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가격에 동서양 고전서적을 제공하는 출판사가 있는데, 이 출판사가 이처럼 저렴한 가격에 고전들을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물론 대부분의 서적들은 저작권이 만료됐고 번역도 옛날 번역이다. 딱히 돈이 많이 들어갈 것지는 않으나 어떤 경우에는 종이값만해도 책값을 상회할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경우는 적당히 손해를 보면서 내놓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유야 어찌됐든 읽어야 하거나 읽고 싶은 고전 서적을 적당한 수준의 번역에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는 일은 참 좋아보인다. 그래서 딱히 시의성은 없지만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이 시리즈로 공부하거나 복스하는 셈치고 종종 사들이곤 한다.

 

그런데 평소 이 출판사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인상이 훼손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내 앞에 총 한 자루가 쥐어진다면 눈치볼 것 없이 그 안에 들어 있는 총알만큼 아낌없이 먹여주고픈 자가 한 명 있는데, 그의 자서전격인 책이 하필이면 이 출판사에서 나온 걸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위세를 자랑했던 서슬퍼런 시절이므로 그의 자서전을 대필했던 소위 소설가나 이 책을 낸 출판사를 뭐라고 할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오점을 남기게 돼 있는 터. 인터넷 헌책방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이 책이 무려50,000~60,000원이라는 희귀고서 취급을 받고 있는 사실은 더욱 아연하다.

 

나는 앞으로 이 출판사의 책을 사는 일을 여기서 접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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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8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sulemono 2015-07-08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강에서 북악까지>라는 책을 검색해보시면 아실 거에요.

2015-07-08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sulemono 2015-07-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ㅜㅜ 2016-07-31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출판사 사장이 박정희 추종자에다 극우입니다. 박정희 찬양책을 여러권 펴냈고 사장이 직접 방대한 분량의 박정희 `위인전`을 쓰기도 했습니다. 제목이 `불굴혼 박정희`였나...-_-a 문제의 <황강...>도 당시에 굉장히 발빠르게 기획되어 출간된 책으로 알고 있고요.
아무튼 그 출판사 예전부터 개념없기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곳이었는데, 머 사장이 극우라는 점 말고도 전부터 문제됐던 게 날림 번역으로 가격덤핑 후려쳐서 도서시장판을 흙탕물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지금의 월드북인가 하는 시리즈는 이 출판사가 수십년 우려먹던 짓거리를 껍데기만 바꿔서 재탕해먹은 것에 불과합니다. 근데 인문고전 붐에 힘입어서인지, 이 월드북으로 재미 톡톡히 본것 같더군요)
그런데 정말 문제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어느 학문의 절정을 이루는 중대한 저작들이 어떻게 그렇게 호떡 구워내듯이 뚝딱뚝딱 번역되어나올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더우기 그러한 저작이란 해당 언어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한 나라의 학문적 연구역량이 충분히 갖추어진 상태에서 그 뒷받침에 의해 제대로 된 번역이 가능한 일일텐데, 그런 역량은 커녕 인문학 연구에 대한 척박한 현실 때문에 가장 중요한 하이데거 번역자였던 신상희 교수 같은 사람이 자살해야 하는 나라 한국에서, 도대체 정체도 모르고 그 저작에 대한 어떠한 연구업적이 있는가도 알 수 없는 역자들이 존재와 시간을 번역하고 에티카를 번역하고 신국론을 번역하고 우파니샤드를 번역해 내놓는데, 정말이지 어떻게 그걸 `번역`이라고 신뢰하고 읽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야말로 비전문가들 데려다 푼돈 주고 대충 `한국어처럼 보이게만` 만든 후 싸구려로 팔아먹는 엉터리 책, 엉터리 번역이라는 것은 아이들도 알 수 있는 일 아닙니까.
더 문제는, 이런 사정에 대해 아예 모르지 않을 법한 몇몇 유명 블로거들이, 그 월드북 시리즈로 나온 책들을 버젓이 소개하고 페이퍼에 올린다는 점입니다. 물론 `유명`하기만 하지 진짜 뭘 잘 모르는 블로거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역본들을 죽 나열해놓고 어쩌니 저쩌니 비교분석해놓는 페이퍼들을 종종 보는데, 전 이런 사람들 9할은 아예 책은 읽지도 않고 표지와 소개문만 보고서 아는 척하는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대학에 적을 둔 학자이며 평소 번역에 대해 예리한 비평을 가하곤 하던 어느 유명 블로거도 스스럼없이 월드북의 해당역본을 언급하고 소개하는 것을 보면, 정말 한심함을 넘어 통탄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이건 그 블로거의 말대로 사람들에게 한권의 책이라도 더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사람들로부터 그 한권의 책을 빼앗고, 그 책을 죽이는 행위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쓰다보니 조금 머리가 뜨거워져서 댓글이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그 출판사 책들의 구매를 재고하게 되신 것은 저로서는 참말 잘 생각하셨다고 격려드리고 싶어 몇자 적다보니 이리 되었습니다. 건강하세요.

wasulemono 2016-08-02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몰랐던 사정에 대한 정보와 의견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쓴 이후 이 출판사 책은 더 이상 구입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