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관계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58
긴조 기요코 지음, 지명관 옮김 / 소화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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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나 설이 찾아오면 지방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은 싫으나 좋으나 고향을 찾아간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그 길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진정 그리움에 사무쳐 고향땅을 밟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포함한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무의식적 처벌 공포에 짓눌려 그 길위에 서게 된다 물론 가족들을 만난다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여유로운 일이긴 하지만 그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부담스런 일들이 우리를 괴롭힌다. 걱정과는 달리 무난하게 넘긴 명절이긴 하지만 언제나 명절 맞이 고향길의 부담에서 벗어날지는 알 수 없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에 난 한 권의 책을 넣어갔다. 긴조 기요코의 <가족이라는 관계>. 이왕 떠나는 길에 그 길의 목적에 부합되는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었던 것같다. 내가 가족에 대해 다룬 책으로 처음 읽어본 건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다. 어느 정도 연배는 한번쯤 읽어봤을 이 책은 지금 생각하면 다소 고고학적이고 결정론적이란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운동권 교재치고는 맑스 저작에 비해 덜 딱딱했고, 엥겔스 특유의 리얼리즘적인 문체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주로 부부간의 문제를 가족법을 중심으로 풀어쓴 책이다. 굳이 이 책이 아니어도 괜찮을 만큼의 상식적인 수준을 보여주는데 나같은 초심자에겐 그동안 여성계에서 제기해왔던 문제들이 가족법을 중심으로 귀일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저자는 새로 부부관계를 시작하는 남녀를 위한 지침서로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것인데, 일본 역시 우리와 비슷한 가부장제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관계의 핵심인 남녀관계의 진정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겐 일말의 깨우침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때론 다른 문화권의 시각을 빌 때 우리의 문제가 더 잘 보이는 경우가 있듯, 일본은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기에 우리에겐 참조의 효과가 큰 듯하다. 그런 탓에 비슷한 문제를 다룬 경우 일본의 경우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편이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남녀관계의 평등주의라는 측면에서 이상적인 국가로 제시되는데, 그들의 사례를 다룬 책들이 의외로 없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출판문화가 편중돼서 소중한 경험들이 사장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여성학 계통 출판기획자들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런 측면에서 노력해주었음 한다.

가족은 사회로부터 상처입은 자들의 최후 보루이자 그들이 가진 상처의 기원으로서, '가족'은 우리 시대의 아포리아처럼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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