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0
고미숙 지음 / 책세상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저는 근대적 개념인 주체보다는 기계라는 개념을 쓰고 싶어요. 현실을 훨씬 더 생동감 있게 반영한다고 생각되거든요. 곧, 어디에 접속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것들로 변이되고 표현된다는 점에서 주체 개념보다는 기계 개념이 더 적절하다고 봐요. 제가 쓴 글들은 제 고유의 산물이 아니에요. 저는 주변의 수많은 사건과 사유의 편린들을 `절단·채취'하는 기계였을 뿐이죠.”

이 글 서두에서 인용한 글은 김윤식이 아니라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수유연구실 원장(?) 고미숙이 인터뷰 과정에서 밝힌 고미숙 표 비평론의 한 대목이다. 최근 저서인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은 이러한 고미숙 표 비평론을 확인할 수 있는 예이다. 고미숙의 이 책은 개화기시가나 신문 논설을 1차 자료로 삼고, 몇 권의 책을 방법론으로 삼아 ‘썰’을 풀어나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책 한 권 쓰는 거 아무 것도 아니다.

1장 ‘민족’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 2장 ‘섹슈얼리티’는 푸코의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3장 ‘병리학’은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서 아이디어를 ‘절단,채취’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고미숙과도 희번죽한 얼굴로 인터뷰까지 했던 이명원이 김윤식식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건 왜일까. 아이디어의 출처를 밝히고 안 밝히고의 차이일까. ‘표절’은 앞으로도 수시로 우리를 뒤흔들 것이다. 그러나 과연 ‘표절’ 논쟁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무엇인가. 도덕성 재무장의 필요성인가, 인식과 지평의 확대인가, 아니면 상처뿐인 폐허인가.

고미숙은 단순한 사람이다. 불필요한 늬앙스를 배제하려면 ‘단순한’이라는 표현보다는 ‘심플한’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지도 모른다. 고미숙에게는 주체나 자의식이 없기 때문에 단순하거나 심플한 것이다. 그에게는 그가 말하는 ‘기계’적 역동성만이 존재하고, 그의 다른 저서 제목이 밝혀주듯 그는 ‘비평기계’일 뿐이니까. 그는 그 역동성을 사랑할 뿐, 고답적인 주체나 자의식의 환상을 벗어나 있다. 비평기계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물 수 없고 끊임없이 유동한다. 그에게 장소는 문제되지 않고 기계의 움직임을 추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상관없다. 그것이 김윤식과 고미숙의 차이라면 차이랄 수 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만을 두고 본다면 김윤식과 고미숙은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 이명원이 산파처럼 끼여들었던 것이다.

고미숙의 심플함은 그 나름으로 견딜만하지만 ‘비평기계’를 대하는 나같은 이는 마음이 개운치 않다. 무언가 결락된 부분을 느낀다. ‘비평기계’가 생산하는 ‘기계적 비평’을 흔쾌히 자의식 없이 좋아하기에는, 주체나 자의식을 깔끔히 벗어던지고 기계의 단순함을 만끽하기에는 우리는 여전히 주체의 장안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미숙의 이문열 비평을 읽어보셨는가. 다른 페미니즘 비평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는 파토스가 없다. 낯설다. 새로운 세대의 출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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