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짝사랑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0
무샤노코지 사네아쓰 지음, 김환기 옮김 / 소화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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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에게는 일본소설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등이 가장 보편화되어 있고 그 외 요시모토 바나나같은 이들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읽히고 있지만, 내 경우에는 이들 젊은 세대의 작품들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고, 오히려 나쓰메 소세키같은 지금으로 따지면 거의 한 세기 전에 활동한 소설가들의 작품이 흥미로운 대상이다. 나쓰메 소세키로 말할 것같으면 동시대 우리 소설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사유의 깊이와 문장력이 큰 매력으로 이광수 정도에 비길 바가 못된다.

그리고 데카당티즘적 세계를 보여주는 다자이 오사무나 유미주의에 깊이 침윤되어 있는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들에서는 김동인류보다 한층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비하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은 이상하게도 흥미가 덜한데, 그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오리엔탈리즘류의 서양적 환상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여튼 지금부터 거의 한 세기 내지 반세기 전을 비교 시점으로 설정한다면 일본 소설에는 동시대 우리 소설에서 볼 수 없는 깊고 강렬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 소설을 읽을 기회가 있으면 가급적 동시대 일본 소설보다는 그 전 소설들을 읽는 게 흥미로운 일이 되고 있다.

무샤노코지 사네아쓰의 <한심한 짝사랑>은 이러한 계기로 뒤적여 본 것인데 이 책에는 <사랑과 죽음>, <한심한 짝사랑>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무샤노코지는 흔히 시라카바파라 불리는 ‘白樺’ 동인으로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白樺’는 우리로 따지면 ‘創造’ 정도의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동인으로서 초창기 우리 문단에도 정신적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다소 생소한 작가의 작품이긴 하지만 소재 자체는 대중적인 측면이 강하다.

<사랑과 죽음>은 소설가 무라오카와 그의 선배 노노무라의 여동생 나쓰코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우연한 계기에 사랑을 싹 틔운 두 사람은 무라오카의 프랑스 여행을 앞 두고 혼인 약속을 하고 무라오카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데 그가 귀국할 날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나쓰코가 유행성 감기로 돌연사함으로써 둘의 관계가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는 스토리이다. 작품은 길이에 비해 단순한 느낌을 주는데, 구성이 그들이 주고 받는 편지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구성 형식은 우리 초창기 근대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한심한 짝사랑>은 쓰루라는 여자를 놓고 펼쳐지는 주인공 ‘나’의 공상적 러브스토리이다. 주인공은 소심한 탓에 쓰루를 만나 실제로 연애를 하지 못하고 상상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마치 그녀를 애인인 것처럼, 아내인 것처럼 상상하며 지내는데, 결국은 쓰루가 다른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스토리는 끝을 맺는다.

이처럼 스토리나 플롯면에서 이 작품들은 대체로 단순한 면을 보인다. 요즘 소설처럼 뒤틀어짐이나 기괴함을 발견하기 힘들다. 단지 주인공의 내면의 추이를 시간적 흐름에 따라 충실히 추적하고 있는데, 복잡한 구성에 익숙한 요즘 독자로서는 지겨울 수도 있다. 그리고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남녀간의 사랑의 순결성이라는 주제도 요즘 생활 정서에는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내면을 묘사하는 섬세한 문장 하나만은 깊게 음미해볼만하다. 푸코가 말한 바 있고 가라타니 고진이 패러프래이즈한 바 있듯 자기에 대한 고백을 제도화함으로써 근대가 탄생했다고 할 때 일본 소설의 고백체 문장은 근대의 탄생을 알리는 문학적 신호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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