 우리의 잘못에 비해 당신의 자비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보여주소서...
오 주여, 당신은 스스로 원하시는 시기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합치기도 하셨고 떼어놓기도 하셨습니다. 주여, 이제는 자비로 당신이 시작하신 바를 큰 자비로 완성해 주소서! 당신이 이 세상에서 잠시 동안 서로 떼어놓은 자들을 천상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하나가 되게 하소서. 당신은 우리의 소망, 우리의 분신, 우리의 그리움, 우리의 위안이기 때문입니다. 오 주여,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