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선에서 르펭 당의 집권이 좌절되었다는 뉴스를 보며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해외 거주자의 한 사람으로서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나는 르펭이 길거리에서 이슬람 복장의 여성에게 시비를 거는 자료 화면을 보고 경악했다. 르펭이 집권했다면 프랑스에서 이슬람 복장을 한 사람의 안전은 보장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단지, 이슬람식 복장을 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코로나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미국과 중국의 사이가 안좋아지고, 중국의 대표적인 대외 정책에 대해 세계인의 의구심이 높아지고 등등 하면서, 과장해서 말하자면 전세계가 중국을 안좋아 하는 느낌마저 있다. 중국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건 말건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나 동양계 사람들에 대해, 그 사람이 단지 동양인처럼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폭행이나 시비가 빈번해진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나도 코로나 때 인근의 복스힐이라는 곳에 놀러 갔다가 그런 증오 섞인 시비를 겪은 적이 있다.
아마 세계 경기는 계속 안좋아질 것이고, 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세대는 기성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고, 세계화에 대한 반정립인 지역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실리, 실용보다는 이념, 진영이, 개인에게나 국가 단위에게나 더 긴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렇게 세계가 위축될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스피노자는 인간의 마음을 자동기계라 불렀던가?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