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사 예연총서 3
이영미 지음 / 시공사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가요를 대중문화산업이 제공하는 저급한 오락이나 유희 정도로 폄하하는 시각이 예전에 비해 많이 사라졌다.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중문화의 폭과 깊이는 상당해졌다. 대중문화의 꽃이라 불리는 영화의 경우는 작가 의식을 가지고 예술성을 추구하는 영화 감독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문학을 비롯한 고급예술과 동등한 시각에서 이해되고 평가받아왔지만, 대중가요 분야에서는 최근까지 이와 같은 시각이 전무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90년대 후반 이후 대중문화 영역에서 대중가요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서태지의 영향인 것이 분명하다. 서태지가 불러일으킨 지각변동으로 인해 이제 대중가요가 저급한 문화산업의 산물이라는 고급예술적 시각은 붕괴되었고, 적절한 관심과 연구의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그동안 연구자적 관점에서 대중가요사를 정리한 연구들은 종종 있어 왔다. 물론 이런 사실 역시 이영미의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동안의 연구를 간접적으로 평가할 때 단순한 자료 정리와 해석 수준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우리는 가요를 귀를 열고 듣거나 무관심하게 흘러보내는 소리의 수준에서 이해해왔을 뿐, 책을 통해서 악보나 음악 양식같은 기술적 측면이나 당대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해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책 한 권을 통해서 우리는 대중가요 역시 문학사처럼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책을 통해서 추적하는 가요사가 얼마나 흥미로운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음악 양식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더불어 문학 전공자로서 가사를 시적으로 해석해내는 저자의 문학적 감수성 덕분이라고 하겠다. 이 책 한 권을 통해서 그동안 우리 주변에 산재하면서 공기처럼 듣고 불러온 대중가요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와 같은 대중가요사 연구의 가치를 절감함과 더불어 비평이 부재한 작금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비평은 더 좋은 질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가정을 전제할 때, 그와 같은 비판의 길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작금의 현실은 문제적이다. 이것은 그만큼 현재의 대중가요가 생산자와 소비자, 비평가 사이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발전해나갈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때의 호황기를 접고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는 음악산업의 현실을 음반산업계에서는 소비자의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이지만, 내가 볼 때 결정적인 잘못은 소비자와 비평가와의 대화 창구를 마련하지도 못한 채, 호황기를 근시안적으로 향락한 음반산업계에 있다. 음반산업계가 소비자와 비평가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더 좋은 질의 상품을 내놓으려고 고심했다면 지금처럼 음반산업이 급속도로 붕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악산업의 붕괴 요인을 음악 파일 공유에 돌리기 이전에, 음악 그 자체의 질에서 찾아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90년대 음악과 비교해 보더라도 현재의 대중가요는 현저히 떨어진 수준을 보이고 있다. 가까운 역사조차 면밀하게 더듬고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남의 탓만 하는 것은 아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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