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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 그 섬세함의 뒷면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4
박현수 지음 / 책세상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90년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대학생이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봐야 할 소설 중 하나라는 위상을 지녔다. 눈부신 이념의 후광이 사라진 빈 공간에 남은 것이라곤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는 고뇌하는 자아였다. 단자화된 개인들의 상실감에 침윤된 관념 세계를 하루키만큼 그려낸 소설가는 없었고, 적어도 우리에게 하루키는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해 준 영웅이었다.
현실에 대한 무관심과 철저한 내면 조응을 특징으로 하는 하루키의 문학 세계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환멸 어린 의식 세계와 적절한 조응을 이루면서 젊음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문학의 이러한 흐름 한편에서 일본은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과거에 대한 재해석과 왜곡, 현실적인 조처들로써 이어졌다.
국가라는 거대 단위와 개인이라는 소 단위 사이의 이와 같은 부조화 현상에 대해 일부에서는 안도감 비슷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 감정의 개요는 이런 것이다. 일본이 국가 단위로 군국주의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기반인 개인의 현실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그런 움직임을 좌절되지 않을까 하는 것.
그러나 과연 이런 상반된 움직임이 역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가, 혹시 그 둘 사이에는 상보 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닌가 라고 의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문화 그 섬세함의 뒷면>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일본 고유의 문학 형식인 사소설을 검토하고 있다. 저자의 고찰 결과에 따르면 한때 우리가 열광했던 하루키 문학 세계의 상당 부분은 이미 사소설에 의해 정립된 것이다. 비록 사소설이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근대적 과제 성취와는 다소 동떨어진 위치에서 국민국가 형성의 이념적 기반 조성이라는 근대적 과제 수행에는 비효과적이었지만 현실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함으로써 오히려 군국주의적 움직임에 무비판적으로 개인들을 이끌어들이는 기능을 했다.
이 책은 우리가 매혹되는 일본문화의 섬세함의 기원을 일본적 문학 형식인 사소설에서 찾고, 이를 일본의 군국주의적 흐름과 연관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일본 문화를 수용하는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 즉, 하나의 문화로서 받아들이되 그 이면에 군국주의적 논리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굳이 미비한 부분을 지적한다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일본문화에 대한 매혹은 소설에 한정되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 가요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현상이라는 점, 그리고 매혹되는 이유도 굳이 섬세함 하나로만 한정하기에는 다양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문화의 중심은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영상물이고 소설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영상물에 매혹되는 이유는 섬세함을 제외하고서라도 무수히 많다는 것.
그러나 이 책을 두루 훑어봐도 저자가 이런 사정을 미리 감안하고 논의를 제한한 것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저자의 전공이 문학인 탓에 논의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은 감안할 수 없지만 현재 우리 문화 대중이 일본 문화의 어떤 부분을 어떤 식으로 어떤 이유에서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점을 검토하고 논의에 어떤 식으로라도 반영한 연후라야 이 책의 논지가 한층 더 설득력과 현실성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