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국어교과서에는 인상적인 몇 편의 글이 실려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부분 기행문이었던 것같은데 필자나 제목도 전체적인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적인 대목 한두 군데는 이상하게도 오래 뇌리에 남아있는 걸 보면 그런 대목들이 내 안에 있는 뭔가와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그때는 읽을 만한 게 지금처럼 풍부하지는 않았고 또 학업용으로 반강제적으로 다독, 정독해야했으니 그 글들이 사춘기적인 감수성의 도움을 받아 강력하게 내 기억 속에 남게 된 것이리라.
여하튼 지금도 기억나는 것 중에는 <홍도의 자연>이라는 정도의 제목을 다룬 서해안 먼 곳에 있는 홍도라는 섬을 다룬 글, 이건 아마도 설명문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일 텐데 그런 글이 떠오르기도 하고, 공주에 있는 갑사를 다녀왔던 체험을 다룬 글, 그리고 경북 영양 쯤인가 수비면이라는 지명이 재미있어서 인상적이었던 글(이 글의 제목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압권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한 대목 글이다. 그 당시는 <열하일기>가 이렇게 두꺼운 책일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인데 그당시 교과서에는 연암이 청나라 사신으로 가는 집안 형을 따라서 북경으로 가다가 황제가 여름을 맞아서 피서가 있는 열하로 방향을 틀어 강을 건너던 대목이 수록되어 있었다. 밤에 듣는 열하의 강물 소리를 묘사하는 대목은 열하가 어떤 강인지도 잘 모른 채 중국이라는 대목의 거대함을 상상하게 하였다.
요즘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내가 국어교과서에서 본 대목이 어디쯤인지 체크해봤다. 사신 행렬이 열하에 다가갈수록 이제 그 대목이 나오겠구나 싶어서 잔뜩 긴장됐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예전 그 내용이랑 사뭇 달랐다. 밤이라는 시간, 강물의 거대한 소리 이런 걸 지표로 삼아서 확인했지만 정확하게 이 대목이다 하는 확신을 가지진 못했다. 추억의 장면을 찾지 못해 아쉽긴 했으나 <열하일기>는 상당히 재미있는 기행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어가면서 인상적인 몇 가지 점을 발견했다. 우선 조선 사신 일행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태도가 대체로 상당히 우호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의하면 중국인들이 조선을 조그만 나라라고 무시할 것같지만 그들은 자국인 이상으로 조선인을 예의를 갖춰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어디를 가나 중국인들은 조선 사신들로부터 청심환을 달라고 계속 조른다는 사실이다. 연암은 뭔가 위급하거나 긴요한 상황에서 선심쓰듯이 청심환을 한두 개 정도 그들에게 건네면 청인들은 너무나도 반가워했다.
요즘 국어교과서에는 기행문이 실리는지 모르겠다. 한때 여행이란 게 거의 없던 시절에는 어디 갔다와서 쓴 기행문을 읽는 것조차 재미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요즘은 청소년기부터 여행을 밥 먹듯이 하는지라 굳이 교과서에 기행문이 수록될 이유도, 수록되어도 나처럼 인상 깊게 기억할 학생들도 그리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