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
권명아 지음 / 책세상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이 자기정체성을 형성해가는데 있어 가족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자기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처럼 존재한다. 운명이기에 어떤 계기를 통해서도 벗어나기 힘들다. 그때 그는 ‘가족 로망스’로 자기를 둘러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난 원래는 고귀한 집안 출신인데 어쩌다 보니까 지금처럼 되었다”는 식의 얘기를 꾸며냄으로써 그는 환상적인 만족을 느낀다.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가족 로망스’는 필수적이다.

사회가 정체성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가족은 다시 불려온다. 그 가족은 어떤 균열과 상처도 없는 원형의 공간, 모성의 공간으로 고난에 찬 이들의 혼란을 감싼다. 그때 그 과정은 가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명명되고 비판된다. 그러나 가족은 비판되면서 동시에 수용된다. 가족으로 돌아가라! 거기서 당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라! 사회는 개인에게 그렇게 역설하고 상처입은 영혼은 알게 모르게 그곳으로 향하는 자신의 무의식을 발견하고 섬뜩함을 느낀다. 그렇다. 인간의 자궁을 빌어 태어난 그 누구에게도 가족은 끊임없이 자신의 발목을 물고 늘어지는 여귀의 집요한 손짓처럼 존재한다.

이 책은 가족을 둘러싼 서사의 기원과 생성, 그 효과의 메커니즘을 근현대 한국소설들을 통해 해명하고자 한다. 통념처럼 가족의 문제는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며, 모성신화와 가족주의는 일정 부분 파시즘적 형식으로 존재했음이 명백하다. 그리고 부르주아 여성 작가 전경린의 로맨스, 불륜은 근대 낭만주의 연애의 서사에 불과하다.

모두 맞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느껴지는 허전함은 무엇일까. 상상력의 부족이랄까. 현상을 분석할 때 분석의 틀에 정공법적으로 맞아떨어지는 현상만을 취사선택할 때 아귀가 맞아떨어진다는 흡족함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연관성이 없을 듯한 현상에 대해 본질의 잣대를 갖다댈 때의 난감함과의 부딪침을 애써 비껴갈 때 거기에는 균열을 은폐한 완벽함의 공허함만이 남는 건 아닐까. 방현석과 배수아, 신경숙의 텍스트가 일종의 취사선택의 결과라고 했을 때 그 무의식의 균열과 혼란마저도 드러냈으면 하는 것, 그것마저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유별난 독자의 욕망이다. 따라서 가장 무난한 선택이라는 인상은 저자의 상상력에 대한 아쉬움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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