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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월터 J. 옹 지음, 이기우 외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시대마다 필독서처럼 권위를 가진 저자나 책들이 있기 마련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마샬 버만의 <현대성의 경험>을 필두로 수많은 책들이 버만의 책의 후광을 입고서 출판되었는데, 옹의 이 책 역시 그 중의 한 권이다. 그런데 특별히 이 책은 대중교양서로서보다는 대학 내 필독서로서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테마가 인류학이나 문학, 사회과학의 관심사 중에서도 다소 특화된 분야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말과 문자는 인간 생활의 기본을 이루면서도 항상 투명하게 의식되지 않는 영역에 놓여 있다. 따라서 언어 그 자체를 논한다는 것은 적어도 의식의 차원에서는 항상 명료하지 못한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언어 그 자체를 논한다는 것이 비대중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언어가 다소간 무의식과 연계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여하튼 문자를 통한 쓰기나 인쇄를 경험한 인간이나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가정으로부터 비롯되는 이 책의 논의는 변방의 구술 문화 속의 사람들에 대한 인류학적 조사 자료로부터 관련 학자들의 논의에 대한 검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펼쳐진다.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의 차이를 대비 방식으로 설명해 놓은 부분과 쓰기와 인쇄가 인간의 의식이나 사고에 끼친 영향을 설명해 놓은 부분은 특별히 흥미롭다.
문자 문화 속에서 형성된 의식으로 구술 문화를 보지 말라. 이것이 저자의 핵심 전언이다. 물론 그 정도의 가르침은 현대의 현명한 다문화주의자라면 감수할 수 있는 가르침이긴 하나, 저자가 논거로 삼고 있는 수많은 자료 역시 구술 문화 그 자체가 아니라 문자와 책이라는 형태로 고정된, 말하자면 문자 문화의 더미로부터의 추측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이것은 제3세계 원주민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인류의 보편적인 과거로 재구성하려는 음험한 제국주의 연구자들의 가정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은 연구에는 항상 차이를 논증하기 위해서 같음을 가지고 차이를 추론해 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어려움은 비단 이 책만이 아니라 여러 책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어려움이다. 한번쯤 읽어볼 책이긴 하나, 이 책과 더불어 맥루한의 <구텐베르크 은하계>를 같이 읽어본다면 좀더 유익하지 않을까.