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일 수 없는 자유
막달레나 쾨스터 외 엮음, 김경연 옮김 / 여성신문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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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삶이 지겨울 때면 모든 걸 잊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지겹지만 막상 그 일상을 벗어나면 매 순간을 채우던 그 일상이 오히려 그리워서 예정된 날짜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때도 있다. 그리고 짧은 시간 일상을 벗어나 만끽하는 여행의 즐거움도 순간의 해방감만을 줄뿐, 근본적으로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다만 그 짧은시간의 해방감과 허무함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뿐이다.

예정된 휴가 여행보다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 여행의 본질에 좀 더 부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통이 머무는 자리를 벗어나 어디론가 그곳만 아니라면 다 좋은 곳으로 떠날 때 우리는 고통에 대한 해답을 바라지만, 내면으로의 여행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그 여행은 어떤 해답도 주지 않은 채 우리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헛수고가 될 수도 있다. 프랑스, 인도와 네팔로 돌아다니며 고통을 치유하고자 몸부림치던 <면도날>의 주인공의 깨우침처럼 구원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구원이란 것이 낙타가 면도날 위를 걸어가는 것만큼 요원한 것이라는 깨우침은 내면적 구원이 평범한 인간에겐 얼마나 요원한 바램인가를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여성들에게 있어 여행이란, 더군다나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여성들이 남편, 아이들을 버려 두고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떠나는 여행이란 요즘에도 상상하기 힘든 모험이다. 웬만한 뚝심이 아니라면 순수하게 자신만을 위해 가정을 버리고 길을 나서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사회적 죽음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한 여자는 죽을 때까지 한 가정의 아내, 어머니라는 의무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침묵의 관습이 철저한 사회에서는 여성의 자유의지는 숨쉴 수 없다. 그래서 <4월의 유혹>의 여성들이 이탈리아 여행에 그렇게 가슴이 달떴을 것이다.

자신의 현재 삶에 대해 온전히 수긍하는 사람이 없듯 나 역시 내 삶에 대한 회의가 가끔씩 찾아와 괴롭힌다. 누구의 강요에 의해 꾸려질 삶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의 선택만으로 채워질 삶이라는 걸 알지만, 틀을 벗어난 상상은 왠지 공상으로만 느껴지고, 그 상상은 다시 제 자리로 맴돌기 마련이다. 아마 나에겐 자유에의 용기가 부족한 건지 모른다. 사회와 가족이 부여한 기대와 의무를 벗어버린 삶이 나에게 안겨줄 시련이 걱정스러운 것이리라. 그러나 <길들여지지 않은 자유>의 여성들이 나에게 보여준 당당한 모습들이 나에게 용기를 심어 준다. 특히 자신을 세상과 고립된 아웃사이더이자 고아라고 생각했던 이자벨레 에버하르트의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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