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병 말봉이던 2000년 가을, 나는 최초로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박봉으로 삼남매를 키우면서 어머니는 영화관이라곤 가보실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매사에 절약하시고 또 절약하셨다. 우리가 뭔가를 사달라고 할 때는, 특별히 낭비가 아니다 싶으면 다 사주셨다. 떼를 써서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여러 가지 것들을 얻었던 기억이 지금은 철 없던 행동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누구 떼를 썼는지는 몰라도 삼남매를 데리고
동시상영관을 찾은 것이 어머니가 영화관에 발을 딛었던 마지막이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한 덩어리가 느껴진다. 그 속에는 한 평생을 가족을 위해 고생해 온 한 여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 억척스럽게 생을 일구어낸 한 명의 인간에 대한 경이의 느낌, 그리고 지울 수 없는 몇 개의 불편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여하튼 2000년 그 당시 최고의 히트작이자 내 존재조건과 결부된 그 영화를 보기 위해 어머니와 영화관을 찾았다. 어머니는 영화관을 둘러싸고 울려펴지는 엄청난 소리에 우선 놀라셨다. 그리고 총성과 나뒹구는 시체를 똑바로 보시지 못하고 눈을 감으시곤 했다. 그런 모습이 참 순수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시골 소녀의 감성과 순수를 간직한 어머니의 모습은 내가 사람에게서 기대하는 한 면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이었다.


최근 집에 내려갔다고 우연히 그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 영화 때문에 많이 놀라셔서 병까지 생겼다고 하셨다. 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보고 병까지 생긴다는 게 도대체 있을 법한 일일까. 그렇지만 어머니는 그때의 기억이 상기되는 듯 몸서리를 치셨다. 어머니는 병원을 찾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고 하셨다.


돈 벌면 이미자쇼에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다. 소녀 시절부터 좋아하셨던 이미자, 나도 어머니처럼 이미자를 좋아한다. 조만간 돈을 벌어서 어머니와 함께 이미자쇼에 함께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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